연극이야기 26

극단 물리 <하나코>

위안부 이야기다. 연극을 신청한건 11월 말이었는데, 공연을 볼 때쯤이 되고 나니 굉장히 민감한 이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평일 저녁 공연임에도 아르코 소극장은 만석이었다. 그리고 남은 공연들도 이미 매진이라더라. 단순히 소재 때문에 이렇게 인기 있는 공연이 되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정말 모든 면에서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연극이었다. 앵콜 공연이 있다면 주변에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과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극에 끼어들어 말하고 싶을만큼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 같다고 느꼈으니 뭐.. 정말 한 분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았다. 아르코 극장이 조명이 잘 갖춰져서 그런지 조명도 정말 잘 썼다고 생각했고, 음향도 나무랄데 없었다. 확실히 국립 극단의 소..

연극이야기 2016.01.08

창작집단 륜 <고도를 기다리며>

대표적인 부조리극인 사무엘 베케트의 를 보았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이 부조리극인줄도 모르고 봤고, 6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인줄도 모르고 봤다. 책을 안 읽으니 뭐.. 안톤 체홉부터 최근에 봤던 나 이번 도 그렇고, 다시 한 번 문학에 대한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활자 매체는 정이 잘 안 가는 걸 어떡하나. 올 해 기껏 산거라곤 과학서적과 연극서적 뿐...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는 책으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공연은 딱 7회만 진행되었고, 내가 본 공연은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답을 원하는 관객들과, 정답이 없어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는 연출가의 대화가 관전포인..

연극이야기 2016.01.04

연극 <그 날이 올텐데>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설정은 이미 많은 연극과 영화를 통해서 지겹도록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진짜 괜찮은 작품들도 있었고.. 종말이라는 현실감 없는 이야기는 분명 낯선 상황이지만, 결코 신선할 수 없는 소재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래도 꽤 재밌었다. 돌아보면 허점투성이고, 중반까지 보고 있기 민망해서 여러 차례 고개를 떨구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나올 땐 배우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히죽거리기도 했고 ㅎㅎ 설정과 디테일이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현실을 이야기 하는 연극은 아니니까.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어수..

연극이야기 2015.12.13

연극 <벚나무 동산>

에 이어서 안톤 체홉의 또 다른 희곡작품을 보았다. 이 사람의 작품을 두 개 정도 보고 나니까 어떻게 작품을 썼는지, 왜 특별한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사랑받아 왔는지 알겠더라. 편곡을 했거나 리메이크를 한 노래들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원곡의 아우라 안에서 노래하거나, 원곡을 완전히 재해석해서 새로운 노래를 내놓던가. 사실 전자의 경우는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감동을 이미 느낀 상태에서 목소리와 편곡만으로 새로운 감동을 선서해야 하는데, 이는 확실히 원곡의 감흥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후자가 무조건 올바른 편곡과 리메이크의 예냐...면 그건 또 아니다. 원곡을 분해해서 재해석하기에는 원곡 자체가 가진 멜로디나 편곡이 충분히 극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자칫 잘못 손댔다가는 원..

연극이야기 2015.12.13

연극 "야만인을 기다리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국내 초연작이다. 장소는 서강대 메리홀. 그냥 대학교 캠퍼스를 오랜만에 가본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설레고 그랬다. 서강대는 처음 가본 곳이기도 하고.. 요즘 그렇게 다시 대학생들이 부럽고 그래서 ㅋㅋㅋ 노벨문학상이고 뭐고 나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처음 들어봤다. 대충 시놉시스를 봤을때 편히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대로 뭐..ㅎㅎㅎ 상징을 가득 품고 있는 리얼리즘 연극이었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되려나... 식민지 혹은 제국주의로 해석해도 되고, 기득권의 폭력적인 지배와 횡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치안 판사가 주인공이자 피해자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결코 선하거나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전형적인 주인..

연극이야기 2015.11.10

연극 "공간"

좋은 연극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은 연극인대상 9월 2차 공연 지원때 보겠다고 지원했던 연극인데, 그 때 1지망이 "지상 최후의 농담"이었고, 2지망이 이 공연이었다. 사실 그렇게 땡기는 연극은 아니었다. 중년 남성의 상실감과 자아 찾기 어쩌구...라는 설명을 보고 나서 아, 이거 그냥 신파극 아닌가..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지망은 사람들이 많이 고르지 않은 걸 골라야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이 연극을 선택했다. 많이 보고 싶었거든. 가기 전까지도 약간 찝찝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니 꽤 잘 고른 연극이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거.. 이런식으로 로또나 좀 어떻게.. 연극 무대는 문을 상징하는 나무틀과 테이블, 의자 두개, 스탠드, 냉장고로 구성되어있었고, 배경은 텅 비어있는 그대로 두..

연극이야기 2015.10.25

연극 "데리러 와 줘"

언뜻 공연 포스터를 봐서는 그냥 20대 연애 이야기나 할 것 같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또는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류.. 일단 포스터가 꽃 많고 샤방샤방 하잖아? 공연 신청전에 시놉시스를 대충 읽어보고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아서 신청했는데, 막상 극이 시작되고보니 그 때 본 시놉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어리둥절 ㅋㅋㅋ 이런 내용이었구나. 엉뚱하게 만들어진 상황들이 몇몇 일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던 정서들도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의 주된 이야기는 늘 호구 등신이었던 주인공이 주변의 온갖 욕망들 속에서 억압받고 견디다 작은 변화로 인해 성장하고,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체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연극은 그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

연극이야기 2015.10.17

연극 "지상 최후의 농담"

제목과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신청했다. 그렇게 무겁지도 않으면서 생각할거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죽게될 사람들이 농담을 던진다는 것,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건 장난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데, 제주 4.3사건 때 진압을 거부하던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모자들이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처형당할 때 담배를 피면서 웃거나, 처형자들끼리 농담을 하거나, 심지어 처형을 집행할 군인에게까지 농담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리고 이 연극의 작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를 모티브로 삼아 대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형자들이 어떻게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연극은 그 ..

연극이야기 2015.10.14

연극 "챠이카(갈매기)"

연극반 아이들을 데리고 봤던 공연. 충분히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절제미를 발휘해서 꽤 지루하게 만든 연극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 자체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더라. 나는 몰랐지만.. 발표된지 100년이 넘은 연극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연극은 모두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이 작품에도 분명히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등장하고 갈등도 등장하지만, 그러한 갈등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을 부각하지 않고, 지금의 갈등 상황과 갈등을 드러내는 대사들에만 집중한다. 관계는 엄청 복잡하게 꼬아 놨지만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도, 그로 ..

연극이야기 2015.10.09

연극 "하멜린"

보기 전부터도 기대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보고나서도 작품 자체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연출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만족감보다 실망감이 약간 더 컸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해설자가 등장한다. 무대의 암막들을 모두 제거하고,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들마저 그대로 노출한다. 마치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개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 놓고 해설자가 하는 설명을 곁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은, 연극이 아니라 한편의 희곡을 읽고 있는 것 같이 연출하기도 했다. 어떤 방식이든 연출가는 관객들이 연극속에 개입할 여지를 굉장히 많이 오픈해두었다. 무대위의 소품은 최대한 간결하게, 음향은 전혀 없었고, 부족한 소품과 어울리지 않는 배역(예를들어 어..

연극이야기 201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