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이야기다. 연극을 신청한건 11월 말이었는데, 공연을 볼 때쯤이 되고 나니 굉장히 민감한 이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평일 저녁 공연임에도 아르코 소극장은 만석이었다. 그리고 남은 공연들도 이미 매진이라더라. 단순히 소재 때문에 이렇게 인기 있는 공연이 되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정말 모든 면에서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연극이었다. 앵콜 공연이 있다면 주변에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과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극에 끼어들어 말하고 싶을만큼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 같다고 느꼈으니 뭐.. 정말 한 분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았다. 아르코 극장이 조명이 잘 갖춰져서 그런지 조명도 정말 잘 썼다고 생각했고, 음향도 나무랄데 없었다. 확실히 국립 극단의 소극장이나 아르코 소극장처럼 잘 갖춰져 있는 무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전개된 극도 인상적이었고, 액자식 구성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출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연출은 끈적하고 늘어지기 보다는 간결하고 냉철했다. 터뜨리지 않고 목 끝까지 차오르다 신음소리만 남긴채 삼켜버린 기분.. 그래서 마음을 더 후벼판다.


 더는 이야기를 못하겠다. 연극보다 기구한 현실이 눈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붙이는 말마다 사족이 되는 것 같다. 좋은 연극이었고, 슬픈 현실이다.




 대표적인 부조리극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이 부조리극인줄도 모르고 봤고, 6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인줄도 모르고 봤다. 책을 안 읽으니 뭐.. 안톤 체홉부터 최근에 봤던 <야만인을 기다리며>나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렇고, 다시 한 번 문학에 대한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활자 매체는 정이 잘 안 가는 걸 어떡하나. 올 해 기껏 산거라곤 과학서적과 연극서적 뿐...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는 책으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공연은 딱 7회만 진행되었고, 내가 본 공연은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답을 원하는 관객들과, 정답이 없어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는 연출가의 대화가 관전포인트였다ㅋㅋㅋㅋ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영화감독과 제자, 또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는데, 언어로 규정지어 버리는 순간 희곡이 가진 풍부한 의미를 제한시켜 버리는 것 같아서 정답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아니 그런 짓은 안했으면 좋겠더라. 연출가는 관객분들이 집에 돌아가실 때 ‘혼란’을 품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렇다. 정답을 원하는 건 문학을 수능 문제집으로 배운 우리 사회의 병폐지 뭐. 모르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의심하고 느낀 그대로 두는 것.. 딱 거기까지라고 사무엘 베케트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정작 사무엘 베케트도 고도를 두고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면 내가 글에 썼지!"라고 말했다잖아.


 알긴 알겠는데, 런닝타임은 쉬는시간도 없이 두 시간이 넘었고, 내용은 재미가 없었고, 나는 잠을 잘 못 자서 뒷목이 뻐근했고, 소극장 답게 불편한 의자는 두 시간이나 멀쩡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한 마디로 온 몸이 쑤셔서 죽을 뻔 ㅋㅋㅋㅋ 연극 자체가 집중해서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따라가야 재미있는 연극이 아니라서, 긴장을 풀고 봐도 큰 상관은 없었으니 망정...이 아니라 뭘 해도 재미는 없는 연극이야 ㅋㅋㅋㅋㅋ 인간의 본성을 원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있었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사와 상황, 그리고 변주를 수단으로 삼았다. 연출가나 배우들이나 엄청 고생했겠다 싶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극을 만들어야 하는 연출가의 고민은 꽤 컸겠지. 


 꽤 오랜만에 연극을 봐서 보기전에 설레기도 했는데, 연극을 떠나서 좋은 희곡을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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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을 마주하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설정은 이미 많은 연극과 영화를 통해서 지겹도록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진짜 괜찮은 작품들도 있었고.. 종말이라는 현실감 없는 이야기는 분명 낯선 상황이지만, 결코 신선할 수 없는 소재다. 그래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래도 꽤 재밌었다. 돌아보면 허점투성이고, 중반까지 보고 있기 민망해서 여러 차례 고개를 떨구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나올 땐 배우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히죽거리기도 했고 ㅎㅎ


 설정과 디테일이 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일단 접어두자. 어차피 현실을 이야기 하는 연극은 아니니까.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던 무대디자인도 종말론의 연장에서 그렇게 표현 된 거라고 치자. 하지만 어색했던 연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똑똑하고 예쁜 대학생 역으로 나온 배우는 일단 예쁘지 않다. 배우분께는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스토커가 붙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예뻐야 할 역할인데 안 예쁘고 매력도 없다. 그리고 너무 뻣뻣했다. 온 몸이 굳어 있는 것이 긴장해서 그런 건지 몸을 풀지 않고 연극을 했던 건지 아님 원래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건지.. 연기를 못 하기도 하지만 일단 발음이 너무 부정확했다. 발음 교정이 시급하다. 학교 연극반 아마추어보다 연기도, 발음도 어색했다. 다른 분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는데, 유독 한 분이 자꾸 튀니까.. 이게 안쓰럽기도 하고, 몰입이 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중반부까지는 극이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극 속에서 예상치 못한(그러나 관객들은 충분히 예상했던)상황으로 모두가 본성을 드러내며 끝을 향해 치달았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부터 ㅋㅋㅋ 본성을 드러내고 싸우고 죽이고 끝나고 난 뒤 씁쓸함과 찝찝함을 남기며 인간의 욕망과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미지근한 결론을 택하지 않고, 철저하게 판타지와 난장에 집중했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가 생각날 법한 후반부 난장이었다. 배우들은 연극 속에 자신이 맡은 역할에만 몰입하지 않았고, 때로는 배우 그 자신으로, 때로는 관객으로 변하며 마치 ‘나도 몰라ㅋ 이 연극은 원래 끝이 막장임ㅋ’라고 말하는 듯 했다. 막장에서 더 막장으로, 난장에서 더 난장으로, 그러더니 갑자기 외계인 등장 ㅋㅋㅋ 말 그대로 연극을 안드로메다로 보냄 ㅋㅋㅋㅋ


 글쎄, 어설프게 진지했다면 정말 별로였을꺼고, 어설프게 웃기며 마무리하려 했다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나왔을 것 같은데, 연출가가 이 연극의 장르를 판타지 SF 난장 활극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한 것 같았고, 이를 의도했다면 굉장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후반부에 현실감을 버린 대신에 극이 굉장한 활력을 얻었고, 흐트러진 개연성마저도 뭉개버린 효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난장 속에서도 대충 되는대로 물감 뿌려 버리고 끝낸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가지고 마무리한 것 같았다. 사실 판타지 SF 난장 활극 뭐 이런 건 내 취향임 ㅋㅋㅋㅋ 오랜만에 심각하지 않게 연극보고 웃고 나온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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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기>에 이어서 안톤 체홉의 또 다른 희곡작품을 보았다. 이 사람의 작품을 두 개 정도 보고 나니까 어떻게 작품을 썼는지, 왜 특별한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사랑받아 왔는지 알겠더라.

 

 편곡을 했거나 리메이크를 한 노래들을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원곡의 아우라 안에서 노래하거나, 원곡을 완전히 재해석해서 새로운 노래를 내놓던가. 사실 전자의 경우는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감동을 이미 느낀 상태에서 목소리와 편곡만으로 새로운 감동을 선서해야 하는데, 이는 확실히 원곡의 감흥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후자가 무조건 올바른 편곡과 리메이크의 예냐...면 그건 또 아니다. 원곡을 분해해서 재해석하기에는 원곡 자체가 가진 멜로디나 편곡이 충분히 극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자칫 잘못 손댔다가는 원곡이 주는 감동도, 새 편곡이 주는 감동도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어정쩡한 곡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 확실히 리메이크를 할 때는 편곡의 여지가 많은 노래가 유리하다. 기승전결이나 하이라이트가 확실했던 곡의 경우는 리메이크를 들으면서 원곡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안톤 체홉의 작품은 인물관계가 복잡하게 꼬여있는 반면에, 도드라지게 부각시키는 인물관계가 없다. 흐름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이 흐름이 굉장히 밋밋하다. 마치 서해바다의 넓은 뻘에 아주 천천히 밀물이 밀려오듯하는 느낌이다. 극속의 갈등도 서해바다 파도처럼 있는듯 마는듯 어정쩡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어왔을 것이다. 작품의 플롯을 쫓아가다가 얻게 되는 희열이나 카타르시스나 분노와 같은 격한 감정은 이 작품에선 찾을 수 없다. 이 작품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면서 오는게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도 볼 수 있고, 세 번도 볼 수 있다. 반전을 알고 나면 시시해지는 그런 영화, 두 번 보기 어렵잖아? 이 작품은 인물들의 대사들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는 많은 사건들을 나름대로 구체화 해 보면서, 다양한 감정과 상황으로 변형하여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포인트 때문에라도 다시 찾아봐도 좋을 연극이다. 희곡까지 같이 본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고.

 

 물론 이런 시시한 이유만으로 고전이 되었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거고.. 이 작품속에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느끼게 되는 절망감에서 현대인의 절망감이 오버랩 되었다. 이 작품의 배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러시아 사회를 배경으로 했다면, 현대사회는 그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기 때문에.. 30대가 되고나서 자꾸 과거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게 되는 내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내어준 절망속에서도 이상만을 생각하는 류보비 부인이나, 말만 많은 젊은 지식인  뻬짜나, 현실에 재빠르게 적응한 로빠힌, 가진것 없는 꼰대 레오니드, 그리고 결국 저택을 떠나지 못하는 피르스까지.. 이 연극에는 이렇듯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0여년을 내려오면서도 끊임없이 공연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고전들을 들여다보면 특별하지는 않다. 특별한 것 보다는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순위에 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결코 새롭지는 않다. 사실 여기 캐릭터들도 현대 희곡의 많은 캐릭터들에 비하면 밋밋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들이지 뭐. 아주 재밌거나 아주 좋았던 연극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연극이기는 하다. 물론 다른 배우와 다른 연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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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국내 초연작이다. 장소는 서강대 메리홀. 그냥 대학교 캠퍼스를 오랜만에 가본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설레고 그랬다. 서강대는 처음 가본 곳이기도 하고.. 요즘 그렇게 다시 대학생들이 부럽고 그래서 ㅋㅋㅋ
노벨문학상이고 뭐고 나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처음 들어봤다. 대충 시놉시스를 봤을때 편히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대로 뭐..ㅎㅎㅎ 상징을 가득 품고 있는 리얼리즘 연극이었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되려나...

식민지 혹은 제국주의로 해석해도 되고, 기득권의 폭력적인 지배와 횡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치안 판사가 주인공이자 피해자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결코 선하거나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전형적인 주인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선인이기 보다는 그저 호기심이 과하게 많고, 약간은 삐뚤어진 욕망도 가지고 있는 사내로 묘사된다.

 군인들이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야만인이고, 치안판사는 그 군인들에 맞서 야만인의 인권을 옹호한다. 그리고 치안판사는 그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고문당한다. 보통의 작품과 이 작품이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피지배, 혹은 기득권에 불합리하게 고통받는 야만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 속 야만인은 그저 '존재한다'정도로만 취급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당한 억압의 이야기는 치안판사라는 3자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또 간접적으로 체험된다.(실제로 직접 야만인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 단서들이 있다.) 어설프게 그들의 생각을 해석하는 것보다 철저하게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의문점을 가진다. 시점 자체도 신선하지만, 간접적 체험이라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억지로 야만인이 되려고 고민하지 않고, 작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야만인과 미개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표시했다. 그들의 폭력에는 이유가 없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야만인들에게 크게 패퇴한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원작이 좋고 희곡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구성, 그들의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나체고문과 열연, 보통의 연극보다 훨씬 긴 런닝타임, 뭐 이런것들이 있었지만 그게연극의 완성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뭐랄까.. 마감, 혹은 이음새가 훌륭하지는 않고 덜컹거리는 느낌이 좀 있었다. 몇몇 배우의 연기도 좀 아쉬웠고.. 아, 연출에 있어서 조명에 굉장히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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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연극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연은 연극인대상 9월 2차 공연 지원때 보겠다고 지원했던 연극인데, 그 때 1지망이 "지상 최후의 농담"이었고, 2지망이 이 공연이었다. 사실 그렇게 땡기는 연극은 아니었다. 중년 남성의 상실감과 자아 찾기 어쩌구...라는 설명을 보고 나서 아, 이거 그냥 신파극 아닌가..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2지망은 사람들이 많이 고르지 않은 걸 골라야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이 연극을 선택했다. 많이 보고 싶었거든. 가기 전까지도 약간 찝찝했는데, 보고나서 생각하니 꽤 잘 고른 연극이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거.. 이런식으로 로또나 좀 어떻게..

 

 연극 무대는 문을 상징하는 나무틀과 테이블, 의자 두개, 스탠드, 냉장고로 구성되어있었고, 배경은 텅 비어있는 그대로 두었다. 마치 이사짐을 싹 빼고 기본 옵션만 남아 있는 텅 빈 집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극 속에서 무대가 상징하는 공간은 수시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무대장치가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뿐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상황이나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를 잃고 할 일도 없는 쓸쓸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라는 건 알겠는데, 중년 남성 이외의 인물들은 죄다 요상하다. 


 "어디서부터가 똥이고, 어디서부터가 된장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라는 중년 남성의 대사가 강하게 날아와 꽂혔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상상인지, 이 무대가 나타내는 장소가 어디인지 구분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었다. 지나온 일들을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의식의 흐름이라고 느꼈다. 비어있는 공간은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만으로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변해버린 사회와 변해버린 자신의 위치와 역할, 여기서 오는 허탈감과 상실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정하고 있었던 현실을 은유적인 상황들로 표현했다. 자칫 지루해지고 집중력을 잃기 쉬운 내용임에도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는데, 이 것은 모두 배우들이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특히 중년 남성 역의 이창호씨와 범죄자 역의 김명섭씨의 열연은, 텅빈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무대가 꽉 차고도 모자르다고 느낄 정도로 폭발력 있었다.


 공간의 모호함과 중년 남성의 의식의 모호함이 맞닿아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몽롱하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는 영화라면 연출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눈 앞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진짜로 '잘 본'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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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공연 포스터를 봐서는 그냥 20대 연애 이야기나 할 것 같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또는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류.. 일단 포스터가 꽃 많고 샤방샤방 하잖아? 공연 신청전에 시놉시스를 대충 읽어보고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아서 신청했는데, 막상 극이 시작되고보니 그 때 본 시놉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어리둥절 ㅋㅋㅋ 이런 내용이었구나. 엉뚱하게 만들어진 상황들이 몇몇 일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던 정서들도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의 주된 이야기는 늘 호구 등신이었던 주인공이 주변의 온갖 욕망들 속에서 억압받고 견디다 작은 변화로 인해 성장하고,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체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연극은 그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내며 극의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사랑하고 미치도록 보고싶으면서도 증오하는 애증의 정서, 그리고 내가 참고 또 참고 배려하고 또 배려하다 보면 '내가 힘든거 알아 주겠지..'라는 호구 등신 마인드,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러니까 너도 한 번 해봐'라는 군대 일병 마인드, 나와 닮은 어른을 보면서 느끼는 존경과 증오 사이의 미묘한 정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찾기가 참 힘들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덩어리들이 하나씩 있다. 작가는 연극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을 통해서 이 비뚤어진 생각과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누가보기에도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은건 그것들이 우리 안에 늘 존재해왔던 감정과 욕망들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쿨하니까 인정.


 국립극단의 소극장 판은 처음 가봤는데, 무대가 정중앙에 있고 사방으로 관객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객석 뒤쪽 통로들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주고 받는 대사들이 꽤 많았는데, 특정관객은 자칫하면 배우들의 뒤통수만 한참을 보고 있을 수도 있겠더라. 어쩔 수 없이 동선의 이동도 많아야 되고 시선도 자주 옮겨야 한다.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는데, 산만하기 보다는 이것이 극의 활력, 캐릭터들과 잘 어우러진다고 느껴졌다. 과한 캐릭터들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들도 대부분 준수한 편이었다. 특히나 치즈코역의 김민선씨나 미츠루역의 류혜린씨는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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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재밌을 것 같아서 바로 신청했다. 그렇게 무겁지도 않으면서 생각할거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죽게될 사람들이 농담을 던진다는 것,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건 장난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데, 제주 4.3사건 때 진압을 거부하던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주모자들이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처형당할 때 담배를 피면서 웃거나, 처형자들끼리 농담을 하거나, 심지어 처형을 집행할 군인에게까지 농담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 그리고 이 연극의 작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를 모티브로 삼아 대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형자들이 어떻게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는지, 정확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연극은 그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았다. 물론, 좀 억지스럽긴 했다. 어쩔 수 없는게 이미 주어진 상황자체가 별로 현실적이지 못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것 같으니 생략. 일단 상황 자체가 약간 꽁트 같은 설정이 있던지라, 마치 '웃으면 복이와요' 시절의 꽁트 느낌이 좀 배어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농담이나, 상황이나.... 그리고 그 시절에 코미디 프로그램들에 담긴 사회 풍자나 블랙코미디처럼, 억지 농담과 흘러나오는 웃음들, 그리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 역시 찾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신선한 소재에 비해, 이를 다루고 있는 시선 자체는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이 모노드라마처럼 펼쳐 놓은 극의 마지막도, 깊은 울림을 준다기 보다는 상황에서 오는(스포일러가 될까 차마 이야기 할 수는 없고...) 얕은 동정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무대 배경은 학교 교실 안이었다. 학교 교실을 포로 수용소로 썼다는 설정인 것 같은데, 교실 창쪽에서 노을을 연상시키는 붉고 강한 조명을 쏘았다. 인생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는 그 조명 덕분에 쓸쓸하면서도 왠지 짠한 느낌이 무대 안에 가득했다. 음향이나 무대 의상도 적절했고,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다. 사실, 노인 역을 했던 배우는 대사를 꽤 자주 버벅여서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연륜이 느껴지는 연기였고, 조금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잘 포장해서 연기한 배우들 덕분에 즐겁게 보고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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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반 아이들을 데리고 봤던 공연. 충분히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절제미를 발휘해서 꽤 지루하게 만든 연극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 자체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더라. 나는 몰랐지만.. 


 발표된지 100년이 넘은 연극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연극은 모두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이 작품에도 분명히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등장하고 갈등도 등장하지만, 그러한 갈등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을 부각하지 않고, 지금의 갈등 상황과 갈등을 드러내는 대사들에만 집중한다. 관계는 엄청 복잡하게 꼬아 놨지만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도,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선의 변화도, 극의 흐름을 알려주는 플롯도 그저 흐리멍텅하게 대사 속에 숨겨놓았을 뿐이다. 매우 불친절한거지. 그냥 넋 놓고 보다보면 쟤네가 왜 저런 갈등이 생기는건지 놓치기 쉽다. 대사 속에 숨겨진 심리들을 예민하게 캐치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보통 연극에서는 한시간 가량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축약해서 짧은 시간안에 흐름과 상황을 증폭시켜 놓는다면, 이 작품은 그냥 한시간 가량 벌어지는 대화를 한시간동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대충 홍상수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과하게 꾸며놓지 않았다. 그냥 당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작품 자체는 그렇게 현실적이긴 한데.. 문제는 이 번역투의 대사와 특유의 어색한 연극톤을 보고 있기 쉽진 않더라. 과거의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연극톤으로 말하진 않았을텐데.. 과거의 연극이라면 모를까. 현대에 재가공되는 연극이라면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햄릿 같이 좀 과장된 대사가 필요한 연극이라면 모를까, 이건 절제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인데.. 특히 꼬스챠 역할과 니나 역할... 아르까지나나 트리고린은 연극톤의 대사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던데, 저 둘은 왠지 어색함이 묻어나더라...는 연기도 쥐뿔 모르는게... 


 창작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대사 속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사건이 없기 때문에 대사가 나오게 된 상황을 창조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할 것 같다. 연출가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 부분을 자기 혼자 설정해놓고 낄낄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태처럼. 문제는 그것이 연극을 보는 사람에게도 같은 즐거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지. 희곡도 읽지 않고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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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 전부터도 기대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보고나서도 작품 자체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연출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만족감보다 실망감이 약간 더 컸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해설자가 등장한다. 무대의 암막들을 모두 제거하고,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들마저 그대로 노출한다. 마치 어떤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개의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 놓고 해설자가 하는 설명을 곁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은, 연극이 아니라 한편의 희곡을 읽고 있는 것 같이 연출하기도 했다. 어떤 방식이든 연출가는 관객들이 연극속에 개입할 여지를 굉장히 많이 오픈해두었다. 무대위의 소품은 최대한 간결하게, 음향은 전혀 없었고, 부족한 소품과 어울리지 않는 배역(예를들어 어린이 역할을 성인이 하는 등)은 해설자의 설명으로 대체하였고, 나머지는 관객들의 상상들에 맡겼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명해지는 커녕 면피하는 법만 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잘못도 있지만, 또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기 보다는 책임을 피하는 요령만 늘어나는 것 같다. 진실을 좇아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어느 하나 정상적이지 않던, 나 같은 '어른'들의 모습 역시 잘 표현되었다고 느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아쉬웠다. 모두 그런것은 아니었으나 몇몇 배우들의 발음이 부정확했고, 대사를 외워서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호흡이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배우들이 작품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다보니 연극 자체가 산만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연극이 오픈한지 꽤 시간이 지나고 봤었는데, 오픈 초기에는 더 많이 안 좋았던 모양이더라.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예 장면 중간이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신선함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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