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년만에 음악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다녀온 페스티벌이 2017년의 홀랜페였다. 푹푹 찌는 날씨에 썬더캣을 보고 혓바닥이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지쳤다가 The xx보고 울면서 돌아왔던 그 공연.. 어쨌거나 요즘 사람 적거나 뷰 좋은 곳들만 나들이 다니거나 사람 많은 곳은 축구장 밖에 안다니는 축덕이 되어버려서 오랜만에 누워서 음악이나 듣자하고 9/23 하루만 예매했다. 

 근데 사람 개많고 개덥... 분명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데, 땡볕에 앉아있으니 어마어마하게 덥더라. 솔직히 음악이 잘 안들어왔어. 

 유라x만동, 김오키 새턴발라드, 윤석철 트리오의 공연을 연달아보는데.. 참 힘들다. 유라와 만동의 음악은 어둡고 작은 클럽에서 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고, 김오키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역시나 한낮의 더위와는 어울리지 않았으며, 윤석철 트리오의 음악을 들을 땐 이미 쩔어서 지침.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으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처음이었다. 문제는 페스티벌, 날씨, 음악이 아니라 늙어버린 내 몸이겠지.. 

 그래도 서울숲 페스티벌 자체는 굉장히 분위기 있었는데, 잔디밭에서 돗자리 깔고 보는 선셋 포레스트 스테이지보다는 이렇게 숲속에서 아기자기하게 공연하는 디어디어 스테이지가 너무 운치있고 매력있었다. 아니, 운치라는 표현은 안어울리고 동화 속 한페이지 같은 느낌. 동물들 나와서 연주할 것 같아 ㅋㅋ 내가 선우정아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돗자리를 여기로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는 옳지. 더울 때 맥주마시기 = 언발에 오줌누기지만.. 참을 수 없음 ㅋㅋ 문득 윤석철님의 공연을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예전 댐펑크 내한공연 때 게스트로 공연하셨었다. 역시 블로그가 최고... 

 맥주 부스는 서울 브루어리였는데, 부스가 멀고 하나라서 좀 많이 불편하긴 했다. 위 사진은 이번에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기념으로 만든 한정판 맥주. 맛은 뭐.. 기억이 안난다. 특별히 맛있지도,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은 맥주들.. 그냥 라벨이 사기급으로 너무 예뻐.

 해가.. 넘어간다.. 우산을 접었다.. 행복했다..

 노을이 질 무렵, 스텔라장이 나왔다. 이 때쯤 김오키의 연주를 들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할 무렵 스텔라장이 유려한 불어발음으로 샹송을 부르더라. 불어 발음은 어찌 저리 우아할까. 음악보다는 이름값에 기댄 섭외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좋았다. 오랜만에 샹송들이 듣고 싶어졌다.

 스텔라장 공연이 끝나고 지나는 길에 디어디어 스테이지에서 마리아킴의 공연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스윙을 보았다. 그래도 스윙이 있어야 재즈 페스티벌 답지.. 공연이 끝나고 천년동안도를 검색해보았다. 조만간 진짜 오랜만에 재즈클럽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페스티벌을 선뜻 예매하게 만든 주인공, 선우정아. 선우정아의 가사를 보면 나의 인생철학과 닮아있는 부분이 꽤 보인다. 그래서 참 좋다. 가만보면 굉장히 예술가스러운데, 예술가 특유의 과잉이 선을 넘지 않는다. 보컬도, 음악도. 무대를 상당히 열심히 준비한 것 같은데, 자유분방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였다. 요즘은 1,2집 특유의 정서가 덜 드러나는 것이 삶이 행복해지셨나 싶은데, 이게 아쉽긴 하지만 아무튼 행복하십쇼.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시구요.
 
 페스티벌이 시작하던 첫 해부터 서재페에 비하면 재즈의 정체성도 더 보이고 아기자기해보여서 예매할까말까 고민을 많이했었는데.. 그 시기가 페스티벌에 대한 흥미가 다소 줄어들던 때여서 가지 않았었다. 이번에 가보고 좀 후회스러웠다. 일단 서울숲이라는 공간이 너무 좋았고, 사람이 좀 더 적을 때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좀 가볼걸.. 이제는 뭐.. 어엿하게 잘 자리잡은 페스티벌이 된 것 같아서 좋고 아쉬웠다. 사람 개많아.. 입장줄 개길어..
 
 
+ 가기 전에 들렀던 성수동 난포. 이름은 무슨 쌀국수 가게 같은데 한식집이다. 예쁘고 맛있고 양적고 비싸다. 해먹어보겠다.




 수많은 내한들 다 안가면서 유일하게 예매한게 바로 이 프란츠 퍼디난드 내한공연. 요즘은 그냥 노래를 듣고 싶은데 자꾸 주변에서 따라부르는게 싫어서 좀 꺼려지는 것 같다. 그러다 프란츠 퍼디난드 내한 소식을 듣고, 5년전 내한했을 때 못가고 영상 보면서 슬펐던 기억 + 떼창이 더 즐거울 공연이라는 생각에 예매했다. 문제는 표가 반이나 나갔을라나.. 12시 땡치고 예매했을 땐 자리가 꽤 많이 빠져나갔는데, 취소표가 엄청 나왔다고 하더라. 쾌적한 내한공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취소될 것인가... 이러다 가서 슬램도 하겄소... 나름 예전에 My Favorite Artist A to Z 쓸 때 F에다가 썼던 뮤지션인데....

 그래서 여기도 올려 봄 ㅋㅋㅋㅋㅋ 같이 가자. 이 형들 음악은 진짜 신나.






자라섬은 작년에 가고 카에타노 벨로조 때문에 가고 싶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끌리는 페스티벌은 아니다.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모르는 밴드가 대부분이라. 어쨌든 작년에도 이런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몇 번 봤었는데, 올 해도 덕분에 세번이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공짜로. 귀 호강함.

 첫 날이었던 Pablo Held Trio의 공연은 하나의 Set만 들을 수 있었는데, 그 하나의 Set이 거의 한시간이었음 ㅋㅋ 끊지 않고 공연이 이어졌는데, 어울리는듯 하다가 스러지는, 전위적이고 즉흥적인 음악들이 계속되었다. 뭐지 싶다가 좋았다가, 뭐지 싶다가 좋았다가 ㅋㅋㅋ 이 상태로 한시간 순삭 ㅋㅋㅋ

토요일 공연이었던 Dock In Absolute. 피아노 속주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화려했지만 사실 그렇게 내 스타일은 아니었음.

 

일요일 공연이었던 울프 & 에릭 바케늬우스. 네번째 줄에서 연주하는 손을 보는데 그렇게 눈호강 귀호강 느낌 ㅋㅋㅋㅋ 부자 간에 따뜻한 교감도 느껴졌고, 연주는 뭐.. 세계적 연주를 진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게 감동이었다. 울프 바케늬우스야 나윤선과 함께 투어하고 앨범을 만들기 때문에 그래도 몇 번 봤었는데, 이렇게 기타 연주로만 꽉찬 공연을 보니 확실히 새롭더라. 나윤선의 앨범 수록곡이자 본인이 작곡했던 모멘토 매지꼬도 기타 듀오로 들으니 신선했고, E.S.T의 노래와 그가 좋아한다던 아리랑의 선율도 멋지게 연주하더라. 늘 봐왔지만 사람은 유쾌했고, 연주는 화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따뜻한 공연이었다. 집에 오면서 감동, 감격 이러면서 돌아옴. 공짜라서 황송합니다.ㅜㅜㅜㅜ

 

 

 

 

 

 아프리카 사운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팀의 공연이었다. 흑인음악에 관심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에서 종종 차용되던 아프리카 사운드도 기회가 되면 듣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 날은 원초적인 그들의 그루브를 만끽하고 돌아왔음. 첫 공연이었던 아킴보의 DJ는 아프리카 곳곳의 음악들을 소개시켜줬다. 아킴보의 익살스런 멘트와 몸놀림(?), 그리고 독특한 리듬감과 에스닉한 악기들이 인상적이었다.

 아싸는 저 뽀글머리 늙은 아저씨는 뭐지, 라는 생각으로 한참 듣다가 음악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찾아봤더니 성기완씨네 ㅋㅋㅋㅋㅋ 3버플 나오고 이런거 하고 계셨구나. 아프리카의 멜로디와 비트, 그리고 한국적인 보컬과 리듬을 섞었다. 몇몇 곡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쿨레칸의 무대는 아래 영상으로 대체. 대충 이런분위기였음. 공연은 끝나고 세팀이 함께하는 이런 느낌의 뒤풀이 시간이 꽤 길게 이어졌다.

 

 

 

쿨레 칸의 공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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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보컬 한여름님 노래 잘하시더라. 오른쪽 디아바테 퍼커션 진짜 잘치더라. 성기완 아저씨는 구성졌고 ㅋㅋ

아킴보. 한국에서 활동하는 잘생긴 미국청년. 한국말 잘 하더라.

 

공연 본지 한 달은 되었으니까, 후기랄 것 까지는 없고(사실 기억이 거의 안난다.) 그냥 기록만 남겨두려고. 두 뮤지션이 단공급의 공연을 했는데(팀당 80분 정도의 런닝타임이었는데, 실제로는 조금 더 길었던 것 같다.) 가격이 너무 착했다. 사실 이 때 쯤 너무 바쁠 때라서 취소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이거 세시간도 못즐기면 그게 사는건가 싶어서 그냥 다녀옴 ㅋㅋㅋㅋ 후회는 없었던 공연이었다.

 

잠비나이의 공연은 어느새 세번째인데, 이 전 공연과 달리 조명을 많이 사용했다. 공연장에 있던 조명말고 추가 조명을 설치한 것 같았는데, 이디오테잎의 조명팀이 붙은 것 같았다. 이디오테잎 조명 감독님이 잠비나이의 조명도 담당한 것 같았는데, 나름 괜찮았다. 음악을 시각화해서 조명으로 표현했더라. 그리고 대체적으로 과하게 사용하지 않아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증폭시켜주더라. 아주 가끔...을 제외하고 ㅋㅋ 가끔은 거슬렸음.

 

이 날 나무의 대화의 밴드버젼을 들려줬는데, 알고 보니 EP에 수록된 나무의 대화는 미완성 버젼이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아마 밴드버젼은 새 앨범에 수록될 것 같더라. 아주 마음에 들었음. 이번 공연에서는 자주 연주하지 않던 넘버들을 많이 넣었다고 하더라. 예들 들어 그레이스 켈리 같은 노래. (그런데 나는 세 번 중에 두 번 이 노래 들었다..) 어쨌든 공연은 참 마음에 들었다. 끝. 사실 잘 기억이 안나. 좋았던 것 밖에.

 

 이어진 이디오테잎의 공연은.. 예전에 1집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페스티벌에서 볼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는데, 한 번은 다른거 보느라 못봤고, 한 번은 예매했다 취소했고, 한 번은 늦어서 끝날 때 10분만 봤었다. 그리고 그 세 번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풔킹 그레이트한 경험이었다. 익히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디오테잎 공연팀에 왜 조명팀이 필요한지도 잘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도 거의 다 들었고. 뒤로 갈수록 신났음. 리뷰는 초반부에 공연했던 Pluto 영상으로 대체. 초점은 나갔지만, 대충 저런 분위기였다. 그리고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강렬하고 댄서블한 넘버들이 이어졌다.

후반부의 분위기는 이것보다 13배 후끈했음.

 

이건 공연이 끝나고 사진 찍을 때. 공식 페북가면 있다. 나도 있다.

​둘째날은 조금 느긋하게 도착했다. 이 날은 맥주를 포기하고 차를 끌고 갔다. 집에 지하철타고 늦게 들어가면 다음날 출근이 너무 힘들것 같아서.. 결론은 대실패.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뭐.. The XX의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한시간을 넘게 대기한 끝에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여러분. 그것이 여러분을 위하는 길이고 지구를 위한 길입니다. ​둘째날은 딱 세개의 공연을 보면 됐었다. Sampha, Rhye, The XX. 

 그 시작은 Sampha였다. 음악은 좋았지만 사실 가창력이 좋을거란 기대는 안했다. 가창력은 예상대로,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기대보다 약간 이하. 그래도 공연 자체는 엄청나게 끝내줬다. 그의 음악이 피아노와 전자음을 베이스로 하는 음악들이었는데, 라이브에서도 다양한 소스들을 잘 활용했다. 가창 퍼포먼스는 그저그랬지만 방해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런 아쉬움을 덮어버릴만큼의 라이브 공연을 보았다. 음악도 센스있다고 느꼈지만, 공연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센스를 보여줬다. 음악가면서 예술인st. 지켜보는 나는 그저 황홀했다. 왜 Sampha를 원하는 뮤지션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후반부에 Blood On Me를 부를땐 힘겨워보였는데, 그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화려하고 멋있었다. 이게 라이브지... 특히 드럼치던 흑형.. 간지쩔...

 ​Rhye의 공연은 또 누워서 하늘보면서 구경했다. 굳이 뛸 필요가 없는 공연이니까. 이 날은 구름이 좀 꼈는데, 해질녘 노을과 참 잘 어울렸다. 그 특유의 멜랑꼴리, 소피스틱한 느낌은 너무 맑은 것보다 이 정도가 딱 좋지. 프로듀서인 로빈 한니발 없이 마크 밀로쉬만 온 모양이던데, 영상으로 봤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라이브를 잘해서 놀랐다. 하긴 내가 그 라이브 영상을 본것도 벌써 4-5년 됐을테니까... 그 땐 진짜 별로였는데 ㅋㅋㅋㅋ 현악기와 브라스들을 비롯해 많은 악기를 동원한것 치고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저 그랬다. 분위기에 취해 즐겁게 봤지만 Rhye는 '스튜디오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

​그리고 하늘위의 달과 함께 The XX의 등장.

 찍은 사진이 왜 다 이모양이냐. 흥분했나. 한시간이 넘는, 유난히 긴 셋업시간이 끝난뒤 The XX가 등장했다. The XX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 급이었다. 공연 시작전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공연 내내 울려퍼지던 수많은 괴성(?)들 ㅋㅋ 나도 나름 1집때부터 팬이라면 팬이었었기 때문에 공연은 진짜 재밌었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찝어본다면, 1. 로미의 찰랑거리는(고데기 한 것 같은) 직모와 좌우로 흔들던 헤드뱅. 2. 로미의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발음과 나지막한 목소리.(여자였다면 올리버의 목소리였겠지)  3. 팬이 선물한 올리버의 모자(근데 하필 A Violent Noise를 부를때라니.) 4. 노래가 끝날 때마다 마주보고 연주를 마무리 하던 로미와 올리버. 5. 엔딩곡 Angels에서 제이미의 실수와 나지막하게 '제이미~'하고 부르던 로미의 목소리. 이 때 관객들 다 녹음. 대충 이 정도? 공연을 본 사람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알겠지. 공연 보기전에 복습하면서 느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The XX의 노래를 들어왔더라. 생각보다 더 많이 팬이었던 것 같다. 밤이라 특유의 시크한 음악과 조명도 잘 어울렸다. 사실 나머지 공연들은 다 해 떠있을때라 조명이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유난히 이 팀의 조명과 안개 같은 무대 장치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특히 Jamie xx의 솔로앨범 수록곡 Loud Places때의 무지갯빛 조명.) 한시간 반이 흘러가는게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또 온다면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함.

 

 워낙 욕을 많이 먹었던 Fake Virgin Seoul의 첫 페스티벌이었지만 공연진행이고 뭐 그런 것들을 떠나 라인업을 참 잘 구성했다고 생각했다. 단독 내한이라면 망설였을 팀들을 묶어서 페스티벌로 진행하니까 망설임 없이 티켓을 구매했던 것 같다. 페스티벌의 성패는 화려한 헤드라이너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허리라인업에 달려있다고 생각함. "이 팀 때문에 예매하고 싶은데 얘네랑 얘네도 나온대." 이 느낌이 잘 되는 페스티벌의 느낌. 황홀한 이틀이었음.

 

 

 

주말 내내 비소식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 체육대회를 연다는 기상청이라 틀리길 바라고 있다가 문득, 꼭 '비가 오지 않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헥헥대느니 차라리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 편이 실신할 확률이 적겠다 싶었다. 물론 레인부츠도 못신고 가는데 신발이 다 젖어버리는건 고역이겠지만.. 한여름에 하는 페스티벌은 이번이 두번째 참여다. 뭐, 찌는듯한 더위든, 온 몸을 적시는 폭우든, 뭐 그런게 다 한여름 페스티벌의 매력아니겠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강 난지공원은 너무 멀다. DMC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입장. 조금 늦게 도착한 그곳에서는 서사무엘과 김아일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공연을 하나 건너뛰고 도착했으니 ​시간상으로 일찍 도착한건 아니었다. 그런데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해질 무렵부터 헤드라이너 위주로 공연을 보려고 계획한 사람들도 많았나보다. 나한테는 Thundercat이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정도면 일찍 도착한 편이더다. 제법 괜찮은 자리를 잡았다. 도착하자마자 맥주부터 샀다. 맥주는 Barbaria였다. 구매를 하니까 병맥주 또는 캔맥주를 따라줬다. 맛은 그냥 그렇다. 맛이 문제냐, 곧 Thundercat이 공연하는데.. 싸이키델릭을 제대로 즐기려면 맨정신에는 안돼. 앨범제목도 "Drunk"잖아?

 

​ 그렇게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맥주를 한 잔 더 사들고 스탠딩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Thundercat이 등장. 신보의 인트로 트랙으로 시작한다. 몸이 녹아 내릴 것 같은 햇볕과 맥주 두 잔으로 나른해진 몸,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썬더캣의 음악. 썬더캣은 공연이 끝날 때마다 연신 "Fuck..."을 나지막히 외쳤다. 미친 더위였다. 썬더캣이 입고 왔던 빨간색 츄리닝 반바지가 부러웠다. 내가 워낙에 좋아하던 음악이었지만 여자친구는 결국 더위에 못 버텨했고, 공연이 후반부에 다다르니 나도 음악보다 내 몸 걱정이 먼저 되었다. 이러다간 내일까지 못버티겠다 싶은거지. 이런 페스티벌이 아니면 썬더캣을 우리나라에서 볼 일이 있을까 싶은데..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 음악은 정말 미쳤는데, 이 날의 더위가 더 미쳐 날뜁니다. 공연을 보면서 뒤에 있던 O가 뭘 뜻하는지 엄청 궁금했다.

 ​다음은 Oh Wonder의 공연이었다. 썬더캣 공연을 볼 때 썬더캣 주위에 있던 원 O가 무슨의미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OW, Oh Wonder를 위한 무대장치였다. 오원더로 말할 것 같으면 약 8년 전쯤이라면 제법 들었을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전자음악, 상큼한 보컬. 근데 이 공연을 신청하기 전까지는 누군지도 몰랐어. 나한테는 다음 공연인 NAO를 기다리는 휴식시간이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잡은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자리가 너무 좋았다. 회색빛 구름으로 뒤덮였던 하늘이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하늘 색이 너무 예뻤다. 누워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각도에서 보이던 모습이 사진과 같다. 저 스크린은 조명 음향 콘솔의 뒤에 있던 스크린이다. 아예 뒤에 앉은 사람들을 위한 스크린. 파스텔톤, 청량감 넘치는 음악과 하늘.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들었던 "Ultralife"는 참 좋았다. 무엇보다 엄청 더웠을텐데도 너무너무 행복해보이던 그들이 참 좋았다. 무대위에 둘 도, 무대 아래 사람들도.

그리고 Nao가 나왔다. 나오라니... 첫 EP나왔을때 진짜 좋다며 포스팅하면서도 직접 보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첫째이유는 일단 나오가 아직 뜨기 전이었어... 당시엔 EP만 발매된 상황이었으니까. 둘째는 티나셰 공연도 취소되는 마당에 나오는 무슨 ㅋㅋㅋ 불러오면 뭐해 예매가 안되는데 ㅋㅋㅋ 그런데 그게 일어남 ㅋㅋㅋㅋ 나오를 보면서 여러가지로 놀랐는데, 첫째로는 생각보다 통통했고, 둘째로는 흥이 지나치게 넘쳤고, 셋째는 노래속의 목소리가 꾸민 목소리가 아니라 실제 자연스러운 본인 목소리였다는 것. 세번째가 사실 가장 충격적이었다. 말하는거 보고 사람들다 빵터짐 ㅋㅋ 저게 실제 목소리였을줄이야.. 어쨌건 이 누나(실제로 누나는 아니지만) 흥이 엄청 넘치더라. 목소리 뿐만 아니라 온 몸에 그루브가 넘쳐흘렀다. 정규앨범이 하나뿐이다 보니까 듣고 싶은 노래는 다 들었던 것 같다. 때로는 관능적이고 때로는 소울풀하고. 라이브 볼 맛 나는 무대를 보여줬다. 유일한 옥의 티는 시종일관 그녀의 노래를 따라부르던 옆 남자. 아무리 팬이라도 떼창은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거에요.. 나오 공연이 끝난뒤에 년앤년은 안보고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위해서.

 

 

 

 ​창동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몇 가지 혜택 중 하나다. 바로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창동의 공연장 플랫폼 창동 61. 가끔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에 좋은 공연을 할 때가 있다. FNL은 Friday Night Live의 약자로 6100원이라는(61이 뭘 상징하는 걸까...) 아주아주 저렴한 가격에 좋은 공연을 제공한다. 이 날의 컨셉은 "언니들"이었는데, 좋은 음악을 하고 있는 여성 뮤지션들을 컨셉으로 하는 공연이었다. 한마디로 걸크 뭐 그거.

 

 공연 제목대로 금요일에 하는 공연이었는데, 토요일, 일요일이 HLF가 예정된 날이어서 사실 엄청 망설였다. 체력을 좀 비축해둬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그래도 예매했던건 일단 좌석 공연에, 공연장은 집 앞이어서.. 무엇보다 김사월과 3호선 버터플라이가 나온다는데.. 충동적으로 질러버렸다. 예상대로 후회없는 공연이었음.

 

​선착순 100명에게 1 Free Drink 제공이었다. 예매를 그럭저럭 일찍 한 편이어서 받을 수 있었는데, 뭐였더라..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였나... 국산맥주는 클라우드만 가끔 마셨는데, 하이트를, 안주도 없이, 뭐 섞은것도 아니고 오롯이 맥주만, 먹었다. 이것이 정녕 파는 맥주인가?!?!?!?!?  이걸 누가 사마셔??????? 그러면서 다 마심 ㅋㅋㅋㅋㅋㅋㅋㅋ 마셔야 더 즐거우니까. 무엇을 위한 맥주였던 것인가. 

 

 첫 공연이었던 김사월. 옆에는 공연을 도와준 키보디스트였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일주일 넘었다고 벌써 잊었다. 김사월의 공연은 두번째였는데, 워낙 좋아하는 목소리니까. 사실 전반부에 신나는(김사월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노래들을 할 때는 박자가 무너지는 듯 하여 아쉬움도 좀 있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며 특유의 조용하면서도 시니컬한 노래를 할 때는 그 매력이 어우... 퇴폐미 어우.... 악취, 접속 같은 노래 정말 좋았다. 아, 젊은 여자도 ㅋㅋ 키보드하고의 케미도 좋았고.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에 갔다가 백스테이지에 김사월이 나와서 깜짝 팬미팅(?) 시간이 있었다. 나는 쿨해서(?) 사진은 안찍었지만, 사진 찍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노래와 달리 현실의 김사월은 소녀소녀한 매력이 있었음.

​ 빌리 어코스티는 예전에 좋다길래 지나가듯 들었던 기억이 있는 밴드다. 지나가면서 듣고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안들었다.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너드 세명이 지하 창고에서 지들끼리 심취해서 노는 느낌 ㅋㅋㅋㅋ  이게 그냥 욕은 아니고,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노는게 '멋있어 보이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오로지 본능에 충실하게 공연한다는 느낌. 야생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으면서도 연주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 술마시고 무대 오른건 아니겠지...... 

​ 언젠가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누구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감작스러운 물음에 누구를 답해야 할 지 몰랐었다. 좋아하는 팀이 너무 많아서기도 했지만, 밴드음악을 들어온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취향이 불분명했었던 것 같다. 지금 물어본다면 두 팀 정도는 먼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니네 이발관하고 3호선 버터플라이. 그 중에서도 3버플은 유난히 라이브 영상을 많이 본 밴드였는데, 이제서야 처음으로 라이브를 보게 되었다.

 이 날 공연의 가장 큰 언니였던 남상아씨의 보컬을 현장에서 들은 느낌은 상상이상이었다. 제멋대로 삐죽거리는 음정을 넘어서는 그녀의 감정, 감성.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았다. 공연은 최근 앨범인 Divided in Zero에 수록된 노래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앵콜곡 "깊은 밤 안개 속"이었다. 사실 공연을 가면서 가장 기다렸던 곡이기도 했다. 이 라이브를 본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저장해서 꺼내보고 싶은데... VR이 조금 더 현실화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혁명적인 라이브 영상들이 나오겠지.

​ 즐거웠음. 다음은 HLF 후기. 언제 쓸지 모름.

 



드르르르르르르르ㅡㄹ라 디자이너
레트로 펑크 턱시도
몸몸몸매 박재범
섹시스타 트레이 송즈

미칠정도는 아니지만 좋은 스타트. 무엇보다 호손을 올 해도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게 좋다. 게다가 이번엔 턱시도로 내한하는거니까 공연 셋리스트도 많이 다를거고.
트레이 송즈와 디자이너는 예전에 힌트가 나왔을때부터 예상했던 라인업이다. 멈블랩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중에서도 디자이너는 특별히 더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안 볼 듯. 판다나 티미 터너 같은건 보고 싶기도 하다. 그치만 라이브도 잘 못하는데 그거 기다리겠다고 보고 있진 않을 것 같아... 시간되면 드르ㅡ르르르르르르르르롸는 한 번 들러서 볼 수도 있고 ㅋㅋㅋ 트레이 송즈는 돈 값 하겠지. 노래도 좋고, 스타성도 있고, ssf 입장에서는 꽤 좋은 선택지.


트랜드를 이끌고 있는 남녀 알앤비 뮤지션이라는 힌트를 듣고, 남은 해외 라인업을 한 번 예측해봤다. 얼터너티브 알앤비 뮤지션들이 올 것 같은데, 여자는 시드나 티나셰...가 왔으면 좋겠다. 시드는 디 인터넷으로 한 번 내한했었고, 티나셰는 오려다가 취소됐고 ㅋㅋ 하지만 ssf 페북을 보면 올 초에 즈네 아이코 노래가 올라와 있더라... 별론데 나는...
갤런트는 록페가고 앤더슨 팩은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하고.. 미겔이 왔음 좋겠지만 사이즈가 아닐 것 같고.. 디비젼이 왔으면 좋겠다 싶긴 한데.. 얘넨 노래는 혼자해도 어쨌든 듀오인데. 아니면 로 제임스? 랄레이 릿치? 말 하다 보면 한 명은 걸리겠지 뭐.

보고 싶은 애들은 참 많은데, 그래서 2차 라인업은 언제요?

 

 

 

 흥분을 감출수 없어서 여기라도 써야겠다. 1차라인업에 The xx, 샘파, 라이를 보고 세 팀이면 돈 값은 하겠다 싶어 예매했었다. 그런데 그 뒤로 나오는 얘기들이 오 원더나 년앤년처럼 일렉트로 신스팝 계열 뮤지션들이길래 그 쪽 뮤지션들이 다수겠거니 했는데.. 오늘 2차 라인업 보고 진짜 소름돋았다. 예정되었던(?) Oh Wonder야 그렇다치고, Thundercat은 그냥 나 혼자만 바라고 있던 라인업이었는데 그게 실현되었다. 현장에서 싸이키델릭한 Funk를 실컷 즐길 수 있겠다. SSF에서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다른 한팀은 무려 Nao ㅋㅋㅋㅋㅋ 이 정도의 라인업이면 지산이랑 같은 날짜에 할 만 하지. 나만해도 록 음악이 위주인 페스티벌은 손이 잘 안가니까. Fake Virgin이 진짜 단단히 마음 먹은 것 같다. 전국의 힙스터 다 모으려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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