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공연 포스터를 봐서는 그냥 20대 연애 이야기나 할 것 같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또는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류.. 일단 포스터가 꽃 많고 샤방샤방 하잖아? 공연 신청전에 시놉시스를 대충 읽어보고 생각보다 재밌을 것 같아서 신청했는데, 막상 극이 시작되고보니 그 때 본 시놉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서 어리둥절 ㅋㅋㅋ 이런 내용이었구나. 엉뚱하게 만들어진 상황들이 몇몇 일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던 정서들도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의 주된 이야기는 늘 호구 등신이었던 주인공이 주변의 온갖 욕망들 속에서 억압받고 견디다 작은 변화로 인해 성장하고,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체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연극은 그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한 캐릭터가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내며 극의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사랑하고 미치도록 보고싶으면서도 증오하는 애증의 정서, 그리고 내가 참고 또 참고 배려하고 또 배려하다 보면 '내가 힘든거 알아 주겠지..'라는 호구 등신 마인드,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러니까 너도 한 번 해봐'라는 군대 일병 마인드, 나와 닮은 어른을 보면서 느끼는 존경과 증오 사이의 미묘한 정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찾기가 참 힘들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썩어 문드러진 덩어리들이 하나씩 있다. 작가는 연극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을 통해서 이 비뚤어진 생각과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누가보기에도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은건 그것들이 우리 안에 늘 존재해왔던 감정과 욕망들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쿨하니까 인정.


 국립극단의 소극장 판은 처음 가봤는데, 무대가 정중앙에 있고 사방으로 관객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객석 뒤쪽 통로들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주고 받는 대사들이 꽤 많았는데, 특정관객은 자칫하면 배우들의 뒤통수만 한참을 보고 있을 수도 있겠더라. 어쩔 수 없이 동선의 이동도 많아야 되고 시선도 자주 옮겨야 한다.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는데, 산만하기 보다는 이것이 극의 활력, 캐릭터들과 잘 어우러진다고 느껴졌다. 과한 캐릭터들에 완벽하게 스며들지 못했다고 느껴지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들도 대부분 준수한 편이었다. 특히나 치즈코역의 김민선씨나 미츠루역의 류혜린씨는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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