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부조리극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이 부조리극인줄도 모르고 봤고, 6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인줄도 모르고 봤다. 책을 안 읽으니 뭐.. 안톤 체홉부터 최근에 봤던 <야만인을 기다리며>나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렇고, 다시 한 번 문학에 대한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활자 매체는 정이 잘 안 가는 걸 어떡하나. 올 해 기껏 산거라곤 과학서적과 연극서적 뿐...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는 책으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공연은 딱 7회만 진행되었고, 내가 본 공연은 마지막 공연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답을 원하는 관객들과, 정답이 없어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는 연출가의 대화가 관전포인트였다ㅋㅋㅋㅋ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영화감독과 제자, 또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는데, 언어로 규정지어 버리는 순간 희곡이 가진 풍부한 의미를 제한시켜 버리는 것 같아서 정답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아니 그런 짓은 안했으면 좋겠더라. 연출가는 관객분들이 집에 돌아가실 때 ‘혼란’을 품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렇다. 정답을 원하는 건 문학을 수능 문제집으로 배운 우리 사회의 병폐지 뭐. 모르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의심하고 느낀 그대로 두는 것.. 딱 거기까지라고 사무엘 베케트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정작 사무엘 베케트도 고도를 두고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면 내가 글에 썼지!"라고 말했다잖아.


 알긴 알겠는데, 런닝타임은 쉬는시간도 없이 두 시간이 넘었고, 내용은 재미가 없었고, 나는 잠을 잘 못 자서 뒷목이 뻐근했고, 소극장 답게 불편한 의자는 두 시간이나 멀쩡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한 마디로 온 몸이 쑤셔서 죽을 뻔 ㅋㅋㅋㅋ 연극 자체가 집중해서 하나하나 다 이해하고 따라가야 재미있는 연극이 아니라서, 긴장을 풀고 봐도 큰 상관은 없었으니 망정...이 아니라 뭘 해도 재미는 없는 연극이야 ㅋㅋㅋㅋㅋ 인간의 본성을 원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있었는데,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사와 상황, 그리고 변주를 수단으로 삼았다. 연출가나 배우들이나 엄청 고생했겠다 싶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극을 만들어야 하는 연출가의 고민은 꽤 컸겠지. 


 꽤 오랜만에 연극을 봐서 보기전에 설레기도 했는데, 연극을 떠나서 좋은 희곡을 만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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