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의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국내 초연작이다. 장소는 서강대 메리홀. 그냥 대학교 캠퍼스를 오랜만에 가본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설레고 그랬다. 서강대는 처음 가본 곳이기도 하고.. 요즘 그렇게 다시 대학생들이 부럽고 그래서 ㅋㅋㅋ
노벨문학상이고 뭐고 나는 소설은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처음 들어봤다. 대충 시놉시스를 봤을때 편히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예상대로 뭐..ㅎㅎㅎ 상징을 가득 품고 있는 리얼리즘 연극이었다. 리얼리즘이라고 해도 되려나...

식민지 혹은 제국주의로 해석해도 되고, 기득권의 폭력적인 지배와 횡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치안 판사가 주인공이자 피해자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결코 선하거나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전형적인 주인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선인이기 보다는 그저 호기심이 과하게 많고, 약간은 삐뚤어진 욕망도 가지고 있는 사내로 묘사된다.

 군인들이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야만인이고, 치안판사는 그 군인들에 맞서 야만인의 인권을 옹호한다. 그리고 치안판사는 그들을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고문당한다. 보통의 작품과 이 작품이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피지배, 혹은 기득권에 불합리하게 고통받는 야만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 속 야만인은 그저 '존재한다'정도로만 취급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당한 억압의 이야기는 치안판사라는 3자의 시선으로 해석되고, 또 간접적으로 체험된다.(실제로 직접 야만인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 단서들이 있다.) 어설프게 그들의 생각을 해석하는 것보다 철저하게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의문점을 가진다. 시점 자체도 신선하지만, 간접적 체험이라는 것에서 오는 답답함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억지로 야만인이 되려고 고민하지 않고, 작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야만인과 미개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표시했다. 그들의 폭력에는 이유가 없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야만인들에게 크게 패퇴한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원작이 좋고 희곡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신선하고 실험적인 구성, 그들의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나체고문과 열연, 보통의 연극보다 훨씬 긴 런닝타임, 뭐 이런것들이 있었지만 그게연극의 완성도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뭐랄까.. 마감, 혹은 이음새가 훌륭하지는 않고 덜컹거리는 느낌이 좀 있었다. 몇몇 배우의 연기도 좀 아쉬웠고.. 아, 연출에 있어서 조명에 굉장히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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