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반 아이들을 데리고 봤던 공연. 충분히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절제미를 발휘해서 꽤 지루하게 만든 연극이었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 자체가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더라. 나는 몰랐지만.. 


 발표된지 100년이 넘은 연극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연극은 모두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극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이 작품은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이 작품에도 분명히 얽히고 섥힌 관계들이 등장하고 갈등도 등장하지만, 그러한 갈등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을 부각하지 않고, 지금의 갈등 상황과 갈등을 드러내는 대사들에만 집중한다. 관계는 엄청 복잡하게 꼬아 놨지만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도, 그로 인해 생기는 감정선의 변화도, 극의 흐름을 알려주는 플롯도 그저 흐리멍텅하게 대사 속에 숨겨놓았을 뿐이다. 매우 불친절한거지. 그냥 넋 놓고 보다보면 쟤네가 왜 저런 갈등이 생기는건지 놓치기 쉽다. 대사 속에 숨겨진 심리들을 예민하게 캐치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보통 연극에서는 한시간 가량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축약해서 짧은 시간안에 흐름과 상황을 증폭시켜 놓는다면, 이 작품은 그냥 한시간 가량 벌어지는 대화를 한시간동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대충 홍상수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과하게 꾸며놓지 않았다. 그냥 당시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작품 자체는 그렇게 현실적이긴 한데.. 문제는 이 번역투의 대사와 특유의 어색한 연극톤을 보고 있기 쉽진 않더라. 과거의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연극톤으로 말하진 않았을텐데.. 과거의 연극이라면 모를까. 현대에 재가공되는 연극이라면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햄릿 같이 좀 과장된 대사가 필요한 연극이라면 모를까, 이건 절제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인데.. 특히 꼬스챠 역할과 니나 역할... 아르까지나나 트리고린은 연극톤의 대사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던데, 저 둘은 왠지 어색함이 묻어나더라...는 연기도 쥐뿔 모르는게... 


 창작자의 구미를 당길만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대사 속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 구체적인 사건이 없기 때문에 대사가 나오게 된 상황을 창조할 수 있으며, 그로인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할 것 같다. 연출가는 잘 드러나지도 않는 부분을 자기 혼자 설정해놓고 낄낄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변태처럼. 문제는 그것이 연극을 보는 사람에게도 같은 즐거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지. 희곡도 읽지 않고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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