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야기 26

39회 서울 연극제 참가 후기

39회 서울 연극제에 100인의 관객평가단으로 참여했다. 창작극과 번안극으로 이루어진 쟁쟁한 10작품이 출품되었고, 나는 6작품을 관람하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많이 보고 싶었지만, 6개 보는 것도 죽을뻔 했다. 왜 항상 이런걸 신청한 시기는 바쁘거나 아픈걸까. 어쨌든 여섯작품의 간단한 후기. 1. 극단 그린피그 안톤 체홉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작품. 분명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가 만든 작품인데, 체홉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공적인 오마주 작품이었다. 체홉스러운 작품답게 보기 편한 연극은 아니었지만, 일상에 스며든 공포들이 다양한 인간군상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었다. 특히나 현실에 대해 괴로워하면서도 위선적이었던 농장 주인 내외가 가장 와닿았고, 뒤늦게나마 자신..

연극이야기 2018.06.06

즉각반응 - <무라>

무대소품이라고는 밥상하나가 끝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두 배우가 뿜어낸 열정과 열기만으로 극장 전체가 가득찼던 멋있는 작품이었다. 연극은 아들의 시선에서 진행되었고, 특별한 서사나 드라마 없이 전개되었다. 사실 '가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눈물샘 반쯤은 이미 차오르는 주제아닌가? 사실 그래서 가족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건 좀 사기야. 얘기가 구질구질하고 신파로 흘러가도 가족 이야기만은 참기가 힘들어. 게다가 기구한 가족사야 현실에서도 차고 넘치고 우리집도 평탄하지 않은데 남의 가족사까지 보면서 울고 싶진 않거든. 그래도 연극은 비교적 차분한 톤을 유지했다. 중간까지 보통의 부자관계처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외면해왔던 부자가 서로 닮아있음을 알아가는 모습, '무(無)..

연극이야기 2016.09.26

줄리스 리빙룸 - 하녀들

나는 돈 욕심이 큰 편은 아니고, 그냥 가진만큼 쓰면 된다 주의기는 한데, 가끔 그 수위를 넘나들 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좋은 오디오를 봤을 때, 조금 더 좋은 헤드폰을 봤을 때, 조금 더 좋은 렌즈를 봤을 때 ㅎㅎㅎ 현재 가장 이슈가 되는 키워드가 뭐냐...면 그것은 금수저 흙수저. 사실 시작점이 다른 것은 자유경제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되어 간다는게 문제다. 뭐, 이렇게 말하면 너는 언제 한번이라도 뜨겁게 노력해보았느냐,라고 입에 거품물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분법으로 불가능해!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분명 차이가 크다. 돈이 권력이고 돈이 신분이야.... 오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물 위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

연극이야기 2016.09.13

콘텐츠 플래닝 - <쉬어 매드니스>

추리극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보통의 추리극은 치밀한 플롯과 떡밥과 맥거핀들 사이에서 머리를 사정없이 굴리다가 모든게 맞아 떨어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이 연극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관객은 직접 질문하고 배우들은 진술을 하며 형사와 관객이 함께 추리를 해나간다. 배우 네명이 모두 범인이 될 수 있는 용의자들이고, 모두 수상한 정황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네 명의 용의자가 범인이 될 수 있는 네 가지 결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배우들이 던지는 수많은 떡밥이 모두 맥거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보통의 추리극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은 주어진 정보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용의자가 정황증거 밖에 없다. 어느쪽으..

연극이야기 2016.09.04

드림시어터컴퍼니 - <그놈을 잡아라>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원치않다면 뒤로가기 클릭.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모티브에서 시작했지만, 살인의 추억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라는 컨셉에서 시작했다면, 이 연극은 '그놈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를 컨셉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묵직한 한방이 있었다. 연극은 과거의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현재와 과거를 반복해서 오가면서 진행된다. 영화였다면 30여년이나 차이가 나는 과거와 현재는 배경만 봐도 그 경계가 뚜렷했을 텐데, 연극의 특성상 기껏해야 대사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툭 던진 작은 대사에서 배경이 달라졌다는 암시가 있었지만 흘리기 쉬웠고, 과거로 다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시점이 나왔을 때에서야 두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

연극이야기 2016.09.04

극단 아우라, 모이공 <내 이름은 상하이박>

제목과 내용이 좀 쌈마이 느낌이라 땡기진 않았지만.. 모이공 공연이었던 이 꽤 좋았던 것이 기억나서 이번에도 다시 찾았다. 막공이라 사람도 꽤 많더라. 배경이 수시로 바뀌고 많은 역할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무대 세트의 이동과 동선을 짜기 꽤 어려웠겠다 느꼈다. 그래도 바퀴 달린 가림막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잘 채워졌다. 길상역의 김명섭님은 전에 공연도 그렇고 오늘 공연도 그렇고 참 다재다능하다고 느꼈다. 상하이 박으로 오해받아 들어갔던 길상의 이야기는.. 어쩌면 시대의 '영웅'을 찾고 있었던 그 시대의 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영웅의 영웅담과 희생이 독립의 도화선과 같은 역할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글쎄.. 요즈음에 이 이야기를 대입해보면 어떨까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오랜만에 봤던 연..

연극이야기 2016.08.27

몽 씨어터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제목을 보고서 살짝 걱정도 했지만,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연극인 것 같아 신청했다. 이 연극은 창작극이고 거의 초연이라고 한다. 창작극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본 것 같았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가치가 보편성에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창작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안에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연출 방식도 마찬가지고 연극이 던져주는 메세지도 그렇고. 물론 이 연극이 지금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특수성을 잘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 이슈가 되는 병폐들을 그려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특수한 개인을 나타내기 보다는,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예..

연극이야기 2016.03.21

극단 두 <떠도는 땅>

창작산실에서 지원하는 여러 창작극 중의 하나다. 전에 도 그랬고, 이 작품도 그랬다. 미스테리 극이고, 시놉시스를 봤을 때 굉장히 매력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미스터노 이다. 미스터 노는 아버지의 장례식 마치고 아버지의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한다. 하룻밤만 지나면 다 끝날 줄 알았던 미스터 노는 온갖 인물과 사건에 떠밀리기 시작한다. 미쎄스노와 김대리의 불륜, 회사 부도로 인한 수만 마리 닭의 떼죽음, 연쇄살인범의 알 수 없는 종적, 생활고에 시달려 첫사랑과의 기억을 값나가는 유물로 바꾸려는 영지,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노영감의 귀신 등 이 불길하고 모호한 기운은 온갖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된 미스터 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연극이야기 2016.03.03

디렉터그42 <오카타 토시키 단편소설전 - 여배우의 혼, 여배우의 혼 속편>

이 연극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연극은 진짜 재밌다. 타의 반으로 시작하게 된 연극반이지만, 그래도 나름 잘 시작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특히 이 연극처럼 조금 독특한 작품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영화를 훨씬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연극도 영화만큼 좋다. 망했어.... 흑인음악 동아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 연극은 연극과 근대미술,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설치미술이 혼재되어있다. 연극은 두 배우가 번갈아가면서 모노드라마 처럼 진행되는데, 길고 긴 대사들과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전위적인 퍼포먼스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겨온다. 무엇보다 여배우이자 몸으로 하는 퍼포머(?)인듯 보이는 조아라씨의 연기가 꽤 매력있었다. 대사가 많다 보니 가끔 버벅이기도 했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

연극이야기 2016.01.24

극단 후암 <칸사이 주먹>

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극단 후암의 또 다른 작품 을 보고 왔다. 생각할 만한 것들을 던져주는 좋은 작품들을 올리는 것 같다. 는 연극이 끝나고 정말 많이 먹먹했고, 역시 떠오르는 것들이 이것저것 있었다. 역사와 국가 같은 떠올릴 때마다 인상부터 찌뿌려지는 저 단어들과 국가 앞의 개인과 돈까지.. 개인적으로는 역사와 국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김질 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자꾸 이상한 쪽에서 저 단어들이 쓰이다보니까 이미 머릿속에 너무 왜곡 되어버린 것 같았어. 하지만 연극은 좀 아쉽긴 했다. 거의 대부분이 일본어로 되어있었고, 약간의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극이 진행되었고, 그래서 자막이 있었는데, 좀 많이 불편하고 산만하게 느껴졌다. 자막 위치가 위에 있어서 그런지 한 눈에 화면이 안..

연극이야기 201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