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극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보통의 추리극은 치밀한 플롯과 떡밥과 맥거핀들 사이에서 머리를 사정없이 굴리다가 모든게 맞아 떨어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 가장 큰 즐거움인데.. 이 연극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장면을 보여주고, 그 장면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하고 관객은 직접 질문하고 배우들은 진술을 하며 형사와 관객이 함께 추리를 해나간다. 배우 네명이 모두 범인이 될 수 있는 용의자들이고, 모두 수상한 정황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네 명의 용의자가 범인이 될 수 있는 네 가지 결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배우들이 던지는 수많은 떡밥이 모두 맥거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보통의 추리극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은 주어진 정보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용의자가 정황증거 밖에 없다. 어느쪽으로도 결말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플롯이 그만큼 엉성하고 허술하다는 것이고, 그 허술한 플롯은 마지막게 결말이 나왔을 때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복기해볼 필요도, 그런 여지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론이 거의 범인의 '진술'에 의해 나왔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결론을 위한 추리극이 아니라 '과정'을 위한 추리극에 가깝다. 마치 직접 형사, 또는 증인이 되어 수사에 참여하는 것 같은 기분, 요즘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과 같은 매력을 이 연극에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연극의 중반부부터는 계속해서 배우들과 소통하며 연극에 참여하는, 소극장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극대화시킨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확실히 배우들의 순발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그 때 그 때 관객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배우들의 순발력이 좋았다. 연극 자체가 배우들도 많이 타고, 특히 배우들의 경험을 많이 탈 것 같다. 새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초반부보다 후반부 연극을 보는 것이 확실히 더 좋을 것 같다. 시종일관 웃으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극임에는 틀림없는듯. 전 날 출장 다녀와서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졸릴 틈 없이 몰입해서 봤다. 그리고 다양한 결말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결말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물론 난 안봐 ㅋㅋㅋ 결말이 중요한 연극이 아니니까 ㅋㅋㅋ 어떤 결말이 되었든 덜 닦고 화장실 나서는 것 같은 찝찝함이 그대로 남아 있을거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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