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평가단으로 처음 본 연극이 햄릿이다. 이 날 출장을 갔다가 시간이 세시간정도 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시간에 도착을 못했다. 동숭소극장이었는데, 왜 난 아르코 극장인줄 알고 있었을까... 시간을 딱 맞춰서 갔더니 문이 닫혀서 급하게 다시 확인해보니 동숭소극장 ㅋㅋㅋ 뛰어 갔더니 1분 늦었다. 결국 5분 지연입장. 그래도 5분 뒤에는 입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관계자들한테 좀 미안하더라..


 들어가서 무대를 보자마자 의상과 소품들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졌다. 현대극으로 연출했는데, 고위층의 파티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는 소품들, 바, 테이블들이 무대 구석구석 빼곡하게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많은 수의 단원들이 무대 곳곳을 분주하게 누볐고, 분주한 가운데서도 감정의 대립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신경쓴 무대 디자인 만큼이나 음향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고, 감각적으로 연출하였다. 특히 초중반에는 둔탁한 비트와 일렉트릭 기타가 시종일관 울려퍼졌는데, 이 신경질적인 음악들이 극의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굉장히 큰 몫을 차지했다. 1. 구닥다리 같은 어색한 연극톤 대사와 고전미, 그리고 현대적인 정서가 결합해 굉장히 생경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 뿐 아니라, 2. 높으신 분들의 구역질 나는 위압감과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햄릿의 일그러진 대립구도, 3.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초중반 극의 전개까지, 이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한데는 음향의 효과가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 유명한 누자베스가 OST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극중 광대들의 연극 씬에서 입으로 만들어지던 효과음, 그리고 독백 대사 중간중간 울리는 조소 가득한 웃음소리까지, 확실히 음향에 섬세하게 신경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적으로 훌륭한 편이었는데, 처음엔 대사가 잘 안들려서 집중이 잘 되지 않던 햄릿도 나중에는 미친놈 컨셉 잡느라 발음을 흘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기했고, 클로디어스역의 유준원씨는 근엄하면서도 비열하고 처절한 연기를, 폴로니우스역의 이정국씨는 얍삽하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을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 거투르드 역의 이혜진씨의 거친 호흡이 가끔 드러나는게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고전 연극톤의 대사들을 비교적 억지스럽지 않게 잘 소화한 것 같았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좋았던 초중반부에 비해 후반부 호흡이 조금 늘어지면서 감정선과 플롯이 조금 두루뭉술하게 표현된 느낌이 있었다. 분명히 극을 힘차게 끌고가는 힘이 있었는데 후반부에 힘이 조금 떨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연극이었음. 5일전에 쓰다만 글을 오늘에서 마무리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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