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모르겠다. 14살에 친구를 폭행해서 죽이고, 시체유기까지 했던 대환이 7년이 채 되지 않아 출소를 했고, 보호관찰 기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온갖 안 좋은 시선과 비난을 묵묵히 견디며 그 집에서 대환을 기다렸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웃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아니, 차갑다기 보다는 아직도 뜨겁게 비난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홍글씨, 그리고 낙인. 범죄자의 인권, 그리고 사형제도. 갱생은 정말 가능한 것인가. 결론도 나지 않을 수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현실과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얼마전에 옆동네 블로그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공개하는 "Project Unbreakable"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들었던 이야기를 남들 앞에 공개하는 것.. 정말로 자기가 겪은 현실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용기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의 흑역사만 생각해도 이불킥하며 피하고 싶은게 우리 심정인데, 정말로 크게 잘못한 일이나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마주본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는? 그냥 덮어두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소년은 굉장히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겪었고, 앞으로 견뎌가야 할 시선과 죗값의 무게를 두려워만 했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나갈 무렵, 마침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구하러 떠난다. 갑자기 영화 <밀양>이 스치고 지나갔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상대방이 용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떠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굉장히 이기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소년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삶의 끈을 이어가고자 스스로 내린 첫번째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가족들도 꼬인 실타래를 움켜쥐고 어떻게는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제서야 실타래를 정면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변화 같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죄가 사라지거나, 혹은 죄의 무게가 가벼워 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그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 자체도 속죄를 하는 방법중의 하나다.  

 사실 정말로 잘 모르겠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주홍글씨는 좀 애매하다. 결국 이건 뭐 양비론... 근데 진짜 모르겠는걸 어떡해. 


 굉장히 극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담담하게 연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특히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극이 전개되다보니, 가해자에 대한 연민이나 옹호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를 굉장히 경계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깨진전등이나 떫은 감처럼 소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려는 도구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과의 호흡없이 관객은 무대와 동떨어진 느낌이었고, 서사안에서 관객이 가치판단을 내릴만한 여지도 주지 않고 있다. 소년이 살인을 한 동기나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지 않았던 것도 섣부르게 동정이나 비난하지 않도록 하는 연출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대환과 소년 B(14살의 대환, 또다른 자아)가 대치하던 장면은 굉장히 극적이고 가쁜 호흡으로 진행되었다. 마치 추격전을 보듯이, 스릴러 영화를 보듯이 그 좁은 무대를 굉장히 넓게, 또 역동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엄청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엄마역할을 맡은 김애심씨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지... 무뚝뚝한 아버지상을 연기한 이호재씨도 굉장히 묵직했고, 소년역의 이재현씨도 잘하더라. 무대도 부엌과 다락방, 카센타, 길과 자동차까지 굉장히 다양하게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었고, 특히 대치씬에서 동선을 고려하면서 역동적인 표현이 가능하도록 세심하게 세트들을 배치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나는 최루탄 한 번 맞아봐, 하는 심정으로 만든 억지감동 영화를 매우 혐오하는데.. 이 연극은 그럴 수 있는 소재를 그렇지 않게 표현해서(뭔 소리냐.) 좋았다. 그리고 나는 커튼콜 때 박수치기도 힘들었어....ㅜㅜ 왠지 앞으로 국립극단을 자주 찾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사진 출처는 모두 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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