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낸 앨범을 2002년에 처음 들었고, 곧 발매 될 줄로 알았던 새 앨범은 그의 마약소식과 함께 잊혀졌다. 2012년즈음부터 공연장에서 노래를 하는 뚱뚱한 모습의 그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유투브 직촬의 조악한 음질 속에서도 여전히 섹시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서 새 앨범이 나온다는 얘기가 들렸고, 99%완성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미 그의 앨범은 양치기 소년이 말하는 늑대와 같았다. 나올 때까지, 나온게 아니다. 근데 나옴 ㄷㄷ 





 디횽의 <Brown Sugar>와 <Voodoo>는 사실 내가 알앤비/소울 음악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듣게 된 음반이라서 그냥 '와 쩐다. 개 좋아.'였지, 이렇게까지 레어한 음반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네오소울류의 음악을 샅샅이 살폈지만, 디횽의 음악과는 스타일이나 느낌이 좀 다르거나, 혹은 그만큼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낸 두 장의 음반들은 모두 나에게 있어 10점만점에 수렴하는 음반들이라서... 씨디를 꺼내서 씨디 플레이어에 넣으면, 막 씨디에서 후광같은거 나오는 것 같아.. 씨디 케이스에서 씨디를 꺼내는걸 거의 성물 다루듯이 함 ㅋㅋㅋㅋ


 괴물같은 앨범을 두 장이나 발매하고 14년을 쉬는 바람에, 그의 앨범들은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앨범 작업이 미뤄질수록 그의 이전 앨범들은 점점 더 전설화가 되어갔을텐데, 그걸 바라보는 디횽의 부담감은 어땠을까.. 그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디횽은 음악적인 자신감과 대중의 귀를 만족시킬 만한 확신을 가지고 앨범을 발매한 것 같다. 그냥 돈 떨어져서 추억팔이 해보려고 낸 음반이 아니라 이거지. <Black Messiah>. 다 듣고나니 이젠 진짜 그가 메시아로 보인다...ㅜㅜ 





 첫 곡 "Ain't That Easy"의 도입부 노이즈(?)는 그의 이전 앨범 <Voodoo>를 떠올리게 해서 반갑더니, 이내 시작된 느릿한 그루브와 기타리프 듣자마자 헐.... ㅉ..쩔어...... 훨씬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진 슬라이 스톤의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에 쌓였던 분노(?)와 혹시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던 가슴 한 쪽 구석의 찝찝함은 단번에 날아갔다. 


 앨범에서는 'Black Messiah'에 관한 그의 생각들이 이어져있다. "1000 Deaths"에서는 굉장히 공격적인 드럼과 싸이키델릭한 사운드로, 그 동안 보지 못한 면모를 보여준다. "천번 죽는 겁쟁이가 아니라 한번 죽는 용사가 되겠다"는 그의 이야기는,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붉어진 지금 시점에서 본인의 다짐을 듣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The Charade"에서도 마찬가지고,"The Prayer"에서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확인할 수 있다. 멋있는 횽이야.. 


 타이틀 곡인 "Sugah Daddy"의 그루브.. 와.. 훵키하고 스윙스윙한 악기들, 음악 전체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그의 보컬도 아니고 악기도 아니다. 그냥 그루브 그 자체. 그렇게 기다려왔고, 대안도 찾지 못했던 그의 음악 스타일 그대로...ㅜㅜ 선공개 된 이 곡 듣고 울 뻔..ㅜㅜ 이어진 "Really Love"는 주변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이다. 물론 나도 듣자마자 꽂힘 ㅋㅋ 플라멩고 스타일의 재즈 기타가 곁들여진 발라드 트랙으로, 기타도, 베이스 라인도, 혼 섹션도, 속삭이는 팔세토 보컬도 다 좋다. 찾는 사람이 많을만 하다. 나른하고 소울풀한 기타라인이 마음에 들었던 "The Door"도 좋았고, 재지하면서도 왠지 "Spanish Joint"가 떠올랐던 "Betray My Heart"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곡 "Another Life" 진짜 쩔.. 프린스의 "Adore"가 떠올랐던, 깊고 찐한 소울 곡이다. 그리고 그 어느곡보다도 라이브로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로이 하그로브의 RH Factor 출신에다가 <Voodoo>를 비롯해 네오 소울 음악에 두루 참여한 베이시스트 피노 팔라디노, 룻츠의 퀘스트 럽, 그리고 로이 하그로브가 편곡으로 참여한 밴드의 힘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실제 합주를 통해 녹음을 했고, 그 생동감이 앨범에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다. 앨범 사재기라도 해서 디횽과 이 밴드를 내한시키고 싶다..ㅜㅜㅜㅜ 그리고 무엇보다 디안젤로가 이 앨범을 위해 50곡을 추렸고, 그 중에 12개의 노래를 뽑아서 새 앨범을 발매했다는 소식을 보고 나니, 그의 앨범을 이제 좀 자주 볼 수 있나?하는 기대감이 살짝 생겼다.


 뭐랄까.. 14년만에 발매되었지만 전설급의 이전 앨범들과 나란히 놔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그리고 퀄리티면에서도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좋은 앨범이다. 이전 앨범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세기의 명반처럼 불리고 있고, 오랜 기다림과 더불어 그 후광효과 때문에 앨범이 더 좋아보이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아니다. 이 앨범 진짜 좋다. 14년의 기다림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그래도 이제 앞으로는 이러지 맙시다..ㅜㅜ)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를 가려본다면 2집 > 1집 > 3집 정도가 아닐까 싶다. 1집=3집 일지도 모름 ㅋㅋ 


 

 + 이건 여담인데, 커피새끼와 디횽에 대한 비교는 하고 싶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하고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든 생각이 맥스웰의 경우는 진짜 장인정신이 (지나치게) 넘치는 노력파 뮤지션이라면 디횽은 그냥 천재같다. 타고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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