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도 이젠 한 물 가버린 나는 가수다지만, 요즘 그래도 꽤 쏠쏠한 재미가 있다. 시나위와 국카스텐을 비롯한 라이벌 구도나 한영애 같은 뮤지션의 노래가, 무리한 편곡이나 고성에 질려하면서도 자꾸 찾아보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가수다가 시즌 1에 잘나가면서, 많은 이슈들과 긍정적인 영향,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긍정적인 영향중의 하나가 사람들에게 '편곡자의 역할'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하광훈님이나 돈스파이크 같은 뮤지션들이 주목을 받기도 했고.. 보통 작사나 작곡은 알아도 편곡은 뭐하는건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가수다에서는 좋은 편곡도 있었고, 무리수도 많았지만, 편곡을 통해 같은 노래가 얼마나 새롭게 재해석 될 수 있는지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일반적으로 가수들이 내는 리메이크 음반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외면한채, 그저 '다시 부르기'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음... 예외가 있다면 나얼의 리메이크 음반정도? 그 외에도 몇몇 프로젝트식으로 발매된 리메이크 노래들이 재해석에 충실한 곡들이 있었지만 앨범 단위로는 거의 전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여기 아직 무명에 가까운 한 가수의 습작처럼 만들어진 믹스테잎이 한장 있다. 언더에서 묵묵히 한국의 R&B를 이끌어 가고 있는 Jinbo의 믹스테잎 <KRNB>. 앞서 거창하게 말했지만 이 앨범은 정말로 'Remake'에 충실한 앨범이다. 그간의 리메이크는 멜로디라인과 가사를 그대로 살려둔채, 편곡만 바꾸는 정도였다. 목소리, 애드립 정도가 가수가 할 수 있는 최대 변형이었고, 깔짝깔짝 스트링 추가, 순서만 바뀐채 변함없는 곡의 구조는 그저 우리에게 "아, 이런 목소리에도 잘 어울리는 노래네?"하는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했다. 


 Jinbo의 믹스테잎은 그간의 '적당히' 제조되던 리메이크 공식을 깨버렸다. 대부분의 곡들이 가장 포인트가 되는 멜로디 부분만 살리고, 곡의 장르와 구조, 그리고 컨셉, 필요에 따라서는 가사까지 진보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가끔은 원곡이 어떤 곡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 이건 진보가 창작한 것도 아니고 창작 안한것도 아녀......








 가장 재밌게 들었던 곡은 'Love Game'이었다. 보아의 'Game'을 원곡으로 한 노래인데, 신디사이저를 전반적으로 내세운 Funk곡이다. 죠지 클린턴스럽기도 하고 Prince스럽기도 하다. 중간중간의 애드립도 Funk냄새를 풍기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특히나 중반부에 길게 연주한 간주부분은 그간의 우리나라 음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던 부분이다. 7-80년대 Funk밴드만큼 죽여주는 간주부분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신선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전에 습작처럼 연주한 노래를 듣고 인상깊었던 소녀시대 'Gee'의 커버곡 'Damn'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얼마전에 갔었던 F.ound Week 공연 때 라이브로도 봤었는데, 이 노래 끈적끈적 정말 좋다.(가사도 슬로우잼에 맞게 바꿨다.) 무엇보다 상큼한 걸그룹의 노래와 대비되는 슬로우잼 스타일의 진보의 목소리가 뭐랄까.. 깜찍한 모습의 걸그룹과 그런 그들을 응큼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심리가 반영되었다고 해야 하나.. 가사도, 이를 받아들이는 청자들의 마음도 수위를 넘나드는 섹시한 즐거움을 준다. 









 서태지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를 리메이크한 '너와 함께하면 행복해'는 원곡이 주는 아우라가 너무 강해서 초반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중반부에 빠른 비트로 바뀌면서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멋지가 변화했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진보만의 느낌도 안배한 그야말로 웰-메이드 리메이크가 되었다. 원곡(김건모의 '빨간우산')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놀랍도록 Funky하게 편곡된(아니, 어릴 때 듣던 이 노래가 이렇게 Funky했었나?!) '아름다운 그녀'도 인상적이었고, 애절하게 변화된 2NE1의 '아파'를 리메이크한 나빠도 좋았다. 개개의 싱글들이 딱히 떨어지는 곡도 없고, 같은 흑인음악이라지만 색깔들이 너무 달라서 노래마다 듣는 재미가 있다. 원곡뿐만이 아니라 어떤 스타일을 시도했는지, 누구를 모티브로 녹음을 했는지 비교해서 생각해보는 재미!


 재밌는 음반이다. 곡 자체의 완성도도 높은데다가 원곡과 전혀 다르게 재창조되었기 때문에 원곡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몇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첫번째로 마스터링. 이건 뭐.. 정규앨범도 아니니까 쿨하게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두번째로 좀 산만하다. '흑인음악'과 '리메이크'라는 키워드로 엮이긴 하지만 아니 그 두 개의 카테고리가 워낙 넓어야지. 각각의 곡들은 참 좋은데, 앨범단위로 듣는 메리트는 딱히 없다는 것 정도. 그래서 다른 앨범들보다 유난히 싱글별로 찾아듣게 된다는 점. 세번째로는, 진보의 진짜 색깔이 궁금하다는 점..이라기 보다는 빨리 정규 앨범 내달라구.....ㅜㅜ 아니, 공짜로 배포했는데 뭐 이렇게 바라는게 많어.... 좋은 음악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진보느님. 





앨범 전곡은 이 곳에서 다운 받으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