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come

아티스트
아침
타이틀곡
Overcome
발매
2012.09.06
앨범듣기



 리뷰를 반 정도 쓰다가 엎어버렸다. 이 앨범은 이성적으로 쓰면 안되는 앨범이야. 아니, 아침이라는 밴드 자체가 그렇게 리뷰를 쓸 수 없는 밴드야.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서........... 그렇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되짚으면 되짚을수록, 이건 내 이야기, 그것도 지금의 내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겠지. 





 이 앨범에서 아침은 여전히 냉소적이고, 여전히 불안하며, 여전히 방황중이고, 여전히 염세주의에 빠져있다. 그리고 여전히 음악은 밝고, 신나고, 상큼하다.(물론 차분한 노래들도 있다.) 다시 말해, 여전히 '아이러니'하다. 아니, 아이러니한게 당연한거 아녀??? 넌 안 아이러니 하냐. 세상이 아이러니인데. 다만 지난 노래들과 차별화 된 점이라면, 훨씬 더 직설화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전작에서는

 '귀신들은 저멀리서 웃고 있는데, 달님은 모든 걸 알면서도 무심한 척, 손톱손질중.' - 불신자들 中. 

 '아하하하 나중엔, 아하하하 다음엔, 아하하하 꽃이 핀다 뻔한 변명' - 거짓말꽃 中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갑자기, 헤드라이트를 조명 삼아서 그녀는 갑자기 댄스를 시작해' - 02시 무지개 中

와 같이 가사도 제목도 특이하고, 때로는 괴기스러운, 현실보다 망상에 가까운 가사들이 인상적이었다. 현실도피를 바라는 사람이 책상에 멍하니 앉아 펼치는 공상/망상과 같달까.. 가끔은 독특하지만 무릎을 탁칠만한 비유도 인상적이었고.. 그에 비하면 이번 2집 <Overcome>의 가사는 현실에 더 가깝다. 현실로 돌아와서 한 걸음 내딛으려는 시도일까. 제목인 'Overcome'처럼 극복하겠다는 의미일까. 그런건 아니다. 의외의 따뜻함이 어렴풋하게 숨어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크'한 그들이다. 앨범 제목조차 '아이러니'하다. 이번 앨범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누구나 하고 있는 생각이지만 선뜻 먼저 꺼내기 어려운, 아프니까, 혹은 상처받을까봐 숨기는 말들을 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는, 다시 말해 무표정으로 상처되는 말을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는 친구?! 



우리들은 항상 사과하느라 바빠, 숨느라 바빠.

우리들이 전부 다 망쳤으니까. 망쳤으니까.


...


사실 그 앤 절대 너를 안 좋아할 걸. 안 좋아할 걸.

착하다고 한 게 과연 칭찬일까. 칭찬일까.


...


그렇게,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모르고

우리를 몰라주고

오늘도, 세상은 오늘도,

다른 사람들만 감싸고 도네.


 - DOH! 中



 장난끼 가득한 전자음과 발랄한 멜로디의 이 노래는 이 앨범의 핵심이다. 스스로를 변화시킬 생각은 못하고, '이건 다 세상탓이야. 더러운 세상. 정치인도 더럽고, 있는 놈들은 더하고, 게다가 내가 쟤보다 못한게 대체 뭔데!!!!!!' 하... 세상은 이들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다. 찌.질.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찌질이 맞지 뭐. 근데 그 찌질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그렇게, 자위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피해의식, 패배주의 덩어리지만, 조금은 위로가 되니까. 사실, '을'로 태어나면 '을'로 계속 살아가게 되는게 이 세상아닌가. 알수록 이 노래의 화자가 나의 일부를 쏙 빼다 박은 것 같아 자꾸 듣게 되는 곡이다. 다행인건 그래도 축구대표팀 경기를 본날 패했을때, '내가 봐서 졌어. 내가 보면 지더라.'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진 않았다. 사실 2차성징땐 그런 종종 생각도 했었다. 꽤 심한 피해의식을 가졌었지. 아, 아는 누나가 그랬는데, "넌 참 착해 = 이 병신아"라더라. 그리고 그 누나는 나에게 착하다는 말을 참 많이했었다.



김경주님 in GMF 2011


 

 (횡설수설중이다.) 앨범속의 화법은 현실적이긴 하지만, 다양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화자들을 만들어냈다. 사회에 한발 내 딛자마자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린 아는 여자의 이야기. '되돌아 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라는 순환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과 미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중첩되어 들리는, 종착역 없이 돌고도는 2호선의 풍경. 어자피 망할꺼 인생 스포트 라이트 비출 때 저질러야 하는데.. 그날 밤 뺨 맞더라도 키스나 한번 해볼 것을 후회하는 화자나 , 직접 대놓고는 좋아한다 말하지 못하면서 몰래 스토킹을 하면서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라며 자위하는 스토커. 루저와 아웃사이더, 그 사이로 흐르는 냉소와 자조, 그리고 발칙함.. 마지막 2012년의 마지막 전자음 4분은 "지구 밖으로 내 보내는 전파가 50억 년동안 우주를 유영한다"는 이야기기 표현했다고 하는데, 인류가 멸망된 후에라도 그 신호를 발견한 생물체는 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도 지금 당장 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사람들은 있을까. 주변에 사람은 많아지는데, 그들과 나를 이어주는 끈은 점점 가늘어지는 기분이다. 인류멸망의 이야기는 곧 우리네 삶의 이야기이다.  정체성은 사라지고 있는 듯 없는 듯 취급되거나 그들이 보내는 구원의 신호를 파악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달라질 게 있을까

더 나빠질 게 있을까


그 어느 때 보다 못 된

우리들을 이길 수 있을까.


 - 2012 中



 그렇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자, 모두 악랄하기 그지 없는 악당이다. 노래가 끝나고 4분이나 이어지는 단조로운 신호음을 하염없이 듣고 있다. 듣게 된다. 이곳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끈을 아주 놓아버린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뭔 헛소리를 하냐. 앨범은 확실히 싱글들의 매력을 앨범으로써 어우르지 못했던 전작보다 잘 정돈되어있다. 전작은 가사도 튀고 음악도 튀고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앨범이었는데, 이 앨범은 흐름이 매끈하다. 너무 매끈해서 지나치게 인위적인 느낌도 있긴 하지만 ㅎㅎ 앞쪽은 멜로디컬하고 댄서블한 노래들을 배치하고, 중반부부터 차분하게 침잠하다가 후반부는 직선으로 쭉 뻗어간다. 특히 중반부에 와이파이 - Hyperactivity - lowtension으로 이어지는 세 곡은 정말 울컥하게 만든다. 한 곡은 연주곡이고 한 곡은 가사가 얼마 없는데, 쉬어가는 타임이라기 보다는 다시 곱씹게 된다고 해야하나.. lowtension은 키보드 주자인 김경주님이 작곡하신 걸로 아는데, 멤버들의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앨범이 더 다양하고 풍성해진 느낌이다. 지난 EP에 수록된 Hyperactivity와 02시 무지개는 원래도 엄청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더 밴드편성에 맞게 편곡되었다. 사실 Hyperactivity는 개인적으로 지난 EP수록 버젼이 더 좋다. 


 아침의 앨범을 더욱 빛내주는 것은 보컬 권선욱의 노래다. 잘 부르는 노래 솜씨는 아닌데, 때로는 직선적으로, 때로는 체념조로 툭툭 내 뱉는 그의 보컬은 그야 말로 Chic 그 자체. 아, 어쩜 이렇게 이 노래들에 찰지게 어울리 수가 있을까.



권선욱님 in GMF 2011



 여전히 아침의 음악은 정확히 종잡을 수 없다. 아침이라 말 하지만 그 아침은 짙은 안개 자욱한 보라색 아침이고, 밖은 밝은 멜로디로 뒤덮여 있지만, 실상 그들은 우물속에 웅크리고 있다. 세상을 비관하면서, 그리고 땅바닥에 손으로 정체모를 그림을 그리면서.. 갑자기 그들의 공연장에서 손을 들고 신나게 춤추고 싶어졌다. 음악이 신나서는 아니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몸은 웃고, 마음은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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