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자라섬에서 열렸던 R&B 페스티벌이 이번엔 홍성에서 열렸다. 작년에 이 페스티벌이 생겼을 때는 혹시 R&B 음악을 위주로 하는 페스티벌인가 하고 혹했는데, 알고보니 그냥 이름만 알앤비.... 어쨌거나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만 다녀오기로 했다. 가격대비 라인업이 괜찮기도 했고.



 첫 날도 가고 싶었지만 금요일이라 시간이 안됐고, 둘째날, 플럭서스 뮤직의 멤버들이 나오는 날로 예매했다. 이승열, 어반자카파, 클래지콰이, 프롬 디 에어포트 등.. 2만원짜리 치고는 충분히 화려하다.


아래는 소감.


1. 사람이 많지 않았다. 먹고 즐기고 여유롭게 보는 페스티벌이라니... 주최측은 사람이 많아야 흥하고 좋겠지만, 참여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정도 인원이 여유롭게 즐기는 페스티벌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앞자리를 차지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모두 다 좋은 자리..


2. 음식을 파는 부스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제일 불만이었던 것은 맥주를 파는 부스가 하나였다는 것... 왜 그랬을까.. 맥주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다. 한가지 더 불만이 있다면 페스티벌 캐릭터가 너무 비호감....


3. 이승열느님 나와서 노래 하시는데 반응이 참 없다... 싸이키델릭하고 블루지한 음악이 현장과 잘 안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승열옹인데...ㅜㅜ  다음 차례가 어반자카파였는데 반응이 너무 비교되더라. 여자친구가 아주 좋아하는 어반자카파의 공연도 괜찮았는데, 보컬인 조현아씨는 노래를 참 잘하더라. 푼수끼가 매우 다분하기도 했고. 술 한잔 걸치고 올라간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될 정도로 ㅋㅋㅋㅋ


4. 한참을 먹고 마시면서 공연을 보다가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클래지콰이 등장. 클래지콰이는 돗자리에 앉아서 보던 관객들을 기어코 일으켜 세웠는데, 아아.. 이날 진짜 사람들 잘 놀더라. 호응 쩔 ㅋㅋㅋ 사람들이 너무 앉아만 봐서 좀이 쑤셨나.. 한번에 터짐 ㅋㅋ 클래지콰이의 히트곡들을 클럽풍 노래로 편곡해서 관객들을 뛰게 만들었는데, 으아.. 재밌었다. 이 날 진짜 재밌다고 느꼈던 점이 있었는데, 캠핑과 바베큐가 페스티벌의 포인트다보니 확실히 가족단위 관객이 많았다. 클래지콰이 공연을 한참 즐기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4-50대 아줌마 아저씨들도 함께 소리지르고 뛰고 있었다. 2-30대가 주 연령층인 페스티벌과 공연장만 다니다가 보니까 진짜 낯설으면서도 진짜 페스티벌 답다고 느꼈다. 


5. 일렉트로 록 씬의 새 기대주 프롬 디 에어포트를 못보고 집에 돌아와야 했던 것은 좀 아쉽긴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 망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면서, 이 정도 규모의 페스티벌이 각 지역에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우리나라 음악씬은 너무 특정지역에 몰려있어...



도착하니 안녕바다의 공연이 진행중이었다.


페스티벌에 빠질 수 없는 술.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안주는 간단하게.


해질녘 풍경과 음악이 잘 어울렸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라 날씨도 선선했고.


클래지콰이 등장.





 올 여름 즐긴 유일한 페스티벌이 될 것 같은데..라고 하기엔 하루 밖에 안갔지만. 어쨌거나 진짜 재밌고 알차게 즐기다 왔음.




 공연 시작전부터 저렇게 자욱한 안개를 깔아 놓더니 공연 내내 조명과 안개, 그리고 그의 음악과 목소리가 하나된 꽤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은 기타와 전자드럼, 신디사이저와 키보드, 루프스테이션등을 활용하여 3인조로 이루어졌고, 일렉트로닉을 베이스로 하였지만 그의 공연에는 흑인음악의 그루브도 있었고, 포크의 따뜻함도 있었고, 가스펠이나 성가에서 나오는 홀리함도 가지고 있었고, 클럽에서나 나올법한 덥스텝의 강렬함도 가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라이브로 들은 그의 음악은 앨범보다 훨씬 자극적이었고, 매우 강렬했다. 특히나 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지더라. 영상을 틀어놓은 것이 아님에도 음악과 잘 어울리는 어떤 이미지들이 충분히 떠올랐다. 


 


 첫 곡 I Never Learnt To Share을 부르는데 오.. 역시 앨범에서만 듣던 목소리를 실제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느낌은 특별하다. 듣자마자 속으로 '역시 잘왔어, 훗, 역시 나야(?)'를 반복했다. 공연에서 특히나 강렬했던 순간이 몇번 있었는데, 가장 처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세번째 곡이었던 To The Last를 부르던 순간이었다. 원래 앨범에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던 곡인데, 후렴구가 시작되는 순간 그들 뒤로 해질녘 노을 색의 조명을 강하게 비추었고,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중첩되면서 흡사 태양이 지고 있는 바닷가를 떠오르게 했다. 강렬한 조명 위로 비추는 그들의 실루엣과 왠지 모를 슬픔을 머금은 그의 목소리가 굉장히 '홀리'하게 느껴졌는데, 꽤 감동이었다.

 키보드 한대에 의지해서 불렀던 A Case Of You나 앨범에서 꽤 좋아하던 Our Love Comes Back을 부를때도 좋았다. 사실 To The Last이후로 한동안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좀 있어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러면서 살짝 실망하던 차였다. 안그래도 피곤한데다가 공연장에 왔으면 앨범과는 분명히 다른 즐거움이 있어야 되는데, 앨범과 같진 않지만 딱히 낫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별로없었다. 어쨌거나 이 부분은 전자음에 보코더 입힌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가 따뜻한 포크공연 보는 느낌도 나고 그래서 좋았다. 이 부분부터 후반부까지는 쭉 좋았음.


 Klavierwerke로 예열하고 공연장을 클럽분위기로 압도해버린 Voyeur는 공연장에 있던 모두가 인상깊게 즐겼을만한 순간이었을 것이고(뭐랄까, 확실히 덥스텝이어도 제임스 블레이크와 클럽은 잘 연상이 안되는데, 의외로 굉장히 좋았다.), 뒤 이어 나온 Retrograde로 공연의 방점을 확실히 찍었다. 사실 이 때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했는데, 초반부에 허밍을 하는 순간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그대로 녹음 되어서 반복될때마다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나와서 좀 우습기도 하고 거슬리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이미 좀 흥분상태였기 때문에 그마저도 좋았다. 어쨌거나 명곡은 명곡이다. 앵콜곡은 Measurements 한 곡이었는데, 루프스테이션으로 반주없이 노래만 오바좀 보태서 수십겹을 입히더니 맞춰서 키보드로 반주 좀 해주다가 루프스테이션 켜 놓은 상태로 그대로 인사하고 퇴장하는데, 이 횽아 왠지 쫌 멋있어보이더라 ㅋㅋㅋㅋㅋ 쿨하고 간지나잖아 왠지??ㅋㅋ


 

출처 : YESCOMent 페북 페이지



 (이번 앨범으로 정체성이 조금 모호해졌어도)확실히 그가 덥스텝 뮤지션인것도 알았고, 그냥 몽환적이고 쓸쓸한 느낌에 공연장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음에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것도 확실히 알았다. 게다가 여심을 휘어잡는, 보호본능 일으키는 쓸쓸한 목소리(와 외모까지)는 공연 분위기와 더할나위없이 잘 어울렸다.(노래 사이에 제임스블레이크한테 I Love You!, Marry Me! 뭐 이런말들 쏟아지더라 ㅋㅋㅋ 확실히 여성관객이 많았음.) 조명을 잘 활용해서 단순히 청각에만 의존하는 공연이 아니었다는 것도 좋았고. 아, 그리고 공연 끝나고 나오면서 느낀건데 대한민국 힙스터들(혹은 좀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는 나도 추가) 대정모 였던듯 ㅋㅋㅋㅋ 아무튼 2014년의 첫 공연은 꽤 좋았다. 올해도 내한공연은 쏟아지던데 땡기는 건 없어서... 고마워요 잘 봤어요. 제임스 블레이크 횽.



그리고 이태원에서 내일 밤에 애프터 파티 한답니다.





 나윤선님이 7집 [Same Girl]을 발매하고 LG아트센터에서 했던 공연이 재작년 봄이었으니까.. 그녀의 공연을 보는 것이 얼추 3년 만이다. 내가 갔던 공연은 21일 공연이었고, 공연의 레파토리는 6집 [Voyage], 7집 [Same Girl] 8집 [Lento]의 트릴로지로 구성되었다. 콰르텟 구성이었는데, 기타는 늘 그렇듯 울프 바케니우스, 베이스는 랄스 다니엘손 대신 시몽 따이유, 그리고 이번 앨범부터 참여도가 늘었던 뱅상 뻬라니가 아코디언을 맡았다. 장소는 국립극장이었는데, 국립 극장을 처음 가봐서 그런지 거기 졸 멋있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 규모도 그렇지만, 오래되서 그런지 뭔가 클래식한 멋이 있더라. 나 좀 촌티났을듯.



벵상 뻬라니. 키도 엄청 크다. 190은 가뿐히 넘을듯.



 공연 중간에 그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이 네 살때 이 국립극장에 처음 와봤다며, 그 땐 이 곳을 오르는 그 길이 에베레스트 같았다고 ㅋㅋ 그리고 40년 후에 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며 가슴 벅차 하시더라. 파리의 샤틀레 극장 같은 역사 깊고 멋진 곳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녀였는데, 국립 극장은 그녀에게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오랜 시간을 타지에서 보내셔서 그런지 나라에 대한 애착도 크신 것 같고.. 앨범이나 공연 레파토리에 아리랑 시리즈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ㅎㅎ 무튼,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나이를 밝히는 강수를 두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시고는, 곧 펑펑 우셨다. 정말로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나윤선님의 공연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와 함께 다니는 멤버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하는 점이다. 오스카 피터슨의 마지막 기타리스트라는 울프 바케니우스야 말할 것도 없지만, 딱 들어도 장르의 폭이 넓을 것 같은 아코디언 주자 뱅상 뻬라니의 연주도 훌륭하고, 기존 베이스 주자 랄스 다니엘손은 두번이나 못봤지만(지난번엔 오기로 되어있다가 일본 방사능 터지면서 취소;;) 시몽 따이유의 연주도 좋았다. 물론 이런 능력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투어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노래실력 덕분이겠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훌륭한 연주를 가까이서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어느 곡이었는지는 까먹었지만 곡의 시작부분에서 울프와 벵상 뻬라니가 주고 받던 인터플레이는 매우 화려하고 재밌었다.



울프 바케니우스. 불고기와 김치를 사랑하는 한국 음식 전도사 아자씨.


 사실 지난번 공연과 비교해서 목상태가 아주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는데,(중간에 자꾸 우시는 것도 그렇고... 목 잠겨요...ㅜㅜ) 그래도 워낙 많은 공연을 해오신 분 답게 굉장히 노련하게 노래하시더라. 뭐랄까.. '공기반 소리반' 이거 나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윤선님은 그 공기조절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때로는 70%를 써서 과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론 20%만 섞어서 단호하고 강경하게(?) 부르기도 하신다. 거기에 더하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까지..ㅎㅎ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노래 위에 있다고 해야하나.. 동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공연은 내가 8집에서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의 하나인 'Hurt'를 울프와의 듀오로 시작했다. 으아.. 지난 공연에서 첫 곡은 준비없이 받아들이다가 정신 못차렸는데, 이번엔 첫곡듣는데 눈물 날 것 같았다. 왠지 나는 악기가 많은 것보다 적을 때의 공연이 더 좋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울프와의 듀오 공연때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곡 Uncertain Weather부터 콰르텟 구성으로 노래했고, 이어서 앨범보다 공연에서 더 좋을 것 같았던 Lament, 명불허전의 스캣곡 Momento Magico로 이어졌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탐 웨이츠의 노래 'Jockey Full Of Bourbon'이었다. 워낙 좋아했던 노래기도 하지만, 울프가 재치있게 '밀양 아리랑'으로 시작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이어진 'La Chanson D'Helene'도 눈물나게 좋았고.. 이 노래 할 때 뱅상 뻬라니가 남자부분 나레이션을 맡았는데, 헐.. 저렇게 좋은 목소리에 프랑스어 발음은 좀 사기인듯 ㅋㅋㅋㅋㅋ 좀 오글거리긴 했지만 멋있긴 하더라 ㅎㅎ


시몽 따이유.


 그리고 공연 후반부에 '정선 아리랑'을 불렀는데, 우리의 음악을 세계화하는건 이렇게 해야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멜로디를 따와서 그냥 다른 노래로 만들어버린 것도 아니고, 단순히 오리지널리티만 강조한 것도 아니고, 아리랑의 구성진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재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사실 뭐, 메탈을 불러도 나윤선화, 컨트리를 불러도 나윤선화, 트로트를 불러도 나윤선화 하니까... 는 너무 좀 빠돌이 같다. 아무튼 아우라가 있어 아우라가. 마지막 곡이었던 'Ghost Rider In The Sky'를 할 땐, 저렇게 목을 긁으면서 노래하는데 목이 어떻게 멀쩡하지 싶더라. 그런데 대단한건 그렇게 목을 긁으며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 또 누구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거.... 아주 그냥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앵콜곡은 한 곡이었는데 'A Sailor's Life'(맞나?)로 영국 민요라더라. 이펙터를 사용해서 몽환적으로 불렀고 굉장히 좋았는데, 내심 기대했던 곡들이 안나와서 아쉽긴 하더라. 노래는 총 12곡 + 앵콜곡 1곡이었고, 공연이 끝나니까 대충 1시간 50분 정도 지나있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한시간 정도 공연한 기분??? 게다가 끝나고 헤아려보니 13곡인거 알았지 10곡도 안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짧다고 느껴졌고, 지난번에 못들었던 노래들도 많이 불러서 좋기도 했지만, 그냥 내가 원하는 곡들이 많이 안나와서 아쉽기도 했다. 지난번 공연 때 칼림바 하나 들고 노래 부를때 진짜 정말 엄청 좋았는데 ㅜㅜ 공연이 별로여서 아쉬운게 아니라 그녀의 노래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아쉬웠던?? 뭐래냐.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다음 공연은 2014년 1월 19일 제임스 블레이크 내한공연.


 

이 날 공연의 사진은 아니지만. 나윤선님.

 

공연을 보고 아직 부푼 마음이 채 가라앉기 전에 썼어야 했는데, 벌써 좀 늦었다. 3일이 꼬박 지나고 나서 글을 쓰려니 쓰려고 했던 말들, 셋리스트, 그리고 공연장에서 그녀가 했던 말들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날 있었던 전반적인 분위기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있어 다른 지방에 잠깐 들렀다가 서울에 빠듯하게 올라갔는데, 당연히 공연 시작 30분전에 입장 할 줄 알았더니 1시간 전부터 입장이더라. 아, 이번 공연은 대부분이 지정좌석이고 뒤쪽 부분만 스탠딩이었는데, 악스홀의 규모가 크지 않기에 스탠딩석을 예매했었다. 예매번호는 3번 4번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늦었다. 서울와서 여유부리다가 생각보다 더 늦었다. 그래도 스탠딩 입장 제때 못한다고 조바심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가 표가 그렇게 많이 팔리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표가 많이 안팔린게 좀 이해가 안갔는데, 나름 이 누나 그래미 상도 타면서 꽤 유명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재즈라는 장르 특성상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재즈 공연들 보면 이 정도 공연장은 거뜬히 채우던거 같았는데.. 아무튼 공연시작 15분 전쯤 도착했는데 스탠딩 석은 썰렁하더라. 게다가 지정좌석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좀 심했다. 이 누나 실망하면 어떡해........ 페북에 한국에서 공연한다고 글도 남겼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참 좋았다. 그녀가 노래했던 'Black Gold'에는 그녀자신도 분명히 포함되어야 한다.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부르는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웠다. 난 그 표정이 너무 좋아.... 얼굴만 봐도 같이 행복해지잖아. 그리고 예뻤다. 몸매도 늘씬하고. 노래도 잘해. 콘트라 베이스를 뜯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 그날 하루만큼은 그녀의 콘트라베이스가 되어 그녀에게 백허그를 당한 채로 뜯기고(?) 싶었는데.....!!!!!!!!!!!



날 뜯어요 에스페란자 스팔딩 누나...ㅜㅜ



 이번' Radio Music Society World Tour 2012'에는 그녀의 베이스와 기타, 키보드, 드럼, 섹소폰 셋, 트럼펫 둘, 트롬본 둘, 코러스 둘까지 빅밴드가 동원되었다. 그렇다. 사운드의 양에서 일단 압도한다. 나오자마자, 그리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연주자들의 이름을 호명해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Society"를 보는 것 같아 보는 내내 흐뭇했다. 특히 등장하자마자 밴드원들 소개부터 하는 걸 보고, 이런 배려!! 이런 따뜻함!! 아.. 멋진 여성입니다. 가운데서 섹소폰 부시던 흑 누나 진짜 입이 쩍쩍 벌어졌고 대머리 트롬본 아저씨, 키작은 트럼펫 아저씨, 솔로부분 정말 끝내줬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조금은 오글거렸지만) 대화와 노래 'Black Gold'를 통해 깨우침의 과정을 보여준 코러스 횽 진짜 목소리......ㅜㅜ 흑인 남성 목소리는 왜 이렇게 좋지.. 목소리가 깡패.... 마치 Mario Winans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감미로움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Black Gold'도 참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환경에 대한 언급과 함께 불렀던 'Endangered Species', 첫 곡이었던 'Smile Like That', 'Crowned And Kissed', 지금 바로 여기, 당신을 위한 곡이라던 'Radio Song'도 매우 좋았다. 특히 'Radio Song'은 공연 마지막 곡이었는데, 노래를 알려주고 함께 부르도록 유도했다. 전작에 비한다면 워낙 '팝'적인 색채가 강해진 앨범이었고, 셋리스트도 신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빅밴드와 함께 내한한만큼 '재즈'에 충실한 공연이었다. 한 곡, 한 곡 정성스레, 그리고 열정적인 연주를 보여줬고, 때문에 적은 셋리스트에도 두 시간에 가까운 공연이 진행되었다. 그녀는 그녀보다 키도, 덩치도 한참 더 큰 콘트라 베이스와 상대적으로 귀여운(?) 일렉 베이스를 오가며 다양한 연주를 보여줬다. 특히 콘트라 베이스를 뒤에서 감싸안고 열정적으로 뜯는 솔로부분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다만 그녀의 목상태가 조금 안 좋아보이긴 했는데, 영상들에서 봤던 좀 더 시원한 라이브를 듣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뭐.. 이미 그녀는 표정만으로도 내 맘을 충만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그랬다.....





 현장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은 느낌은 앨범의 수록곡이나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따뜻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목상태가 좋지 않아도, 차가운 스피커를 뚫고 나와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아우라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워낙 피곤했던 날이라 2시간 가까이 서있는 일이 보통은 아니었지만(사실 중간에 하품도 하고 힘들긴 했어....) 내 마음만은 따뜻해져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 그녀가 다시 한국을 찾을 날이 있을까.. 생각보다 관객수가 꽉 차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이 곳에서 어떤 인상을 받고 돌아갔을까.... 노래나 듣자..





내가 갔던건 31일 금요일 공연이었고, 시간 관계상 앞서 있었던 인디 필름 상영회는 못갔다. 공연장에 7시 조금 넘어 도착하여 티켓팅을 하고 악스홀에 들어서니 피아니스트 이진욱님이 공연을 하고 계셨다. 클래식과 재즈, 뉴에이지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음악관을 소유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인데, 아마 이런 스탠딩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전혀 스탠딩하고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니까ㅎㅎ



화질은 참 구리다. 아이폰이 그렇지뭐.



 Bon!Bon!,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그녀에게 말하다와 같은 나름 유명한(?) 그의 노래들을 들려주고, 즉석에서 관객들을 초대해 젓가락 행진곡을 함께 연주하는 시간도 가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많은 빈자리..  그리고 너무나도 짧은 공연시간. 아쉬운 맘을 그의 대표곡으로 달래본다.




 그리고는 JustDance Movement의 공연이 이어졌다.

아마 이 크루(?)의 대표자가 아닌가.. 싶은데.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등장하셔서 정체를 정확하게는 모른다. 공연 내내 댄서들을 소개했다.



공연들은 대부분 좋았다. '춤'이라는 이름으로 고전무용부터 현대무용, 비보잉, 팝핀, 그리고 조금은 전위적인듯 보이는 춤들과 독특한 영상들까지. 이름들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애니메이션 크루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고전무용하셨던 분과 어느 여성 댄서분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아, 덩치 큰 남자분도 진짜 짱이었는데! 뭐여 이게 ㅋㅋㅋㅋㅋㅋㅋ 누구라는거 ㅋㅋㅋㅋㅋㅋㅋ  몇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가끔 누워서 출때 무대 장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한시간 안에 많은 춤이 나오다 보니 모든 춤이 2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어 흐름이 뚝뚝 끊어지고 산만하게 느껴졌다는 점. 또..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같은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너무 'Just' Dance여서 ㅋㅋㅋ 


 사진들을 좀 올리고 싶은데, 폰카의 한계로 죄다 흔들려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춤이라서 셔터스피드가 확보 안되니 어쩔 수 없음.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들이 등장!


 진보느님 등장하셔서 Frank Ocean의 Thinkin'bout You를 부르기 시작. 시작하기 전에 맘 속의 태풍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오글오글하긴 했는데, 요 노래 부르니까 또 쫌 오글오글 하기도 했고 ㅋㅋㅋㅋ 요즘 한창 잘나가는 곡이니까ㅎㅎ 암튼 노래는 잘하더라. 웃겼던건, 이 노래가 양성애자인 프랭크 오션이 첫사랑 남자를 떠올리며 만든 노래인데 후렴이 끝나갈 무렵 Zion.T 등장 ㅋㅋㅋㅋㅋ 나만 웃겼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네 친한 형, 동생이라며.... 왜 그러는거야......





 만담 꾼들이 공연진행도 재밌게 잘하고, 자이언티의 신곡과 진보ver.의 GEE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30분동안 그동안의 습작들 위주로 공연을 진행했다. 엄청 짱!!인 공연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우리 가리온 횽님들 등장 ㅋㅋㅋ 뭐 워낙 공연 경험도 많고 ㅎㄷㄷ한 형님들이라 공연은 당연히 좋았는데, 처음엔 조금 분위기가 그랬다. 아니, 사실 공연장 분위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자이언티도 공연장은 넓은데 우린 참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했으니 ㅋㅋㅋㅋㅋㅋ  일단 사람이 너무 적었어. 하여간 지붕위의 바이올린과 수라의 노래를 비롯해 그들의 노래와 메타횽의 프리스타일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마지막에 연출진과의 착각으로 마지막 곡이 있는 줄 알았는데(아마도 그것은 영순위였다!!!!!!) 없었다... 조금 늦었지만 한참 달아오른 상태여서 더 아쉬웠다. 영순위 하고 끝났으면 진짜 좋았을텐데..  진짜 바보 멍충이!!




 다음 차례인 문샤이너스가 밴드 세팅을 하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더 많이 빠졌드라. 아니, 이렇게 텅 비어있을수가 있어?!?! 하지만 역시 그들은 명불허전. 술을 먹었는지 약을 빨았는지 상기된 얼굴로 싸이키델릭한 연주를 하며 첫 포문을 열더니 이내 관객석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만 신난거 아니죠?" 라고 말하는 차차(차승우)의 한마디에 좀 찔리긴 했지만 어쨌든 난 신났다. 차차는 무대위에서 거의 미쳐있는 것 같았고 마지막 곡을 할때는 결국 관객석으로 뛰쳐들어와 휘저으며 다녔다. 사실 관객석을 아무런 제지도 없이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텅비어서 신나면서도 안타깝고 그랬다. 그리고 그에게 달려든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노래를 불렀다. (언뜻,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때 뛰쳐든 사내가 생각났다 ㅋㅋㅋㅋ) 아, 30분만 이렇게 더 놀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게이트 플라워즈, 노브레인과 많은 디제이들을 뒤로 하고 돌아섰다.






 비록 종합 문화 페스티벌을 반도 못 즐겼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건 좀 웃기지만, 사람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매우 아쉬운 점이었다.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페스티벌이라 다음에도 계속 이어질지 걱정은 되지만, 저렴한 가격에 좋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한 알찬 소규모 페스티벌이 더 발전해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외국 유명 뮤지션 불러놓고 가격 비싸고 계열사들 이익위해 돈만 처발처발 해야하는 페스티벌보단 백배 나은듯. 맘처럼 되는건 하나도 없지만.ㅎㅎ



양일권으로 초대 받아서는 시간 관계상 하루 밖에 못갔다. 아쉬워.



※ 일부 사진의 출처는 파운드매거진 공식 페이스북입니다.

1. 왜 하나같이 내한공연은 제시간에 시작을 안하는겨.. 게을러 빠져서. 안 그래도 스탠딩이라 7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공연은 20분가량 지연되서 8시 20분에 시작. 20분 기다리는게 그렇게 초조할 수가 없었다고. 




내 자리는 이 정도쯤. 원래 공연볼때 사진 잘 안찍는다. 그래서 공연중간의 사진은 없음. 공연은 즐기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그냥 귀찮은거...



2. 스탠딩 50번대라 A구역 가운데에 두세번째 줄 쯤에 자리잡을 수 있었음. 가끔 우리 앞으로 와서 웃으면서 노래 부르는데 눈 몇번 마추친건 자랑.이라기도 애매하다. 난 남잔데... 사실 여자였어도 설레진 않았을것 같다. 그냥 귀염귀염 곰돌이 푸 느낌. 아무튼 공연시작전에 Justfriends부르던 흑누나들 생각남? 그 흑누나들 A구역 끝쪽에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더니 내 뒤쪽까지 온거 ㅋㅋ 근데 이 흑누나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겁나커서 귀청 찢어질 뻔. 짜증났던건 이 누나들이 뮤직이 '손 한 번 잡아주이소'하고 다닐 때 등 뒤에서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날 뚫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거....흥, 질 수 없지. 나 무슨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경기를 제압한다"에서 나오던 강백호의 박스 아웃처럼(한 때 농구 좀 열심히 했지 훗.)오른쪽 다리를 흑누나 앞으로 뻗으면서 몸으로 막았다. 후후후. 흑횽도 아니고 무개념 흑누나들 정도야. 



Q :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어떻게 하면 될까?! A : 몸으로 버티는거다!! 힘으로 상대를 밀어내!! 현장에서 흑누나들과 몸으로 배웠음.



3. 잡설이 길었는데, Musiq는 귀여웠다. 특히 투스텝 밟으면서 춤출때.. 다만 '그냥 공연'을 보고 온 기분이었다. 함께 공감하고 공유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연예인이 하는 공연. 뮤직의 태도는 음악과 공연에 푹 빠져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가끔은 자아도취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코앞에서 보면서도 왠지모를 거리감이 있었다. 뭐 사실 크게 잘못된 건 아닌데, 내가 이전에 다녀온 공연이 레니크라비츠라서 그랬던 것 같다. 9만 9천이라는 돈 값은 했는가? 팬이라면 그럭저럭 수긍했겠지만 아니었다면 조금 아쉬웠으리라 생각됨.



Musiq과 인터뷰한 알앤비 여신 보니ㅜㅜ 출처: 리드머(www.rhythmer.com)



4. 음향은 아... 너무 아쉬웠다. 난 처음에 스피커가 정면으로 닿지 않는 위치라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나보다 했는데, 현장에 있었던 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특히 공연 시작하고 반주는 나오는데 뮤직 목소리가 너무 많이 먹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관객들 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다 묻혔으니, 조금 심하긴 했다. 특히 가성 부분은 '부르긴 부르는거 같은데..'라고 생각될 정도였음. 중반부부터 조금 개선된 느낌이었고, 그래도 관객들 소리가 조금 잠잠해질때나 발라드 트랙에서는 그럭저럭 들을만 했다. 아쉬운대로.


5. 음악 얘기를 해보자면 밴드 형식으로 편곡한 탓도 있겠지만, 주옥같은 발라드 트랙들이 파워풀한 편곡으로 탈바꿈하여 아쉬움이 많이 남았음. 발라드 트랙을 발라드스럽게 부른 노래가 몇 곡 되지 않았음. Marygoround같은거 왜 그렇게 부른거임??????ㅜㅜㅜ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143는 트랙리스트에 없었음. 멜로디 파괴하고 너무 지나치게 자유스럽게 부른점도 아쉬웠음. 물론 그것이 라이브의 맛이라지만 내가 원한 뮤직의 공연은 그런게 아니었다고......... 뭐 그래도 B.U.D.D.Y 부를 때 너무 신났고, Anything에 이어 더리싸우스 분위기 제대로 낸 Radio까지 이어지면서 악스홀은 클럽으로 바뀜. 관객들 떼창떼창 주사 단체로 맞은듯 신나게 따라부름. 공연내내. ㅇㅇ. 떼창의 절정은 Love하고 저슷프랜드 였던거 같은데 난 B.U.D.D.Y가 제일 신났음.ㅋㅋ 오메 신나는 것!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Lovecontract는 원곡의 복고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너무 좋았음. 뭐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계속 말하긴 하지만 반주가 흘러나올때나 첫 소절을 시작할 때나 몸에 돋던 소름은 역시 내가 그의 팬이 맞다는 것을 주지시켜줬음. 내가 10년전에 듣던 이 노래들을 라이브로 듣다니!!!!!!! 헐!!!!!!! 소름소름!!!!!!!! 뭐 대략 이런 느낌?!ㅎㅎㅎ 짧게 불렀지만 Halfcrazy의 반주는 흐어어어어엉어유ㅠㅠㅠ 하게 만들었고, Love의 첫 소절 "Lo~ve~~~ So many things I've got to tell u"하는 순간 또 흐어어어어어ㅠㅠ유 Dontchange 후렴구에서 흥헝허엏읗ㅇ허엏읗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셋리스트. 뮤직이 인스타그램에 올림.



6. 흑횽1 흑누나1로 구성된 코러스 흑남매 좋긴했는데 뮤직 목소리보다 더 안들려서 아쉬웠음. 기타치는 횽이 좀 섹시해 보였음. 무엇보다 중간중간 솔로부분에서 싸이키델릭하게 연주하는데 공연의 흥이 끊기지 않게 해줌. 역시 라이브는 밴드가 있어야 맛임. 그런 의미에서 공짜로 갔었지만 보이즈 투 맨은 좀 에러... 



관광모드 귀요미.


코러스 흑남매.





7. 한 줄 요약 : 10년전부터 지켜봐온 뮤지션이라 좋았지만 다시 온다면 안갈 것 같다. 






 우여곡절이 엄청 많았던 공연이었다. 미리 휴가는 받아놨고, 일찌감치 서울에 가서 간만에 까페에 앉아서 여유 좀 즐기면서 허세 + 된장남의 포쓰 좀 풍기려고 아침 11시에 충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위를 올라탔고, 난 여유있게 Facebook을 확인하고 있었다. 페친중의 한명이 레이디가가 내한공연 티켓을 배송받았다고 인증샷을 올렸다. '오.. 재밌겠다. 부럽군. 저 기분을 알지.'라는 생각과 함께 '좋아요'버튼을 누르고 씨익 웃었다. 오늘 난 레니 크라비츠의 공연을 보는 날이니ㄲ........... ????? 음?? 응??? 아뿔싸, 2주전에 배송받은 티켓을 가방에 챙겨넣은 기억이 없다.... 헐... 순간 오른쪽으로는 충주휴게소가 스쳐지나간다. 그래, 난 아직 충주야. 티켓은 내 책상 밑에서 두번째 서랍속에 고이, 매우 안전하게, 신주단지 모셔놓듯 모셔놓았고. 근데 난 중간에 내릴수도 없이 난 서울로 가고 있어. 티켓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순간 내 멘탈은 베를린 장벽....... 건장한 청년이 미친듯이 내 멘탈을 부수고 있는 장면이 지나간다. 하아.. 애초에 생각하던 된장짓은 8:45 하늘나라로. 서울로 갔다가 충주로 바로 다시 출발하여 택시를 타고 집에 들렀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올 생각이 아찔하다. 서울에 도착하면 5시쯤 되겠다. 나 무슨 부산에서 임진각가냐?? 배타고 인천에서 제주도 가냐??

 

 

 

그 동안의 멘붕은 멘붕도 아니었음......

 

 

 

 다행히 실제로 왕복하지는 않았고, 버스나 기차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네트워크식의 퀵서비스가 가능한 것을 지인에게 듣고는 거금 4만원을 더 들여서 서울에서 수령하였다. 그러므로 난 그 곳에 있던 다른 관객들보다 장당 2만원이라는 가격을 더 주고 공연을 본 것이다! 아깝냐고?? 전혀!!!!! 오히려 레니형님에게 돈을 더 쥐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니까?!?! 이는 분명, 내 생에 최고의 공연이었다. 그냥 블로그에 쓰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니라, 앞으로 이보다 더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 그냥 최고였다. 아니 최고라는 말로 부족해. 하아.. 이걸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네? 현장에 있어야돼. 이건 진짜.. 말이 안돼..

 

 

 

1. 레니 형님은 공연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깊은 교감을 하는 공연이 될 것이다." 공연을 앞둔 어떤 뮤지션이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근데 레니 형님은 그냥 늘 그렇게 말하는 관습적인 발언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관객들과 깊은 교감을 나눈 느낌이었고, 1층 플로어뿐만 아니라, 2층, 3층의 관객들까지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기자 회견 때. 사진의 출처는 티브이 데일리. 링크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4212463304367010

 

 

2. 사실 공연 전에는 걱정이 많이 앞섰다. 표가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당일 현장에도 2층과 3층에 비어있는 자리가 꽤 많이 보였다. 레니형 공연시작하고 실망하는거 아냐?! 공짜표도 많이 풀린거 같은데, 관객들 반응에 실망하는건 아닐까?! 아니였다. 첫 세곡이 끝난뒤 선글라스를 벗고 관객들을 바라보는데, 다 차지 않은 관객석을 보면서도 뿌듯함, 뭉클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 뭐냐, 게릴라 콘서트에서 "안대를, 벗어주세요!!"했을때 나오는 그 표정이었달까. 레니 크라비츠는 그래미 어워드 록부분 4회연속 수상을 비롯해서 상도 엄청 많이 타고 앨범도 3500만장을 팔아치운 슈퍼스타인데, 이보다 더 큰 공연장을 꽉 채우고도 여러번 공연을 했을텐데, 이 횽, 진짜 겸손하고 '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그 뿐만이 아니라, 공연에 참여한 브라스 섹션의 세명, 키보디스트, 드럼, 베이스, 기타까지 모두에게 든 생각이었다. 록밴드인데, 이 사람들 하나도 '양아치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겸손하고 진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공연 내내 들었다.

 

 

Stand By My Woman. 이거 부를 때 진짜 눈물 날 뻔 했다. 목이 터져라 따라부름. 높은데서 찍은 영상이라 그런지 음향이 조금 아쉽다.

 

 

3. 이건 진짜 중요한건데! 이 횽의 공연이 진짜 대단하고, 앞으로 이런 공연이 또 있을까 라고 극찬하는 이유는, 레니횽이 원래 고음을 빽빽 잘지르거나 샤우팅을 잘하거나 하는 등의 포풍 가창력(특히 우리나라 사람들 기준의 가창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 흔한 폭죽 하나 안터지고 와이어 같은것도 없었으며, 아주 평범한 조명시설과 록밴드 치고 트롬본, 섹소폰, 트럼펫 같은 브라스 섹션과 아프리카 타악기 st의 퍼커션 작은거 하나, 플루트 등의 악기들이 함께해서 음악적으로 풍부하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게 없었다. 그럼에도 그 공연장의 1층 플로어부터 3층 꼭대기 관객석까지 어느 한부분 소홀하지 않고 완전히 휘어잡았다는 것. 이게 대단하다는 거다. 난 소름이 수십번 돋았다. 그 이유가 고음도 아니고 화려한 공연장치도 아니고 단지 훌륭한 음악과 무대매너, 그리고 공연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는 것. 이게 진짜 중요한거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최고의 공연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내 보이고 있는거고.

 

 

사진 출처 : 티브이 데일리 링크 : http://tvdaily.mk.co.kr/read.php3?aid=1334326530305207011

 

 

4. 구체적인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면, 스탠딩이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첫 곡 Come On Get It이 시작하자마자 1층 플로어는 모두 기립했고, 공연내내 앉아서 감상한적이 없다. 의자 때문에 뛰는데 조금 불편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소리지르고 반응하기에 모자름은 없었다. 이 곡을 여러분들이 잘 알지 모르겠다며 장난끼 섞인 말로 시작한 그의 대히트곡 It Ain't Over 'Til It's Over, 두 팔을 양쪽으로 넓게 벌리고 도입부의 음악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도 같이 온 몸으로 전율! 아 진짜 행복했다. 차별없는 진짜 "사랑"을 이야기 하는 9집 타이틀 Black And White America를 지나 그의 Favorite이라는 2집 수록곡 Fields of Joy와 Stand By My Woman을 들으면서, 왜 빠순이들이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울면서 보는지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엉엉 날 가져요 레니ㅜㅜㅜㅜㅜㅜㅜㅜ 그의 가성은 앨범이 나오던 시절에 비하면 약간 거칠어진 것이 사실이다. 예전엔 완전히 섹시하고 미끌미끌했는데, 분명 그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 지금 또 소름돋았어. 여전히 엄청 섹시하다!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퍼포먼스도 말투도 완전 섹시하다! 마초적이고 섹시해. 진짜 부럽다!!!!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키보드, 드럼, 기타, 브라스에게 충분한 솔로 연주시간을 주었는데, 이는 레니의 공연이기도 하면서 완전하게 레니 크라비츠 "밴드"가 주인공인 공연임을 확실히 느끼게 해줬다. 특히 Mr. Cab Driver에 이어서 나오던 트럼펫 솔로 끝내줬고(거의 한곡분량을 트럼펫이 주도하여 연주하였다.), 공연 내내 Craig Ross의 기타는 명불허전이었으며, 데이빗 보위 밴드에서 활약하던 게일 앤 도우시의 베이스는 안정감과 리듬감을 보태주었다. 여기에 키보드 솔로, 섹소폰, 트롬본 등등, 그들도 연주를 즐기고 있었고 나도, 관객들도 모두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날 가져요 레니. 엉엉 ㅜㅜ

 

 공연은 Stand부터 Rock And Roll Is Dead, Rock Star City Life, Where Are We Runnin'?를 쉴새 없이 달리면서 미친듯이 뛰게 만들었다. 도입부 기타리프 만으로 진짜 미칠꺼 같았다. 앨범에서 별로 였던 락 스타 씨티 라이프 같은 곡들도 현장에서 듣는데 왜 이렇게 좋은거지???? 분명 그것이 라이브의 힘. 쉴 틈을 안주고,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끊임없이 호응을 유도하고, 화려하게 터지는 기타, 적재적소에 찔러넣는 경쾌한 브라스, 묵직한 드럼과 시종일관 안정감과 리듬감을 이끈 베이스까지. 오르가즘도 이런 오르가즘이 없다. 수십번 터졌다. 그리고 마지막곡 Are You Gonna Go My Way!! 아.. 진짜 쓰면서도 왜 자꾸 소름이 돋는거냐...진짜 후반부는 대단했다. 워낙 레니 크라비츠의 노래들이 후렴구가 명확해서 따라부르기도 좋고, 임팩트있는 기타리프로 시작하기도 하기 때문에, 노래 시작할때마다 다들 환호했고, 눈치 보지 않고 목이 터져라 함께 불렀다.  공연 내내, 한 곡 한 곡, 정말 내가 팬이 맞긴 맞는지 그렇게 열심히 예습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전부 따라부르게 되더라. 덕분에 목이 맛이 갔다. 오늘.

 

 

It Ain't Over 'til It's Over. 이 노래 좀 갑자기 시작해서 현장 분위기는 미쳤지만 시작부터 이 노래를 찍은 영상이 있을까 ㅎㅎ 진짜 노래 시작할때 완전 감동 먹었음 ㅜㅜ

 

 

 공연은 끝났는데, 아무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앉아?? 이렇게 미치겠는데?? 그리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LENNY! LENNY! LENNY!!!!!"를 연호했다. 빨리 나와서 Let Love Rule을 불러달라구요! 그리고 다시 나왔다. 예상하던 앵콜곡 중에 Push, I Belong to You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고, 그리고 Let Love Rule은 분명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근데 어느 관객의 요청으로 그의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Again을 불러줬다. 한국에서만 특별히!! I Wonder if I ever see you again!! 그래요. 우리 조만간 다시 꼭 봅시다ㅜㅜ 씨유 어겐 씨유 어겐 ㅠㅜ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미쳐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라는 감동적인 멘트와 함께 그가 아주 어리던 시절냈던, 그의 데뷔 앨범, 데뷔곡 Let Love Rule이 연주됐다. 레니는 마지막 곡이니만큼 모두 앞으로 나와서 즐기자며 플로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끌어냈다. "We got to let love rule!!" 그리고는 사랑교 교주님의 본격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어딘가의 셋 리스트에서 이 노래가 10분간 연주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날은 삘 받으셨는지 무려 20분간 연주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1층으로 내려와 나훈아 횽님처럼 "손 한번 잡아주이소" 하며 다니긴 했지만, 이번엔 2층 까지 올라가 한바퀴 순회를 시작하셨다. 끊임 없이 두팔을 V자로 벌리고 "Let~ Love~ Rule~ We got the let love rule"을 따라 부르게 하면서. 한 번 끝날때마다 다시 "Sing it!" 아놔, 난 이미 목소리가 맛이 가서 따라부르기도 힘들다구요.... 하면서 또 어느새 난 양팔을 벌리고 따라부르고 있다. 목소리도 안나오면서ㅋㅋㅋ 분명한건, 관객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려고 한다던 그의 기자 회견장에서의 말을 다시금 수긍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1분 부터 보면 된다. 대략 이런 분위기ㅋㅋ 성령 대부흥회 수준이다.ㅋㅋ

 

이건 마무리. 서정민 기자님이 찍으심. 음질은 매우 안좋은데, 마무리가 멋있어서 ㅋㅋ

 

 

5. 진짜 화끈했다. 끝났는데 자리에 털썩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같이 간 친구에게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여운을 즐겼다. 지하철역으로 울면서 걸어왔다. 하... 내가 이런 공연을 다시 볼 날이 있을까.. 프린스의 내 두눈으로 직접 본다면 분명 이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만큼 관객들과 교감하면서 모두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킨, "공연 그 자체"로서 훌륭하고 감동적인 공연이 될까.. 하는 건 미지수다. 아... 정말 씨 유 어겐, 순. 합시다. 그리고 프린스횽 생일 때 가서 잘 좀 말해주세요. 매년 가시는거 알고 있어요. 한국이 끝내주는 공연장이라고!

 

레니크라비츠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과 글. 곧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믿어줄께요 횽님 꼭 빨리 와주세요!!

 

 할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탈이다. 감동, 또 감동, 감격. 아. 읽기 싫겠다. 길어서.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포스팅의 의미보다 그냥 잊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소중하게 남겨두련다.ㅎㅎ

 

 

※ 참고 : 레니 크라비츠의 공연은 20분이 지연되어서 8시 20분에 시작해서 10시 20분쯤에 끝났다. 근데 공연 끝나고 20분 지연되서 늦게 시작했다고 짜증내던거 기억 난 사람이 있을까? 없을 듯. 24시간 기다려도 기다렸던거 생각 안 났을듯. 진짜 대단한 공연 이었다.

 

 

Set List

Come On Get It  (9)
American Woman (5)
Always on the Run (2)
It Ain't Over 'Til It's Over (2)
Mr. Cab Driver (1)
Black And White America (9)
Fields of Joy (2)
Stand By My Woman (2)
Believe (3)
Stand (9)
Rock And Roll Is Dead (4)
Rock Star City Life (9)
Where Are We Runnin'? (7)
Fly Away (5)
Are You Gonna Go My Way (3)

앵콜

Again(베스트 앨범)  
Let Love Rule (1)

 


Evanescence

팬에게도, 혹은 팬이 아니었던 이에게도.

어떤 이에게 이번 공연은 Fan이 된지 10년만에 내한하는 설렘 가득한 공연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얼터너티브의 전설급인 그들이 왜 게스트에 불과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공연은 전자에게나, 후자에게나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을지언정, 분명 가슴 벅차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반에센스와 부쉬의 팬은 아니었지만, 10년만에 Bring Me To Life를 들으면서, 혹은 94년에 나왔다는 부쉬의 데뷔 앨범 Sixteen Stone을 들으면서 많이 설렜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난 듯한 설렘이 에반에센스에게 있었다면, 알던 친구의 모르던 멋진 면모를 발견한 기쁨이 부쉬에게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이 공연은 가슴이 터지도록 벅찬 순간이었다.


예상보다 적은 관객 수, 어쨌든 놀 준비는 끝났다.

조금 일찍 공연장인 악스홀에 도착하니 유리 벽면 가득 붙어있는 걸개와 포스터가 우릴 반겨줬다. 이제 곧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간 친구나,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나, 가죽자켓 입은 록커st.의 청년이나, 모두 똑같이 설레고 흥분된 표정이었다. 짐을 물품보관함에 쑤셔 넣고 가벼운 복장으로 스탠딩석으로 들어섰다.

표가 엄청 안 팔렸다고 하더니 확실히 사람이 적었다. 그럼 어떠랴, 관객 입장에선 쾌적하고 좋더라. 공연장위에BUSH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걸개가 눈에 띄었다. 두꺼운 옷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복장으로 들어가니 마음은 이미 날듯이 가벼워졌다. 놀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나와라 부쉬!!


무대매너 폭발, 섹시 카리스마 BUSH!

스티븐 시걸을 연상케 하는, 곱게 빗어 넘긴 머리를 한 Bush의 보컬 개빈(Gavin Rossdale)이 등장했다. 별다른 멘트 없이 그들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Machinhead와 신보의 Baby Come Home을 연달아 불렀다. 분명 앨범에서 좋게 들은 곡들이고, 놀 준비도 되어있었는데, 생각만큼 신나지 않았다. 주변 반응도 그저 그래보였다. 아직 이들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지 못한 탓이었을까. 하지만 상황은 보컬 개빈이 가죽재킷을 벗고 나시티 차림으로 굵은 팔뚝을 자랑하며 등장한 세번째 곡 Everything Zen부터 완전히 반전되었다. 원곡도 들어보고 라이브 앨범에 수록된 버젼도 들어봤지만, 원곡보단 라이브 버젼이, 라이브 버젼보단 현장에서 보는 것이 좋았다.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뭐랄까, 공연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탄다고 해야 할까. 20년차의 내공은 역시 대단하다. 진짜 미쳤다. 현장감은 이래서 중요한거다!


이어서 신보의 타이틀곡인 The Sound of Winter를 지나 The Afterlife에서는 기어코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 오셨다. 펜스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다가 어느 순간 관객의 핸드폰을 뺏어서 그 핸드폰 카메라로 관객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올라온 영상 보니 관객들 정말 신나있더라.) 시원한 보컬과 신나고 악동스러운(?) 멜로디 라인이, 그 어떤 곡보다도 핸드폰으로 찍은 B급스러운 뮤직비디오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장 내의 어느 한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Bush의 매력을 제대로 느낀 순간 이었을 것이다. 폰 주인은 계탔다.


이어진 Little Things도 역시 원곡 이상으로 좋았고, 이어서 비틀즈의 Come Together를 하드하게 커버했다. "Come Together/ Right Now/ Over MEEEEE!!" 네, 함께 떼창하며 열심히 따라가고 있어요. 이어서 기타 하나와 개빈의 보컬로 소박하지만 애잔하게 꾸며진 Glycerine이 연주되었다. 여자분들 녹아내립니다. 마지막 곡은 1집 수록곡인 Comedown이었다. 나름 Bush노래 중에서 엄청 히트곡인데, 마지막에 연주를 멈추고 관객 떼창을 유도 했지만 생각보다 소리가 조금 작아 살짝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만, 에반에센스보다 부쉬를 보러온 듯한 많은 관객들(특히 외국인 관객 중에 그런 분들이 많았다.)이 소리 높여 따라 부르는데, 왠지 정말 부러웠다. 가사라도 좀 외워 갈 것을... 너무나 좋은 공연이었기 때문에 소리 높여 부르는 떼창으로나마 그 좋은 공연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제발 한 번만 더 왔으면 좋겠다. 꼭 소리 높여 함께 부르고 싶다.


두근두근 뛰는 가슴, 하지만 너무 길었던 인터미션.

9곡이 이어진 부쉬의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되었는데, 계속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왠지 하다 그만 둔 것 같고, 한시간만 더 놀아줬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에반에센스만 알고 공연장에 갔던 많은 이들이 Bush의 노래도 집에가서 찾아봐야겠다며, 너무 좋았다고들 입을 모았다. 더 아쉬웠던 점은 20분간 진행된다던 인터미션이 왜 30분이 넘어도 끝나질 않는거냐... 두 팀 모두 밴드라서 셋팅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은 이해하지만, 끓어 올라 넘치던 에너지와 흥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마성의 카리스마, 에반에센스의 공연!

그리고 그들이 등장했다. 에반에센스! 첫 곡은 신보의 타이틀곡 What You Want였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첫 곡의 강렬한 기타리프에서 오는 쾌감이 짜릿했다. 그런데, 목상태가 썩 좋지 않다. Going Under와 The Otherside를 연달아 불렀는데, 엄청 힘들어 보인다. 음이탈 실수도 잦았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보컬 에이미 리(Amy Lee)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수시로 목을 축이고 목에 스프레이를 뿌려보지만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물론 에이미 리의 라이브가 썩 훌륭한 편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단순히 그 문제가 아닌듯 보였다. 보컬 소리가 작은 것이 사운드 문제도 조금 있어보였다. 어쨌든 그녀는 혼신을 다했고,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 일단 음악이 강렬하니까 별 생각 없이 신났다.

Weight Of The World와 Made Of Stone까지 멘트는 짧게 하면서 연달아 노래를 불렀다. 인터미션이 길어서 짧은 시간에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예상했던 Set List와 유사하게 나갔지만 좋아하던 My Last Breath는 듣지 못해 아쉬워하던 찰나, 무대 중앙에 피아노가 등장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Lost In Paradise를 부르는데, 이때부터 목소리가 한층 안정되었다. 에이미 리는 엄청 몰입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특히 피아노 한대로 도입하는 부분, 긴장되고 설렌다.


3집 수록곡 My Heart is Broken과 2집의 Litium에 이어 잔잔하게 부르는 Swimming Home까지. 피아노를 치며 총 네 곡을 불렀는데, 네 곡 모두 반응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이번 에반에센스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먹먹하면서도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다. 이어진 Sick에서는 다같이 "Sick of it all!!"을 떼창. 속이 다 후련하다! 어느덧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어진 세곡은 모두 1, 2집의 히트곡들이었다. Call Me When You're Sober, Imaginary, Bring Me To Life로 이어지는 라인. 에이미 리의 목은 완전히 풀려서 목소리를 쭉쭉 뽑아내고 있었고, 곡들이 시작할 때마다 사람들의 감격에 찬 환호성이 이어졌다.


특히 Bring Me To Life의 첫 소절이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최고! 역시 이들의 최고 히트곡이 맞다. 마지막곡이 Bring Me To Life가 될 것은 알고 있었기에, 반갑고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그리고 드러머 윌 헌트(Will Hunt)의 드럼은 정말 대단했다. 공연 내내 집중을 받은 것은 당연히 홍일점 에이미 리지만, 뒤에서도 정말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앵콜곡은 My Immortal 한 곡이었다. 아마도 예정된 앵콜곡은 두 곡 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미 예정된 두 시간의 공연시간에서 20분이 초과된 상태라 더 부를 수 없었던 것 같다. 아쉽지만, 나도 집에 돌아가는 차가 끊길 시간이었다.

아쉬움보다는 흥분과 감동이었던 멋진 1+1 공연.

굉장히 흥분되고 즐거웠던 공연이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은 공연이었다. 일단 너무 길어서 흥을 깨버렸던 30분을 훌쩍 넘긴 인터미션, 그리고 그것 때문에 너무 짧고 정신없이 지나버린 에반에센스의 공연, 조금 비싼 티켓에다 홍보가 잘 되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적은 관객.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의 공연은 좋았다.

인지도가 조금 적었던 부쉬는 그곳을 찾은 모든 관객을 매료시킬 만큼 훌륭한 무대매너와 라이브 솜씨를 뽐냈고, 에반에센스는 그들의 히트곡을 직접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헤드폰이나 작은 스피커로 끄적대는 것과 라이브는 가슴에 와 닿는 강도가 전혀 다르니까. 여러분들, 공연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멋진 공연을 보여준 부쉬에 에반에센스 모두 사랑합니다!




※ 이 글은 싸이뮤직 이 주의 공연 컨텐츠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칵스

하얗게 불태운 뜨거운 여름의 끝자락 공연

늦은 오후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급하게 먹은 점심이 체한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유난히 피곤했던 일주일이었기에 다크서클은 이미 허리춤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마 공연장 안에서 내가 제일 피곤해 보였으리라. 

여름을 페스티벌 하나 못 가고 이대로 보낼 순 없다며 벼르고 별렀던 공연이었는데... '이대로 뛸 수 있을까?' 공연장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지 멀쩡한 남자가 혼자 와서 미친 듯이 뛰다가 앞사람 등에 토악질을 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머리에 스쳤다. 이 상태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뇌를 하얗게 불태워버린 공연

공연이 펼쳐지는 홍대 V홀에 공연 시작 30여분 전 도착해서 표를 받아들었다. 600번대. 보나마나 마지막 입장이다. 올라가서 바람이라도 더 쐬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오르는 동안, 계단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던 백 여명 정도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여자였던 것 같다. 메스꺼운 속을 붙잡고 올라가던 그 와중에도 부러웠다. 짜식들. 잘 나가는구나. 밖에서 크게 한 숨 들이켜고 맘을 다 잡으며 공연 5분 전에 내려와 입장했다. 이미 공연장 안은 600명 가까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설렘과 흥분,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윽고,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상영하고 있었던 듯한 스크린에는 The Koxx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 소개되었다.


"글래스톤베리에 보낼 유일한 한국 그룹!"과 같은 자기 자랑 식의 약간은 오그라드는 영상이 끝나고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그들이 등장했다. 망설임 없이 시작된 그들의 첫 곡 'XXOK'. 왼쪽 귀와 오른쪽 귀가 뚫려서 연결되어 버릴 것 같은 환호성, 공연장 천장을 뚫을 듯한 기세로 뻗어 올린 손, 신나는 기타와 파워풀한 드럼, 귓 고막을 자극하는 전자음, 격렬한 헤드뱅잉, 그리고 온 몸에 소름을 돋게하는 떼창까지. 소화가 되지 않아 울렁거리던 속은 이내 흥분과 설렘으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2시간의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공연은 끝나 있었다. 5분 전까지 신나게 뛰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기어 올라가듯 겨우겨우 계단을 올라와 모자란 당분을 꿀물로 채우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하얗게 불태웠다며, 목표를 완벽하게 클리어 했다며 기뻐하는 도중에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공연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미친 듯이 뛰고 놀고 소리 지르느라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뇌까지 하얗게 불태웠나보다. 글을 쓸 생각에 가슴이 갑갑해왔지만, 이 날의 공연은 그만큼 열광적이고 열정적인 공연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신형엔진

공연을 본지 3일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통증으로 뒷목을 부여잡고 칵스의 1집과 EP를 무한 재생하며 그날의 조각난 기억을 하나씩 되새김질 해본다. 'XXOK'로 시작된 공연의 오프닝을 연달아서 1집 수록곡들인 'City Without a Star'와 'Fire Fox'로 이어졌다. 시작부터 혼을 쏙 빼놓는다. 칵스의 공연은 예열이 없다.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속력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레이싱 대회처럼 처음부터 최대 출력으로 달린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엔진에 무리가 가더라도 말이다.(오늘 공연도 공연 말미에 일부 멤버가 산소호흡기로 충전을 해야 할 만큼 엔진에 무리가 갔다. 평균나이 22.5세의 신형 엔진도 소용없을 정도의 질주였다.) 

연달아 세 곡을 달리고 나서야 그들의 첫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준비해온 멘트를 하다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첫 앨범, 그리고 제대로 준비한 단독 공연과 꽉 찬 객석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한 채, "감사합니다. 재밌게 놀다가세요!"라는 말과 함께 'Dreamer'와 'Refuse'가 연주 되었다. 댄서블한 리듬이 넘실대는 연주에 정신없이 쏘아대는 레이저, 간간히 터지는 싸이키 조명, 공연은 점점 더 가속도를 붙여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드러머 샤론의 드럼 솔로가 있었는데, 빠른 속도에서 조금씩 느려지다 드럼에 머리를 쿵 박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어찌 끝날까 살짝 걱정도 됐는데, 시선과 호응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A Fool Moon Night'로 이어졌다. 보면서 이들은 이제 정말 '루키'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어서 '12:00'와 '술래잡기'가 이어졌는데, '12:00'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꽤 좋게 들었지만 무작정 신나는 댄서블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아 라이브에서는 아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한글로 쓰여진,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불러봤을 그 멜로디는 라이브에서 함께 부를 때 더 빛을 발했다. 


남성다운 임팩트의 후렴구가 돋보였던 'T,O.R.I'에 이어 '얼음땡'에서는 숀과 수륜까지 함께한 드럼 합동 연주 퍼포먼스가 재밌었고, 공연은 'ACDC'와 'Jump To The Light'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공연이 시작하고 한 시간이 넘게 지났지만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달리는 이들의 연주에 나도, 혼자 온 옆의 남자도, 뒤에서 날 자꾸 밀치던 여자도, 앞에서 내 발을 계속 밟아대던 여자도 지칠 줄 모르고 손을 높이 뻗고 함께 뛰고 있었다. 이 곳이 바로 아픈 줄 모르고 뛰는 지옥불 속이요, 열정의 끝판왕이었다. "No one can control my R! P! M!" 그래, 달리는 걸로는 늬들이 짱이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곡이란다. 

앨범에서 가장 라이브로 듣고 싶었던 'Oriental Girl'. 동양적 선율과 독특한 악센트가 인상적인 발음, 댄서블한 리듬, 그리고 중간에 템포가 한번 바뀌면서 빠른 BPM으로 가장 춤추기 좋고 신날 것 같았던, 집에서 음악 들으며 가장 날 들썩거리게 했던 그 곡. 마지막답게 유난히 큰 목소리로 질러대던 떼창과 더불어 밀고 밀리고 밟고 밟히고 뛰고 춤추고 하여간 집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 그곳에서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앵콜곡으로는 세 곡이 이어졌는데, 1집 마지막 곡이었던, 'The Words'를 여자보컬과 함께 몽환적이고 차분하게 들려주고는 EP 수록곡인 'Trouble Maker'와 'Over and Over'로 칵스 답게 마무리하였다. 특히 이 날의 마지막 곡 ‘Over and Over’를 연주할 땐 바닥날 것 같은 체력을 붙잡고, 난 이 날을 위해서 그동안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며 체력을 길러왔던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끝까지 Over and over!를 함께 외쳤다. 후회없이. 화끈하게. 늘 흐리고 비 내리던 우울한 여름을, 꽉 막혀 답답하던 그 속을 온 몸에 흘러내리던 땀과 함께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 배설한 기분이었다. 


그대들이 최고다. 칵스!

칵스의 보컬 현송은 공연 내내 "너네들 진짜 많이 늘었다. 정말 잘한다!"라는 말이 듣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이제 어리고 갓 데뷔한 애송이들이 아니다. 관객을 휘어잡는 노련미와 젊음의 패기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 넘치는 밴드다. 농담 반 진담 반 이겠지만 과감하게 세계 제패가 목표란다. 적어도 그 날 그 공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열정과 그 기운이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일단 확실한 건 500명은 무조건 제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섬머소닉을 비롯해 싱가폴, 태국, 중국, 호주, 프랑스 등 다수의 해외 공연과 러브콜들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을 통해 외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방향성이 제대로 먹히고 있는 증거 아닐까. 아무리 The Foals나 Two Door Cinema Club과 비교가 되어도 어떤가. 내가 볼 땐 뒤에서 그들을 모방하고 쫓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한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글래스톤베리에 보낼 유일한 밴드라는 말, 아직은 이 글에 나온 호들갑보다 더한 오버라는 거 알고 있다. 그래도 좋다. 난 이들의 세계 제패를 응원하련다. 

※ 이 글은 2011년 9월, 싸이월드 뮤직에 기고한 글입니다.

힘들어도 가야한다. 고대하던 공연이니까.
 전날 에반에센스/부쉬의 내한공연에 초대로 가서 열심히 뛰어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 반. 아침 열한시부터 강의를 네시간 반 빡빡하게 하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몸이 성할리가 없었다. 엄청 피곤한 상태였고, 어제 지나치게 흔들었던 탓인지 목이 너무 아팠다. 서울로 가는 차안에서, '이거 가야돼나?' 싶을 정도였다. 버스가 지겨웠다. 그리고 이 날 엄청 추웠다. 그래도! 예전부터 고대하던 공연이 아니던가. 막상 가면 생각이 달라지리라 믿고 힘겨운 몸을 이끌고 홍대에 있는 까페 Common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훨씬 좁은 무대. 그래도 가까워서 좋았다.


한희정님이다! 읭??
 따땃한 레몬차를 받아들고 주변을 살폈다. 공연이 제대로 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크기. 하지만 그만큼, 뮤지션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나중에 공연을 다 보고 느낀거지만, 작은 공연장치고 음향도 생각보단 훨씬 좋았다. 물론 소리 하나하나를 조금 더 잘 잡아주었으면 하는 맘도 있고,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 몇가지 수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공연을 느끼기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바로 옆에 오늘의 게스트 한희정님이 있었다. 실제로 한희정님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얼굴이 참 작고 귀엽게 생기셨더라. 사진으로만, 또 노래로만 듣던 그 분이 내 바로 옆에 있는걸 보니, 실례되는걸 알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더라. 나 누구 보러 온거냐......


아.... 이건 진짜야.. 라이브로 보는게 더 진짜야...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잠비나이가 등장해서 악기 셋팅을 하는데, 박수를 쳐야하나 말아야 하나, 시작하는건가 어쩐건가 싶은 분위기에서 첫 곡 나무의 대화2가 시작되었다. 기타와 거문고, 해금, 실로폰 등이 번갈아 노래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세명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는 한계는 루프스테이션과 노트북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만으로 이렇게 훌륭한 라이브 연주가 가능하구나. 사뭇 놀라웠다.

 

 



 첫 곡이 끝났는데, 민망하게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아, 타이밍을 놓쳤다. 글쎄, 본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깊이 빠졌고, 또 압도 되었다. 두 번째 곡이었던 소멸의 시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 공연 내내 비슷했다. 강렬함에 압도되고 몰입되어서, 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 때문에 끝난뒤의 정적을 쉬이 먼저 깨는 사람이 없었다. 연주가 끝난뒤의 침묵과 정적 마저도 그들 공연의 일부 인 듯 느껴졌다. 그래서 누구도 선뜻 정적과 침묵을 깨지 못했으리라. 멘트를 담당했던 이일우님의 '감사합니다' 혹은 'XX였습니다.'라고 제목을 말하는 것이 현실 감각을 깨워주는 토템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실 멘트담당 이일우님의 어설픈 진행도 사실 한 몫했다. '나름' 꽤 귀여우셨다.)

정말 열정적으로 연주하셨다. 가장 오른쪽 심은용님은 공연내내 연주하는 모습을 못봤다; 바닥에 앉으셔서;



 두번째 곡부터는 객원 드러머와 객원 베이스주자까지 다섯명이 공연을 진행했다. 앨범의 수록곡 소멸의 시간, Grace Kelly가 연달아 연주되었다. 심은용님이 연주하는 둥둥거리는 거문고소리가 긴장감을 안겨주고, 김보미님의 해금소리가 가슴을 후벼판다. Grace Kelly의 EBS영상은 긴장을 좀 하신듯 아쉬웠는데, 현장에서 본 느낌은 정말 좋았다. 네번째 곡 구원의 손길까지 연달아 아주 헤비한 무대가 이어졌다. 특히 세 곡 모두 원곡보다는 길게 편곡된 느낌이었는데, 구원의 손길은 특히나 더욱 길게 편곡되었다.(원래의 런닝타임은 3분 이내다.) 이일우님이 태평소와 피리와 기타와 보컬을 오가면서 격렬하게 연주하는데, 아이 이 아저씨 진짜 예술가네?? 멋지다 정말.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메탈, 프로그레시브록, 포스트록, 프리재즈, 재즈록 그리고 국악. 이 모든 단어가 잠비나이를 표현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표현해내는 단어는 없다. 아이 씨X 소리가 절로 난다.


게스트 한희정님의 휴식시간.
 이어서 한희정님이 등장했다. 잠비나이와 만나게 된 계기가 두리반 공연에서 우연히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반했다고 했는데, 그들의 노래 '나부락'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뻔 했다...고.... 응?? 아니 대체 어디서 눈물이 나면 되는거지?ㅋㅋㅋㅋ 싶었는데, 잠비나이 분들도 나랑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눈물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일까봐 꾹 참았다고 한다. "아, 잠비나이랑 진짜 안 어울린다.."라고 약간 멋쩍은듯 말씀하시고 우리 처음 만난을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안 어울리지만, 게스트로서 참여한 Break Time정도로 생각하면 더 없이 좋을 듯 했다. 잠비나이 공연이 워낙 어깨에 힘들어가는 공연이라, 한희정씨가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로 살살 어루만져주는 기분. 달달하고 부드럽다. 아... 좋다.... 도착해서 마신 따뜻한 레몬티 같았다. 이일우씨의 즉석 요청으로 선곡이 바뀌었다는 멜로디로 남까지 두 곡을 부르고 퇴장하셨다. 

실내사진 쥐약이다. 아이폰 4는. 카메라를 가져갈껄 그랬나. 한희정님.


진짜 짱임. 다음엔 큰 공연장에서 오백명 모아서 합시다!
 2부에서는 세 곡이 이어졌다. 드럼, 베이스와 함께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은 기대한 만큼의 극적인 느낌을 안겨줬고, 홍대 여신을 울릴뻔했던 나부락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을 수도 없이 많이 봤는데, 실제로 봐도 정말 대단하다. 김보미, 심은용님은 여자분이고, 유일한 청일점 이일우님의 모습은 그렇게 허술해 보이는데,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는것이 놀랍다. 마지막곡은 Connection. 노래 초반 루프스테이션으로 겹겹이 쌓아가는 피리소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마치 노래작업 하는거 구경하는 기분 + 안개 자욱한 몽환적인 기분. 반전,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 아름답다. 대단하다. 앵콜 외치고 싶은데 왠지 그런분위기가 아니다. 혹시 준비하신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EBS 공감을 비롯해 몇몇 공연이 더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같은 곡으로 보여주는 공연은 쉽게 잘 찾지 않는 편인데, 더 새롭게 편곡하며 노력하겠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씨디를 구매하고 싸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집에서 1집 씨디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꼭, '앨범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싶었는데..(결국 트윗으로 멘션 날렸다.) 처음에 50명 모아서 공연하자라는 말을 듣고, '과연 채울수 있을까?'라고 하셨다는데, 앞으로 백명, 이백명 쭉쭉 늘어나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누구 이 분들 해외진출 시켜주실 분 없습니까?????

싸인 받으시는 이일우님. 아, 나도 받을껄.





 Set List
1부
나무의 대화2
소멸의 시간
Grace Kelly
구원의 손길

Guest 한희정
우리 처음 만난 날
멜로디로 남아

2부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빛
나부락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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