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어떤 친구가 올렸길래, 나도 심심해서 떠올려봤다. 아무생각 없이 떠오르는대로 10권을 골라봄.


1. 코스모스 - 칼 세이건

2. 카오스 - 제임스 글리크

3. 강의 - 신영복

4. 백석전집 - 백석

5. 괴델, 에셔, 바흐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6. 기형도 전집 - 기형도

7. E=MC2 - 데이비드 보더니스

8. 퇴마록 - 이우혁

9. Analysis - Arthur Mattuck

10. 슬램덩크 - 이노우에 다케히코


 뭐 일단 생각나는대로 적어본건 이 정도. 지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적다가 문득, '영향을 준 책'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급 옛날 생각들을 해봄. 어찌보면 정반대이면서도 완벽하게 공존하는 코스모스와 카오스는 지금도 종종 꺼내읽는 성경같은 책이다. 내가 가진 과학관 뿐만 아니라 우주관, 세계관이 이 두 책에서 나왔다. E=MC2은 재수할 때 읽은 책인데, 이과생으로써 읽는 과학책이 이렇게 재밌다는 것을 처음 느낀 책이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는 동양철학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옮겨놓았는데, 한 챕터 한 챕터 읽으면서 생각도 많이하고 깨달은 것도 많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 훨씬 유익하고 재밌게 읽었음. 백석전집과 기형도전집은 다 아버지가 추천해서 읽은 책. 백석은 재수하면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시인인데, 그 이야기를 아버지와 술먹고 했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며 백석 전집을 건네 주셨다. 기형도 전집은 백석 다 읽고나니 주시더라. 지금은 백석보다 더 좋아하는 시인이 됨.

 퇴마록은 활자라는 매체와 멀어지고 있던 시절에 다시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책이고, 슬램덩크는 뭐 말할필요도 없는 명작. 그래서 내가 초딩때부터 농구를 했었는데..(근데 키는 왜....) 여담이지만, 중학교 1-2학년 땐 나름 센터였다. 센터치곤 좀 작았지만. 그리고 포워드, 고등학교 가니까 가드. 드리블 못하는 가드가 되었지 ㅋㅋㅋㅋ 

 Analysis는 해석학이라는 대학교 전공책인데, 이거 공부하면서 진짜 수학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재밌더라. 중고딩때 배운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전공 하나는 제대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괴델, 에셔, 바흐는 진짜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괴델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 철학의 팔할은 괴델에서 나옴 ㅋㅋ 그 괴델의 어려운 이론을 그림과 음악과 함께 우화처럼 엮은 책이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가 감이 잘 안왔는데, 이 책 읽고 감을 잡았다. 두 권짜리인데, 하권은 아직 다 읽지도 못했다는게 함정 ㅋㅋㅋㅋ 상은 진짜 재밌었는데 하는 좀 별로..


 책 폴더는 만들어놓고 책 읽고 쓴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그래도 블로그 만들고서 읽은 책이 꽤 되는데.. 폴더 지울까.. 다 쓰고 나서 나에게 영향을 준 음악 앨범 10장을 뽑아보려다가 미친 짓 같아서 관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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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개
                                              기형도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ㅇ기는

희고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형도 전집을 다시 읽고 있다. 백석으로 취향의 공통점을 찾은 울 아부지가 신나서 기형도를 추천해주셨다.(울 아부지는 국문과 출신; 시도 좀 쓰셨음. 사실 우리 집에서 나만 이과다ㅋㅋㅋ) 그리고 그 기형도 전집의 첫페이지가 바로 이 안개였다. 내가 수능 공부할 때만 해도 백석은 중요한 시인으로 다뤄졌는데, 기형도는 아니어서(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기형도의 시는 잘 몰랐다. 그래서 이 시를 처음 봤을때의 강렬한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천천히 하나하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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