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발매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그의 믹스테잎 [Nostalgia, Ultra] 시절에는 그의 존재는 전혀 몰랐다. 다만 어느새부턴가 아직 정규앨범도 안나온 이 친구의 이름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을 보고(사실 노래 못지 않게 바이섹슈얼 커밍아웃과 제이지, 칸예 등등과 연관해서 자주 눈에 띄었다.), 'Novacane'과 새 싱글을 비롯한 몇몇 노래들을 들어볼 무렵 그의 문제작 [Channel Orange]가 발매되었다. 앨범을 한바퀴 돌리고 나서, 수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첫째로 싱글을 들었을 때 이미 느꼈지만, 이 친구는 목소리 버프가 없다. 폭풍 가창력, 음슴. 속삭이는 듯한 달콤함, 음슴. 녹아내릴 듯한 섹시함, 음슴. 개인 취향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친구 목소리 버프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소리가 가진 매력이 없다. 흑인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가진 그루브감이나 이런것은 둘째치고, 목소리 하나만 놓고 보면 건조하게까지 느껴진다.
둘째로,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다 듣고 나서 생각나는 Hook이 없다. 몇몇 곡에서 멜로디 라인이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멜로디가 없다. 그러니 킬링 싱글이라 불릴만한 곡도 없다. '야 진짜 이노래 개짱이야!!!!'라고 추천할 곡이 없다고... 특히 우리나라 애들한텐 더더욱 ㅋㅋ 우리나라 애들 막귀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단번에 어필할만한 요소가 별로 없어서 그런다. 게다가 이 친구가 가진 장점은 언어적 한계때문에 우리나라 애들한테 덜 드러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이 친구 앨범을 듣고 가장 많이 떠올랐던 사람은 Maxwell이었다. 물론 맥스웰의 목소리는 심각할 정도로 대단하기도 하고, 세련되고 도시적인 음악은 멜로디 라인과 관계없이 사람을 끄는 면이 있어서 많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벗뜨, 트랜드와 관계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측면과, 자신이 음악과 앨범을 끌어가는데 강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상관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앨범은 맥스웰의 첫 앨범 못지 않게 본인의 강한 정체성과 자의식이 반영된, 전혀 신인같지 않은 신인의 1집같지 않은 1집이다. 욕심을 크게 갖지 않고(어쩌면 욕심이 지나친 사람일 수도 있고..) 뚝심과 센스를 가진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명반이다.
사실 앨범 평은 굳이 내가 안해도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미 피치포크 9.5점을 비롯해 유수한 평론 매체들에게 만장일치로 만점 혹은 그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으니 내가 여기서 말해 뭐해. 다만 한가지 확실한건, 이 앨범 들어. 두 번 들어. 그리고 가사 꼭 봐. 두 번 봐라. 그러면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만장일치로 좋은 의견을 내세웠는지 이해가 갈테니까. 이 정도면 거의 올해의 신인은 둘째치고 올해의 앨범 급이다. 근데, 역시 한가지 주의해야 될 점은 수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다고 나도 억지로 엄지손가락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것.ㅎㅎ 솔직히 가사를 이해하지 않고 이 앨범을 들으면 그럭저럭 좋은 앨범, 혹은 '이 앨범이 왜?!'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앨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Frank Ocean의 음악을 감상하는 주된 포인트는 직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상적이라거나 현학적이지도 않은,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점, 혹은 남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담담하지만 통찰력있게 표현한 가사다. 영어실력이 썩 좋지는 못해서 가사를 보고 좀 찾아봐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어라?! 이 어린노므시키가?!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시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때론 담담해서 잔인하게도 느껴지는 그의 스토리텔링이 이 앨범의 포인트라고 생각하니, 그제서 이 앨범은 컨셉, 음악, 멜로디, 그의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베스트 곡을 몇곡 뽑아보면, 첫째로 Bad Religion. 마치 김연우의 이별택시가 생각나는 가사다. 물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정도는 아니고, 조금 더 절제되고 시적으로 정제된 듯한 가사에 앨범에서 가장 애절한 곡이다.(자꾸 우리 것을 까는 것 같아서 덧붙이는데, 이별택시의 가사는 정말 괜찮다. 그 찌질함이 포인트니까.)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혹은 사랑)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허함과 허무함, 좌절감.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흔하다는 짝사랑 곡인데 이런 진중한 가사는 없어진지 오래라...(This unrequited love/To me it's nothing but a one-man cult/And cyanide in my Styrofoam cup. - "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나에겐 그저 사이비 종교와 같아. 스티로폼 컵 속에 담긴 청산가리와도 같아." 알아보니 어느 사이비 종교에서 누가 스티로폼 컵에 청산가리를 담아 마시게 해서 집단으로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일이 있다더라. 그걸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타이틀 곡 Thinkin Bout You. 어디선가 디안젤로 뺨따구 날리는 가성이라고 하는 글을 봤지만 그건 아니고 아무튼 가성이 인상적이긴 하다. 들을수록 감기는 느낌의 곡인데, 자꾸 그의 바이섹슈얼 선언과 그의 첫사랑 남자가 떠올라서 좀 찝찝하기도 하다.ㅎㅎ
한참 유행하던 덥스텝 느낌을 차용한 Crack Rock은 몽환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설정이 인상적인 곡이다. 코카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한가지 방식으로만 풀어가지 않고, 사건의 당사자처럼 verse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다음 10분짜리 대곡 Pyramids. 하찮은 스트립클럽 같은 곳에서 일하는 창녀라도 내가 사랑하면 클레오파트라여, 안그려? 슬픈건 화자가 직업도 없는 루저야. 기둥서방이라 이거지. 그래서 다른 남자랑 같이 있는걸 봐도 별 말을 못해. 현실의 삶에 담담해진 클레오파트라와 그녀가 클레오파트라임을 알고 있는 하찮은 루저.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자니 짧은 소설 한편 보는 것 같다. 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가사 답게 음악도 대곡인데다가 구성도 버라이어티 하다. 신인이 이런 대담한 구성을 했다는게 대단하다는 거지.
퍼렐 윌리암스가 프로듀싱에 참여해서 그런지 유난히 밝고 튀는 Sweet Life은 Hook이 가장 도드라진 노래고, 앨범은 안만들고 영화나 찍고 있는 Andre 3000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Pink Matter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둘이 왠지 엄청 잘 어울려!!!!!!는 조금 위험한 발언인가 ㄷㄷ) 물론 위에 이야기한 여섯곡을 제외하고도 앨범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독특하지만 디테일하게 표현된 가사가 돋보이는 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결론은 이 앨범, 앞서 말했듯 '곡이 좋은 노래'를 좋아하는 청자들에겐 그저그런 앨범이다. 앨범을, 노래를 천천히 곱씹는 사람에게는 꽤 괜찮은 앨범이 될 것이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개인적으로도 가사냐 곡이냐를 본다면 가사보다는 곡이 먼저니까. 그렇지만 역시 모든 앨범도 그 앨범만의 감상포인트들이 있는 법. 요 앨범은 가사펴놓고 혹은, 번역된 가사를 보면서 구절을 곱씹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편이 조금 더 좋은 감상법이라는 것이다. BGM으로 쓰기에 적당한 곡들은 아니어서 얼마나 플레이 하고 싶어질지는 미지수. 그치만 가끔 아주 조용히 감상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것과는 별개로 이 앨범은 상당히 좋은 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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