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2학기에 영어 발표라는 필수 교양과목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토론도 진행해야하고, 조별발표도 해야하고 개인발표도 해야하는, 영어라고는 듣기랑 독해, 문법밖에 모르던 이공계생에게는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수업이었다. 그 때 개인발표의 주제는 더치페이였다. 우리나라에서 더치페이를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논조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늬들은 애인없지? 난 있음 ㅇㅇ.으로 시작하는 발표였는데.. 첫째는 그대들(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쁜 여자이고, 그래서 화장과 겉모습에 치장을 하는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대학교 때, 메트로섹슈얼이 제법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점차 꾸미는 남자들이 늘어났지만.. 그건 몇 년 지난 뒤 이야기.) 다시 생각해봐도 개소리였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유교사회라는 전통 때문에 남녀간 임금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유리천장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두 가지 이유를 종합해볼 때 정체불명, 창의적인 개소리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대학교 3학년때였던 것 같은데.. 남성인권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왜 집은 남자가 사야하는가, 왜 남성의존적인 여성들이 많은가, 왜 남자만 병역의무를 져야하는가, 대충 이런 의문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한참 180cm 이하는 루저, 쿠폰쓰고 할부로 돈 내는 찌질이와 된장녀 논란이 나오던 시기였다. 돈 없고 군대가야하는 어린 남성의 전형적인 열등감과 투정...이다. 그래서 여성 스스로가 사회적, 법적으로 받는 특혜를 걷어차버리고 평등한 의무와 평등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여겼다. 같은 돈을 받고 같은 지위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관대한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까지는 생각했던 것 같다. 습자지같은 지식으로 떠들던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듯 현실 반영보다는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놨던 것 같다. 뭐.. 여성을 기피하는 기업문화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없었으니까.

 가끔 술먹고 이 이야기가 나오면(술 먹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니... 되게 학구적이고 건전한 집단 같지만 그냥 다 내 열등감과 투정때문..) 오히려 여성인권이고 뭐고 난 됐다며 집해오는 남자를 만날거라는 여사친이 있었다. 열등감에 울컥했었지..

 

 misoginy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힙합을 비롯한 음악과 아이돌문화가 조장하는 여성혐오적 태도와 그 비판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많이 찾아보기도 했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다. 여성 뿐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존중은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지만,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부정적 인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꽤 많아졌다. 여전히 "이런 것 까지 신경써야하나" 싶은 것들도 있지만.. 나는 페미니스트 코스프레하는 한남충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와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이미 너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다. 마치 내가 '애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소름끼치는 그 느낌과 좀 비슷한 것 같은데.. 일베-애국, 메갈-페미, 이런 관계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뭐.. 메갈이 일베랑은 태생적인 차이가 있더라고 하더라도 그런건 차치하고 난 인정이 안돼... 여하간 갈 길이 멀다. 사방이 온통 문제라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의 결론은 늘 박정희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너무 급격하게 변화했어....라는 결론없는 똥글을 오늘도 싸지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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