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님이 7집 [Same Girl]을 발매하고 LG아트센터에서 했던 공연이 재작년 봄이었으니까.. 그녀의 공연을 보는 것이 얼추 3년 만이다. 내가 갔던 공연은 21일 공연이었고, 공연의 레파토리는 6집 [Voyage], 7집 [Same Girl] 8집 [Lento]의 트릴로지로 구성되었다. 콰르텟 구성이었는데, 기타는 늘 그렇듯 울프 바케니우스, 베이스는 랄스 다니엘손 대신 시몽 따이유, 그리고 이번 앨범부터 참여도가 늘었던 뱅상 뻬라니가 아코디언을 맡았다. 장소는 국립극장이었는데, 국립 극장을 처음 가봐서 그런지 거기 졸 멋있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 규모도 그렇지만, 오래되서 그런지 뭔가 클래식한 멋이 있더라. 나 좀 촌티났을듯.



벵상 뻬라니. 키도 엄청 크다. 190은 가뿐히 넘을듯.



 공연 중간에 그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이 네 살때 이 국립극장에 처음 와봤다며, 그 땐 이 곳을 오르는 그 길이 에베레스트 같았다고 ㅋㅋ 그리고 40년 후에 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다며 가슴 벅차 하시더라. 파리의 샤틀레 극장 같은 역사 깊고 멋진 곳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녀였는데, 국립 극장은 그녀에게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오랜 시간을 타지에서 보내셔서 그런지 나라에 대한 애착도 크신 것 같고.. 앨범이나 공연 레파토리에 아리랑 시리즈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ㅎㅎ 무튼,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나이를 밝히는 강수를 두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시고는, 곧 펑펑 우셨다. 정말로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나윤선님의 공연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와 함께 다니는 멤버들의 연주 실력이 대단하는 점이다. 오스카 피터슨의 마지막 기타리스트라는 울프 바케니우스야 말할 것도 없지만, 딱 들어도 장르의 폭이 넓을 것 같은 아코디언 주자 뱅상 뻬라니의 연주도 훌륭하고, 기존 베이스 주자 랄스 다니엘손은 두번이나 못봤지만(지난번엔 오기로 되어있다가 일본 방사능 터지면서 취소;;) 시몽 따이유의 연주도 좋았다. 물론 이런 능력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투어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노래실력 덕분이겠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훌륭한 연주를 가까이서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어느 곡이었는지는 까먹었지만 곡의 시작부분에서 울프와 벵상 뻬라니가 주고 받던 인터플레이는 매우 화려하고 재밌었다.



울프 바케니우스. 불고기와 김치를 사랑하는 한국 음식 전도사 아자씨.


 사실 지난번 공연과 비교해서 목상태가 아주 좋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는데,(중간에 자꾸 우시는 것도 그렇고... 목 잠겨요...ㅜㅜ) 그래도 워낙 많은 공연을 해오신 분 답게 굉장히 노련하게 노래하시더라. 뭐랄까.. '공기반 소리반' 이거 나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나윤선님은 그 공기조절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때로는 70%를 써서 과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론 20%만 섞어서 단호하고 강경하게(?) 부르기도 하신다. 거기에 더하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까지..ㅎㅎ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노래 위에 있다고 해야하나.. 동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공연은 내가 8집에서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의 하나인 'Hurt'를 울프와의 듀오로 시작했다. 으아.. 지난 공연에서 첫 곡은 준비없이 받아들이다가 정신 못차렸는데, 이번엔 첫곡듣는데 눈물 날 것 같았다. 왠지 나는 악기가 많은 것보다 적을 때의 공연이 더 좋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울프와의 듀오 공연때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곡 Uncertain Weather부터 콰르텟 구성으로 노래했고, 이어서 앨범보다 공연에서 더 좋을 것 같았던 Lament, 명불허전의 스캣곡 Momento Magico로 이어졌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탐 웨이츠의 노래 'Jockey Full Of Bourbon'이었다. 워낙 좋아했던 노래기도 하지만, 울프가 재치있게 '밀양 아리랑'으로 시작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이어진 'La Chanson D'Helene'도 눈물나게 좋았고.. 이 노래 할 때 뱅상 뻬라니가 남자부분 나레이션을 맡았는데, 헐.. 저렇게 좋은 목소리에 프랑스어 발음은 좀 사기인듯 ㅋㅋㅋㅋㅋ 좀 오글거리긴 했지만 멋있긴 하더라 ㅎㅎ


시몽 따이유.


 그리고 공연 후반부에 '정선 아리랑'을 불렀는데, 우리의 음악을 세계화하는건 이렇게 해야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멜로디를 따와서 그냥 다른 노래로 만들어버린 것도 아니고, 단순히 오리지널리티만 강조한 것도 아니고, 아리랑의 구성진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재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사실 뭐, 메탈을 불러도 나윤선화, 컨트리를 불러도 나윤선화, 트로트를 불러도 나윤선화 하니까... 는 너무 좀 빠돌이 같다. 아무튼 아우라가 있어 아우라가. 마지막 곡이었던 'Ghost Rider In The Sky'를 할 땐, 저렇게 목을 긁으면서 노래하는데 목이 어떻게 멀쩡하지 싶더라. 그런데 대단한건 그렇게 목을 긁으며 노래하다가 어느 순간 또 누구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거.... 아주 그냥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앵콜곡은 한 곡이었는데 'A Sailor's Life'(맞나?)로 영국 민요라더라. 이펙터를 사용해서 몽환적으로 불렀고 굉장히 좋았는데, 내심 기대했던 곡들이 안나와서 아쉽긴 하더라. 노래는 총 12곡 + 앵콜곡 1곡이었고, 공연이 끝나니까 대충 1시간 50분 정도 지나있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한시간 정도 공연한 기분??? 게다가 끝나고 헤아려보니 13곡인거 알았지 10곡도 안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짧다고 느껴졌고, 지난번에 못들었던 노래들도 많이 불러서 좋기도 했지만, 그냥 내가 원하는 곡들이 많이 안나와서 아쉽기도 했다. 지난번 공연 때 칼림바 하나 들고 노래 부를때 진짜 정말 엄청 좋았는데 ㅜㅜ 공연이 별로여서 아쉬운게 아니라 그녀의 노래들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아쉬웠던?? 뭐래냐.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다음 공연은 2014년 1월 19일 제임스 블레이크 내한공연.


 

이 날 공연의 사진은 아니지만. 나윤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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