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가야한다. 고대하던 공연이니까.
 전날 에반에센스/부쉬의 내한공연에 초대로 가서 열심히 뛰어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 반. 아침 열한시부터 강의를 네시간 반 빡빡하게 하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몸이 성할리가 없었다. 엄청 피곤한 상태였고, 어제 지나치게 흔들었던 탓인지 목이 너무 아팠다. 서울로 가는 차안에서, '이거 가야돼나?' 싶을 정도였다. 버스가 지겨웠다. 그리고 이 날 엄청 추웠다. 그래도! 예전부터 고대하던 공연이 아니던가. 막상 가면 생각이 달라지리라 믿고 힘겨운 몸을 이끌고 홍대에 있는 까페 Common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훨씬 좁은 무대. 그래도 가까워서 좋았다.


한희정님이다! 읭??
 따땃한 레몬차를 받아들고 주변을 살폈다. 공연이 제대로 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크기. 하지만 그만큼, 뮤지션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나중에 공연을 다 보고 느낀거지만, 작은 공연장치고 음향도 생각보단 훨씬 좋았다. 물론 소리 하나하나를 조금 더 잘 잡아주었으면 하는 맘도 있고,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 몇가지 수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공연을 느끼기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바로 옆에 오늘의 게스트 한희정님이 있었다. 실제로 한희정님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얼굴이 참 작고 귀엽게 생기셨더라. 사진으로만, 또 노래로만 듣던 그 분이 내 바로 옆에 있는걸 보니, 실례되는걸 알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더라. 나 누구 보러 온거냐......


아.... 이건 진짜야.. 라이브로 보는게 더 진짜야...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잠비나이가 등장해서 악기 셋팅을 하는데, 박수를 쳐야하나 말아야 하나, 시작하는건가 어쩐건가 싶은 분위기에서 첫 곡 나무의 대화2가 시작되었다. 기타와 거문고, 해금, 실로폰 등이 번갈아 노래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세명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는 한계는 루프스테이션과 노트북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만으로 이렇게 훌륭한 라이브 연주가 가능하구나. 사뭇 놀라웠다.

 

 



 첫 곡이 끝났는데, 민망하게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아, 타이밍을 놓쳤다. 글쎄, 본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깊이 빠졌고, 또 압도 되었다. 두 번째 곡이었던 소멸의 시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 아니 공연 내내 비슷했다. 강렬함에 압도되고 몰입되어서, 새로운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 때문에 끝난뒤의 정적을 쉬이 먼저 깨는 사람이 없었다. 연주가 끝난뒤의 침묵과 정적 마저도 그들 공연의 일부 인 듯 느껴졌다. 그래서 누구도 선뜻 정적과 침묵을 깨지 못했으리라. 멘트를 담당했던 이일우님의 '감사합니다' 혹은 'XX였습니다.'라고 제목을 말하는 것이 현실 감각을 깨워주는 토템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실 멘트담당 이일우님의 어설픈 진행도 사실 한 몫했다. '나름' 꽤 귀여우셨다.)

정말 열정적으로 연주하셨다. 가장 오른쪽 심은용님은 공연내내 연주하는 모습을 못봤다; 바닥에 앉으셔서;



 두번째 곡부터는 객원 드러머와 객원 베이스주자까지 다섯명이 공연을 진행했다. 앨범의 수록곡 소멸의 시간, Grace Kelly가 연달아 연주되었다. 심은용님이 연주하는 둥둥거리는 거문고소리가 긴장감을 안겨주고, 김보미님의 해금소리가 가슴을 후벼판다. Grace Kelly의 EBS영상은 긴장을 좀 하신듯 아쉬웠는데, 현장에서 본 느낌은 정말 좋았다. 네번째 곡 구원의 손길까지 연달아 아주 헤비한 무대가 이어졌다. 특히 세 곡 모두 원곡보다는 길게 편곡된 느낌이었는데, 구원의 손길은 특히나 더욱 길게 편곡되었다.(원래의 런닝타임은 3분 이내다.) 이일우님이 태평소와 피리와 기타와 보컬을 오가면서 격렬하게 연주하는데, 아이 이 아저씨 진짜 예술가네?? 멋지다 정말.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메탈, 프로그레시브록, 포스트록, 프리재즈, 재즈록 그리고 국악. 이 모든 단어가 잠비나이를 표현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표현해내는 단어는 없다. 아이 씨X 소리가 절로 난다.


게스트 한희정님의 휴식시간.
 이어서 한희정님이 등장했다. 잠비나이와 만나게 된 계기가 두리반 공연에서 우연히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반했다고 했는데, 그들의 노래 '나부락'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뻔 했다...고.... 응?? 아니 대체 어디서 눈물이 나면 되는거지?ㅋㅋㅋㅋ 싶었는데, 잠비나이 분들도 나랑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눈물은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일까봐 꾹 참았다고 한다. "아, 잠비나이랑 진짜 안 어울린다.."라고 약간 멋쩍은듯 말씀하시고 우리 처음 만난을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안 어울리지만, 게스트로서 참여한 Break Time정도로 생각하면 더 없이 좋을 듯 했다. 잠비나이 공연이 워낙 어깨에 힘들어가는 공연이라, 한희정씨가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로 살살 어루만져주는 기분. 달달하고 부드럽다. 아... 좋다.... 도착해서 마신 따뜻한 레몬티 같았다. 이일우씨의 즉석 요청으로 선곡이 바뀌었다는 멜로디로 남까지 두 곡을 부르고 퇴장하셨다. 

실내사진 쥐약이다. 아이폰 4는. 카메라를 가져갈껄 그랬나. 한희정님.


진짜 짱임. 다음엔 큰 공연장에서 오백명 모아서 합시다!
 2부에서는 세 곡이 이어졌다. 드럼, 베이스와 함께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은 기대한 만큼의 극적인 느낌을 안겨줬고, 홍대 여신을 울릴뻔했던 나부락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을 수도 없이 많이 봤는데, 실제로 봐도 정말 대단하다. 김보미, 심은용님은 여자분이고, 유일한 청일점 이일우님의 모습은 그렇게 허술해 보이는데,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는것이 놀랍다. 마지막곡은 Connection. 노래 초반 루프스테이션으로 겹겹이 쌓아가는 피리소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마치 노래작업 하는거 구경하는 기분 + 안개 자욱한 몽환적인 기분. 반전,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 아름답다. 대단하다. 앵콜 외치고 싶은데 왠지 그런분위기가 아니다. 혹시 준비하신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EBS 공감을 비롯해 몇몇 공연이 더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같은 곡으로 보여주는 공연은 쉽게 잘 찾지 않는 편인데, 더 새롭게 편곡하며 노력하겠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씨디를 구매하고 싸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집에서 1집 씨디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꼭, '앨범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싶었는데..(결국 트윗으로 멘션 날렸다.) 처음에 50명 모아서 공연하자라는 말을 듣고, '과연 채울수 있을까?'라고 하셨다는데, 앞으로 백명, 이백명 쭉쭉 늘어나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누구 이 분들 해외진출 시켜주실 분 없습니까?????

싸인 받으시는 이일우님. 아, 나도 받을껄.





 Set List
1부
나무의 대화2
소멸의 시간
Grace Kelly
구원의 손길

Guest 한희정
우리 처음 만난 날
멜로디로 남아

2부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빛
나부락
Connection
2011 헬로루키 심사위원 특별상, 잠비나이.
 EBS 스페이스 공감이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란거 알고 있고, 가끔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접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언제 하는지도 모르고 본적도 없다. TV를 잘 안봄.. 그래서 헬로루키에서 걸출한 신인들이 많이 나왔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챙겨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칵스, 국카스텐, 프렌지, 아폴로 등을 알게 된것은 이들이 상 받고 뜨고난 뒤다. 오늘 이야기할 잠비나이라는 뮤지션도 헬로루키 출신인데, 상당히 뒤늦게 알게 된 뮤지션이다. 거기선 제법 또 유명했었나 보다. 나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보고 알았는데, 이것도 나온 당시가 아니라 나오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보게 되었다. 사실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잠비나이 EP [잠비나이]앨범 커버


이 만큼 멋진 예술작품은 흔치 않다.
 근데, 이거 딱 듣는순간 이건 진짜다...라고 느꼈다. 아니 왜?? 왜 이런 뮤지션이 이렇게 안 유명할까?? 아님 나만 몰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듣는 내내 입이 딱 벌어져 몰입했다. 8분이라는 긴 런닝타임이지만 4분부터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아,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싶을정도였다. 확실히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음악은 아니다. EP를 들어봐도 딱히 돈벌 생각이 없는 음반 맞다. 세 곡. 그리고 곡당 평균 10분이 넘어가는 런닝타임. 한예종 국악 전공 동기들끼리 만든 그룹이라 국악기(거문고, 해금, 피리, 태평소)가 기본이 되긴 하지만 이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악기(기타, 실로폰, 심지어 트라이앵글도..)들도 실험적으로 연주하고 배치한다.(실제로 거문고를 활처럼 켜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퓨전 국악들이 없던 것도 아니고, 정민아씨 처럼 비교적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정민아씨의 경우는 가야금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크로스오버의 느낌이 강하긴 하다.) 그런데 잠비나이의 경우는 정말 제대로다. 국악과 앰비언트, 포스트 록, 재즈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느낌만을 살려내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국악기만 사용한 퓨전이 아니다. 내가 아이슬란드 전통음악을 듣고 놀라듯, 월드뮤직을 좋아하는 세계 곳곳의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우리 음악이다. 

 잠비나이의 음악에는 '주'가 되는 악기가 없다. 물론, 기타, 해금, 거문고가 기본이긴 하지만 어느 하나 전면으로 내세우는 악기가 없다. 긴 런닝타임동안, 기타가 주가 되기도 하고 거문고가 주가 되기도 하고, 해금이 주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트라이앵글 소리에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실로폰에 집중하기도 한다. 어느 악기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손끝에서 손끝으로의 단순함에서 오는 긴장감과 국악의 감성. 나무의 대화2에서 오는 담담하고 소소한 매력. 함부로 소리를 내면 안될 것 같은, 식물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듯,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것 같은 매력. 나부락에서 거칠게 몰아쳐오는 기타와 거문고, 그리고 구슬픈 음색의 해금, 그리고 강렬한 마무리. 이건 거의 헤비메탈이다. 아주 부조화스러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주고 받으면서 어느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구나 좋아할만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은 아니지만, 하나의 엄청난 예술작품을 본 기분이다. 이런 강렬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다. 국악 전공자들 답게 우리 것의 느낌이 담겨 있어 더 좋았다.(근데 이거 나온지 오래됐는데 나 혼자 뒤늦게 호들갑 떠는 것 같아 좀 민망하긴 하다.....)



1집 '차연'발매 기념 콘서트!
 1월 26일, 이 들의 정규 1집 앨범 '차연'이 발매 된다. 그리고 발매 기념 공연이 2월 18일 홍대에 있는 Cafe Common에서 진행된다. 현매는 없고 선착순 예매만 50명 받는다. 아마도 멋진 앨범이 될 것이고 멋진 공연이 될 것이다. 이 확신은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기보다 다음의 네이버 온 스테이지 영상 두개로 대신하려고 한다. 엄청난 것에 대한 감동을 네이버 온스테이지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하길 바란다. 예매는 이 곳에서.


잠비나이 - 나부락


잠비나이 - 나무의 대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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