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2013)

Gravity 
8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에드 해리스, 오르토 이그나티우센, 폴 샤마
정보
SF, 드라마 | 미국 | 90 분 | 2013-10-17






 최근들어 급격하게 관심이 생기긴 했지만, 나름 우주 덕후라면 우주 덕후다. 볼 수는 있어도 갈 수는 없는, 지구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수많은 물리 법칙을 가볍게 깨트리는 미지의 세계,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수학 공부 하면서 2차원(평면)에서 성립하는 법칙들을 구면이나 쌍곡면에 대입시켜서 만든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의의를 알고 나서(사실 배울 때는 이 ㅄ같은걸 왜 하는거지 싶었다.) 엄청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우주속에는 휘어있는 3차원 공간이 있다는 말을 듣고부터 우주덕후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아니 뭐 이건 상상조차 안되잖아. 휘어있는 3차원 공간, 그로 인해 시간의 흐름도 달라지고.. 새로운 수학과목을 배울 때 기분이 들었다. 공부하면서 그래도 꽤 신났었는데..


 개인적인 덕후얘기는 이 쯤에서 접어두고, 그런 우주를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은 살아 생전에는 없을 것 같고, 생각보다 더 빠른 시기에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어릴 적 대전 엑스포에 부모님이랑 가서 움직이는 의자와 영상을 체험하던 때가 생각났다. 놀이동산 롤러코스터 타는 느낌에 마냥 신났었는데 ㅋㅋㅋ 그 어린 시절의 신세계가 스토리를 갖고 예술로 승화한 것 같았다. 영화속의 산드라 블록처럼 처음엔 좀 메스꺼웠지만 지구 뒤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경이적.. 아니 경외에 더 가까운 느낌.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는 우주가 가지고 있는 그 양면성을 너무나 잘 표현한 듯 보였다. 우주에서 바라보는 대륙의 야경을 바라보며 함께 감탄하다가도, 우주 정거장에서 튕겨나와 혼자가 된 산드라 블록을 보면서 얼마나 함께 두려워 했던가.. 광활한 우주에 있는데도, 마치 영화<베리드>에서처럼 몸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작은 관에 갖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공기도, 중력도 없는 그 곳의 고요한 정적(실제로 공기가 없으니 소리도 전달되지 않는다.)은 아름다운 배경을 더욱 아름답게도 만들었고, 외로운 주인공을 더 외롭게도 만들었다. 이런 커다란 스케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정적인 사운드만을 고집한다. 그런데 왠지 더 두근거려.. 더 설레고, 더 떨리고, 더 두렵다.


 스케일 답지 않게 가감없이 3자의 입장으로 보여준 영상이나 사운드만큼, 영화 속 주인공의 사연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더 인상깊었다. 살다보면 더 궁금하고 자세히 알고 싶지만 자세히 물어볼 수 없는 그런 것들 있지 않는가? 영화가 해주는 얘기가 딱 그런 것 같았다.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서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 아픔이나 슬픔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닌강'의 자장가를 듣는 순간, 그리고 지구에 도착해서 아직 적응되지 않은 다리를 억지로 딛고 일어서던 순간, 고요하지만 진한 울림이 느껴졌다. (오늘 이상하게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 아닌강의 자장가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라고 자꾸 생각나는겨....ㅋㅋㅋ)


 영화속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끈'인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 겨우 다리에 걸쳐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끈 뿐만 아니라, 희미한 전파로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진 조지 클루니 와의 통신, 지구의 말도 통하지 않는 한 사내와의 대화 아닌 대화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의 그녀를 몇 번이나 구원해주었고, 때로는 원치 않게 그 끈을 놓아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그녀가 끊어질듯 희미하게 이어져오던 인연의 끈으로 다시 삶의 의지를 갖게 되었다. 곱씹어 볼 수록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은은한 메타포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차분하게 다시 한 번 2D로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 나는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보았다. '체험'하라 길래, 이왕 체험하는 거라면 제대로 체험해야 하잖아?ㅎㅎ 개인적으로 4D는 내 스타일이 아니고, 비싼 돈 주고 본 값을 충분히 아니, 차고 넘칠정도로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미지의 세계라고 떠들어대는 영화속 공간이 그저 지구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벼룩의 똥보다도 작은 크기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나니 다시 한번 인간은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우주덕후의 반성으로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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