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Pohang Har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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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모현신
출연
-
정보
| 한국 | 93 분 | -


 연휴를 대체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연휴의 끝은 항상 허무해. 그래서 내가 연휴를 별로 안좋아한다. 그냥 수요일쯤 하루 쉬는 편이 훨씬 휴일같아. 아이들 시험기간이 끝나갈 때쯤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고, 5월 3일 토요일에 예정에 없는 전주방문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침 8시부터 과외를 하고 나서... 차도 어마어마하게 막히더라. 잠을 네시간도 채 못잔 상태에서 세시간가량 운전을 하고 나서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야 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보다가 졸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보고 나올 수 있었다. 보는 내내 좀 답답하긴 했지만. 무슨 영화가 올림픽대로 같아... 꽉꽉 막혀서 졸 답답 ㅋㅋㅋㅋㅋ





 영화는 아비가 바다에 빠져 죽은 뒤, 보름에서 한달정도 지난후의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연수는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그의 아비가 일을 했던 바닷가로 내려와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실종된 아버지를 하릴없이, 그리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한없이 그리워만 하다가, 그의 흔적을 찾아서 조금씩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진행된다.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과거에 대한 회상씬 이런건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대사 자체가 거의 없다. 힘든 과거가 있다는건 알겠는데,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 수 있을만한 단서 하나 놓여있지 않다. 그저 포항 구룡포읍을 배경으로, 한 사내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던 일을 뚝 떼어다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일주일도 채 되어보이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딱히 두드러지는 감정의 변화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앵글은 최대한 멀리서 잡고, 영화의 시선은 대부분 무표정으로 고정되어있다. 연민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늘 커다란 배와 함께 일하지만,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굉장히 낯설고 외롭고 고독한 느낌만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느꼈다. 안 좋은 일을 겪은 친구를 대할 때 처럼, 후벼파거나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초중반부 화면은 모두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내는 짚으로 엮은 아버지를, 실종된 위치에서 흘려보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던 사내가 크진 않지만 액션을 취했다. 작은 행동의 변화였지만, 그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을, 결코 작지 않은 그리움이 보였다. 짚으로 엮은 아버지를 떠내려 보낸 뒤, 바다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을 영화에서 처음으로 클로즈업샷으로 촬영하였다. 1분 남짓 이어진, 화면 가득 얼굴로 가득찬 그 클로즈업샷에서 가슴 아픈 뭉클함과 연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최근에 겪은 국가적인 재난과 더불어 나의 할아버지도 생각나고..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사내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짚 더미는 발견되었지만, 그 자리에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의 시신대신 짚더미를 태운다. 던지지 않은 작은 짚더미를 끌어 안는다. 시간이 흘렀지만,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지내왔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실감일 것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난 뒤, 영화 GV시간에 들은 영화에 관한 재밌는 사실 몇 가지.

1. 형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항시청 공무원들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어설프지만 그런대로 꽤 괜찮았다. 인상적인 배우분이 두 분 계셨는데, 영화에서 가장 대사가 많았던 사장님, 배우가 아닌데도 말도 또렷하게 들리고 취중연기까지 ㅋㅋㅋ 그리고 매우 어설펐던 서울에서 내려온 사장님 ㅋㅋㅋㅋㅋ

2. 사내가 바다에 짚더미를 두개 가져갔는데, 큰 짚더미는 바다에 보냈고, 작은 짚더미는 차마 보내지 못했다. 자아를 뜻하는 건가?하고 긴가민가 했는데, 알고보니 사내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삼촌과 통화하면서 들었는데, 아들 촬영분은 편집과정에서 사라졌단다. 덕분에 그 작은 짚더미가 아들이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3. 영화 내내 대사도 거의 없고, 표정변화도 거의 없어서 감독님한테 "제발 말 좀 하게 해주세요"라고 사정했다고 ㅋㅋ 연기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답답한 모든 과정은 그 1분의 클로즈업샷을 위해 존재한 것 같았다. 관객들도 답답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1분이 더 감명깊었다.

4. 포항에서 오신 분께서 마지막 질문을 하는데, 거의 봉테일 수준의 디테일을 요구하셔서 빵터졌ㅋㅋㅋㅋㅋㅋ 구룡포읍은 같은 포항사투리라도 촌티가 나야되는데, 사투리가 대부분 좀 세련된 시내사투리라고 아쉬우셨다고 ㅋㅋㅋㅋㅋㅋ






 영화를 한 두편 더 보고 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예정에 없이 간거라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밥 한끼 먹고 올라가려다가 한참을 기다려 피순대와 순댓국 한그릇하고, 한옥마을 한바퀴 걷고 올라왔다. 사실 그 날 전주는 헬게이트 열린 듯. 전동성당에 사진을 찍은 수 많은 인파는 꼭 외국 유명 건축물 앞 같았고, 인사동 느낌나게 꾸며놓은 한옥마을은 명동수준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모든 길거리 음식집에 줄이 3-40명씩 늘어져있었고, 풍년제과 쵸코파이는 모든 지점에 줄이..ㄷㄷ 누군가 전주를 이렇게 표현하더라. '서울 사람이 와서 장사하고, 타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으며, 그 모습을 전주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곳'이라고 ㅋㅋ 왠지 공감돼서 빵터졌다. 그리고 앞으로 전주는 잘 안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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