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덕들에게 2012년은 잊지 못 할 해였을 것이다. 훌륭한 음반이 많이 쏟아졌고, 그 음반 중 많은 부분이 신인으로부터 나왔다. 프랭크 오션, 켄드릭 라마, 제시 웨어, 그리고 엘 바너까지.. 특별히 눈여겨볼 데뷔 앨범이 없었던 작년과 올해 초를 생각해보면, 올 여름부터 현재까지 제법 괜찮은 데뷔 앨범들이 발매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ep나 믹스테잎으로 꽤 이름을 알렸던 뮤지션이긴 하지만, 멋진 ep와 믹스테잎을 발매하는 것과 멋진 풀-렝쓰 앨범을 발매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니까.. 오늘 이야기할 뮤지션들은 후일 분명 멋진 데뷔작을 발매한 뮤지션들로 기억될 것이다.

 




앨범 커버부터 독특함.



FKA Twigs - <LP1>

 프랭크 오션, 켄드릭 라마와 나란히 놔도 이상하지 않을 어마어마한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다. 제시 제이와 카일리 미노그 등의 백업 댄서였던 그녀는 2012년부터 노래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두 장의 EP를 통해 이미 흑인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촉망받는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데뷔앨범은 EP들을 쌈싸먹을 퀄리티의 '약 빨고 만든' 음반이다. 메이저 씬의 백댄서가 뮤지션으로 화려하게 돌아오다니.. 그것도 전혀 관계가 없는 스타일로 ㅋㅋㅋㅋ 굉장히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듀스는 춤추기라도 좋은 음악으로 나왔지 ㅋㅋㅋ

 

 앨범의 장르는 PBR&B정도로 해두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장르의 많은 음악들이 그러하듯, 후렴구와 멜로디는 가볍게 거세해버렸다. 오히려 불협화음들이 혼돈의 카오스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 영국 출신 아니랄까봐 R&B에 가깝긴 하지만 그 안에 포티셰드 류의 트립합의 기운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블레이크, 제이미 운 같은 아티스트도 생각나고, 보컬이나 이미지에서는 피오나 애플이나 케이트 부쉬도 떠오른다. 온통 UK 아티스트.. 그것도 몽환적이거나 어둡고 음습하기 짝이 없는 뮤지션들만 죄다 모아놨다. 이런류의 아티스트들이 주로 그러하듯, 희뿌연 안개 사이로 흐릿했다가, 시야가 조금씩 확보되면서 받는 강렬한 충격 같은게 있다. 그리고 FKA Twigs는 날 서 있지만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애처롭다. 얼굴은 소녀처럼 생겨서, 하는 음악은 음울하면서도 치명적으로 섹시하다. 보듬어 주지 않을 수 없다.


 "Two Weeks"만 봐도 그 치명적인 섹시함을 느낄 수 있다. 듣고 있으면 강인한듯 여리기 짝이 없는, 그치만 독기 가득 품은 섹시한 여자가 생각난다. 치명적이고 아슬아슬한 여자. 독 인것 뻔히 알면서도 마실 수 밖에 없는 일요일 개콘 같은 가시내.... "Numbers"의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것 같은 신음소리는 섬짓하면서도 애처롭기 그지 없다. "Pendulum"의 주문과 같은 후렴구도 마찬가지다. 높은 음은 쓰지도 않는 신디사이저, 멍하게 두드리는 것 같은 808드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멜로디, 음산하게 속삭이는 보컬까지 완전 혼연일체... 그러고 보면 그냥 PBR&B라기 보다는 익스페리멘탈 음악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오래 듣기는 쉽지 않지만, 확실히 어떤 특별한 경험, 아니, 체험을 할 수 있는 음악이다. 

 








 

Luke James - <Luke James>

 루크 제임스의 데뷔 앨범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빠졌다'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이미 'I Want You'로 그래미 알앤비 Song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결과는 낙방이었지만(당시 1위가 어셔의 Climax... 이건 웬만한 음악 들이대도 어쩔 수 없지..) 앨범 한 장 나오지 않은 신인에게는 그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굉장한 기회였다. 이후에 발매된 싱글들이 차트진입에는 실패했지만, 데뷔 앨범 만큼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완성도 있는 앨범으로 발매가 되었다.

 

 앨범을 그저 '잘 빠졌다.'라는 말로 수식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완성도가 말끔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특별하게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없다는 점에 있다. 앨범의 장르는 그냥 컨템프러리 알앤비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조금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전혀 트랜디 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레트로 소울이나 이런것도 아님.. 노래마다 다르지만, 90년대 알앤비와 네오소울, 그리고 팝적인 멜로디와 댄스 플로어에 어울릴만한 약간의 일렉트로 사운드가 앨범의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보컬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시원스럽고, 때로는 섹시한 가성을 강점으로, 화려하지 않아도 탄탄한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개성적'이라고 불릴만한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내가 이 앨범을 굉장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1집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앨범의 통일성은 확실히 확보한데다가,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는 그 보컬도 노래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컬이 굉장히 클래식함. 게다가 릭-로스를 제외하면 피쳐링도 없고 앨범 전체가 오로지 그의 목소리로만 채워져 있다. 변종, 별종들만 좋다고 나대다보니 상대적으로 이런 잘 만들어진 앨범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변종들만 듣다가 우울증 걸리겠음 ㅋㅋㅋ 시원스런 가성이 돋보이는 빌보드 노미네이트 곡 "I Want You", 얼마전에 포스팅했던 팝적인 멜로디를 가진 알앤비 발라드 "Exit Wounds", 몽환적인 댄스플로어 음악 댄싱인더 닭고기("Dancing in the Dark"ㅋㅋㅋㅋㅋㅋ는 진짜 저렇게 들림.),  릭 로스가 피쳐링한 어둠의 닭크 "Options", 네오 소울 스타일의 촉촉한 가성이 가장 도드라지는 "Glass House"까지, 대부분의 음악이 고르게 무난하면서도 좋다. 닭, 닭 하니까 치킨이 먹고 싶다. 루크 제임스가 혹시라도 내한한다면 치킨매니아에서 새우치킨을 대접해야지. 프린스의 음반이 나오기전까지 최근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이다. 최근 알앤비 씬에서 본다면 프랭크 오션이후로 가장 독보적인 남자 신인.





이 앨범 자켓만 크게 둔건 특별히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이뻐서..



Tinashe - <Aquarius>

 리아나와 리타 오라를 잇는 신인 뮤지션이란다. 흑인 음악, 이쁘장한 얼굴과 좋은 스타일, 그리고 대형기획사..정도가 이들을 묶을 수 있는 공통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물론 리타 오라는 그냥 팝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들어본 앨범이 없다. 리아나도 어느 노래가 몇집의 노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애정이 없다. 네이버 뮤직 앨범 정보에 리아나와 리타오라 얘기가 나오길래, 별거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클릭했다가 의외의 음악에 깜짝 놀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보고 아리아나 그란데처럼 디바형 보컬을 예상했다. 나이도 어리지는 않을 줄 알았고.. 근데 디바형은 개뿔ㅋㅋㅋ 처음부터 끝까지 속삭임 ㅋㅋㅋㅋ 게다가 93년생에 얼굴도 귀엽네???? 찾아보니 망한 걸그룹의 멤버였다더라 ㅋㅋㅋ 개인적으로 리아나와 리타 오라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맘에 안들정도로 티나쉬를 맘에 들어하고 있다. ㅋㅋㅋㅋㅋ 사실 티나쉬의 비교대상은 이들이 아니고 시애라가 아닐까 싶긴 한데...  알리야도 좀 생각나고.. 


 아이돌처럼 등장한 이 친구는 90년대 알앤비를 모티브로 하는 PBR&B를 내세웠다. 내가 좋아하는 시애라의 "Body Party'" 만들고 최근에 'Future'의 음반에도 참여하며 굉장히 주목받고 있는 프로듀서 'Mike Will Made It'이 참여하였고, 요즘 꽤 각광받는 프로듀서 DJ Mustard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빵빵한 프로듀서진에 에이샙 롸키, 스쿨보이Q, 퓨쳐까지 피쳐링을 참여하며 참여진만으로도 "이건 존나 힙한 음반이야"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 와중에 더욱 놀라운 점은 티나쉬 본인이 작곡에 꽤 많이 참여했다는건데, 맨 앞쪽에 그녀의 이름이 올라간 곡들이 꽤 되는걸 보니 그냥 유명 프로듀서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은 수준이 아닌거 같더라. 그냥 예쁘고 노래만 잘 소화하는 아이콘이 아니라, 그녀자체로 이미 아티스트로써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매력 폭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 들을 때 티나쉬 목소리에 등골이 찌릿찌릿해서 플레이 하다가 몇번을 중지시켰다. 첫 곡 "Aquarius"부터 좋더니, 이어지는 "Bet"과 "Cold Sweat"에서 당황 ㅋㅋㅋㅋㅋㅋ 헐, 얘 뭐지?ㅋㅋㅋ 특히 "Cold Sweat"의 스산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섹시한 보컬에 넉다운. 숨소리와 가성을 참 잘 쓴다. DJ 머스타드가 만들고 스쿨보이 큐가 피쳐링한 "2 On"은 선공개 곡이였는데,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듣다보면 그녀가 존경하는 자넷 잭슨이나 알리야, 아샨티, 브랜디 등, 90년대 알앤비에 대한 동경 비슷한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현대적으로(때론 Futuristic하게) 잘 소화했다. 비슷한 장르의 즈네 아이코, 뒤에 이야기할 뱅크스나 뭐 쫌 더 쓴다면 FKA Twigs와 비교가 가능할 것 같은데, 트랜디한 프로듀서들의 빵빵한 지원이나, 비쥬얼과 음악을 고려했을 때, 가장 팝스타에 가까운건 티나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앨범의 자켓도 크기가 큰 이유는.....


Banks - <Goddess>

 앨범 제목이 여신이라니... 뭐, 여신까진 아니어도 아름답게 생긴건 사실이다. 몇몇 사진은 꽤 매력적임. 여신(?) 뱅크스의 음악도 역시 PBR&B에 가깝다. 이제 2세대 PBR&B뮤지션들이 만개를 하게 된건가...ㅋㅋㅋ 알게 된건 네이버 오늘의 뮤직이었다. 더 위켄드를 흡수한 플로렌스 앤 더 머신, 이라는 표현을 들었는데, 앨범을 듣고 보니 꽤 수긍이 가더라. 앞에서 얘기한거 또 얘기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데, 역시나 알리야, 피오나 애플, 케이트 부쉬같은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서, 좀 더 자조섞인 서늘한 목소리가 더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피오나 애플과 왠지 많이 닮았어. 

 

  그리고 비슷한 음악들을 계속 들으면서 비슷한 글을 쓰는거 같아서 갑자기 더이상의 리뷰는 하기 싫어졌는데 내가 위에서 언급한 뮤지션들에 비해서 뱅크스를 덜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안쓰는건 아니야. 라나 델레이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앨범을 더 맘에 들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음. 음산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갖고 있던 앞의 뮤지션들에 비해 뱅크스는 가사부터 음악까지 쭉- 우울하고 다크하거든... 그래서 직접적인 비교를 피해갈 수 있는, 다른 매력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이 좀 들쭉날쭉한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긴 했지만, 그래도 좀만 듣고 자려다가 앨범 전체를 다 플레이를 하고 잔 걸 보면 분명 매력적인 음반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원래는 즈네 아이코도 쓸 예정이었으나 위에 이야기한 뮤지션들에 비하면 애정도도, 음악적 감흥도 덜했기 때문에 빼기로 했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ㅋㅋㅋㅋㅋ 즈네 아이코 음반도 제법 괜찮게 들었다. 루크 제임스를 제외한다면 비슷한 장르의 음악들을 하고 있는데, 앨범 전체를 플레이하면 그 아티스트 고유의 감성과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각각 모두 매력이 넘친다고. 그리고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레니 크라비츠의 음반이 좋아서 다음엔 그 앨범을 리뷰할 생각이다. 오늘은 급하게 마무리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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