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엠씨 메타의 강연에 이어 이번엔 남궁연씨의 강연을 다녀왔다. 국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고 하더라. 사실 이 날 낮에 좀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다니가다 저녁을 챙겨먹고 멍때리고 있었는데.. 7시 넘어서 생각나는 바람에 진짜 정신없이 챙겨서 뛰어갔다. 출발전에 졸리고 귀찮아서 가지말까도 고민했지만.. 다녀와서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강연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에 가면서 내가 아는 국악에 대해 돌아봤다. 아버지가 민예총 관련해서 뭘 했었던거 같았는데... 아무튼 놀이패 몰개 아저씨들하고 꽤 친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이런저런 공연도 많이 다녔다. 사물놀이 공연부터 대동제까지. 뭐, 이건 다 초딩때 기억. 이후로 아버지가 산조에 관심이 많으셔서 집에서 산조가 흘러나올 때가 많았지만 난 관심이 없었다. 사실 산조가 뭔지도 몰라 아직도. 요즘의 국악이라하면 이자람이나 잠비나이, 고래야, 숨 뭐 이런 타장르와 섞여있던 음악들, 그리고 창동에서 봤던 두 번의 국악 공연이 전부였던 것 같다. 공통점이라면 '전통'보다는 국악과 공연의 현대화에 조금 더 집중했던 음악들이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해금이나 생황과 같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찾아 들었던 음악들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악은 듣지 않는다. 안 들어... 나만 그러는게 아니라 다들 안 들어.. 모든 음악은 기본적으로 특유의 '맛'이 있다. 국악도 그 특유의 '맛'이 있겠지. 그런데 나한테 그렇게 맛있진 않아.. 마치 메탈음악처럼..

 

 이 강연이 내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내가 겪어온 국악에 대한 인상과 경험들을 비추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연에서 제일 처음 꺼낸 단어는 '컴플렉스'였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국악을 비롯한 많은 한국문화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 꽤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김치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김치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다른 옷들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만들어진 한복(한복은 2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옷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을 즐겨입진 않아도 우리 문화로써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의 이면엔 컴플렉스가 깔려있다. 워낙 서양문화가 대중문화로서 음악, 패션을 비롯해 모든 곳에 주류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우리 문화는 소외된, 우리만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라 의무감에 지켜가고 있는 문화니까 자꾸 우리 문화의 좋은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맨날 두 유 노 김치? 두 유 노 갱냄스타일? 두 유 노 유나킴? 이거 다 컴플렉스...

 

"사실 우리 문화는 이만큼 훌륭한 문화야. 너희들이 알지 못할 뿐. 알게 되면 깜짝 놀랄걸?"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정부주도로 국악을 복원시키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는데, 복원의 모토가 전통의 보존에 있었다고 한다. 여러 민요들이 구전되어있었지만 정리되지 못했었고, 체계화시켜서 전통을 정립하고 싶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애초에 음악연주를 위한 '콘서트홀'이 없는 우리 문화에서 음악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실외음악, 그리고 BGM에 가까운 국악의 특성상 악기들이 튜닝도 잘 안 되어 있다고 하더라. 게다가 당시 유행하던 우리 음악은 '산조'였다고 한다. 몰랐는데, 산조는 재즈로 치면 거의 프리재즈에 가까운, 연주자를 위한 음악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생겨난것은 17세기(?)즈음.... 굉장히 최근 음악이었던 것이다. 기록없는 과거는 점점 소멸되고 있었는데, 당시에 많이 연주되던 산조부터 시작해서 전통을 정립하려니 이게 제대로 정립이 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끊임없이 '전통'을 찾아 복원하고 이어가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그게 하필 대중음악도 아니고 연주음악인 산조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중들의 관심은 멀어져갔다. 이쯤되면 포기하고 고칠줄도 알아야 하는데, 몇억들여 김치파이터 애니메이션도 만든 정부라면 충분히.. 뭐.. 컴플렉스가 많으니 문화의 융합도 어렵다.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받아들였다가 우리 것이 사라질까 두려운거지.

 

 그러면서 보사노바의 이야기를 했다. 보사노바의 역사는 100년도 안됐다. 그렇지만 이 음악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쉽게말한다면 브라질의 리듬을 재즈로 표현한 음악이 보사노바다. 브라질의 전통음악에 질린 젊은 층들이 새로움을 갈구하다가 미국의 재즈음악을 듣고 그들 나름대로 재해석해 탄생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이 집구석에서 만들었던 이 음악을 스탄게츠가 미국으로 들고가서 연주하였고, 이 신선함에 세계가 매료되었다. 사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화가 들어오고, 기존의 문화와 새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것.. 하지만 국악은 이 모든것을 차단하고 전통을 고집하고 공연을 만들어왔다.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공연으로. 요즘 누가 국악 공연들을 돈 주고 가서 봐..

나희경 - Um Amor.  우리나라의 보싸노바.

 

 

 요즘엔 확실히 그 흐름이 바뀌고 있다. 잠비나이와 숨 같은 그룹이 그렇다. 잠비나이의 경우, 포스트록을 국악기로 연주했더니 완전히 신선한 음악이 되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악에 대한 이해(잠비나이 멤버는 모두 국악전공)와 포스트 록이나 메탈과 같은 장르음악에 대한 이해(잠비나이 멤버 이일우는 메탈밴드 출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요즘은 눈에 띄는 신선한 흐름이 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국악기에 세계가 반응을 하고 벨라 유니온이랑 계약하고 앨범내는건 잠비나이가 처음이잖아? 국악기로 렛잇비 이런거 연주하는 것만 듣다가 잠비나이 음악듣고 진짜 미쳤다고 했었는데.. 빨리 세계진출해야한다고 ㅋㅋㅋ 남궁연씨가 국악기로 세계진출 타진하다가 수많은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 많은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1. 우리가 좋은 음악을 수출할 것이 아니라, 먼저 들려주고 좋아하는 것을 찾을 것.(그러니까 김치 강요 그만하고 하고 싶으면 삼겹살, 치킨 이런거 세계화 해..) 2.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섞을 것. 잠비나이처럼 하라는 것이겠지.

 

잠비나이 - 무저갱(Feat. 이그니토)

숨 - 오후 5:16

 

 전통을 이어가는 것도 물론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은 마치 '문화재'의 보존과도 같은 일이니까. 하지만 더이상 국악이 '문화'로써 향유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실패를 거듭하던 남궁연은씨는국악이 문화로써 향유되기를 바라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그 일부를 강연중에 보여주기도 했다. 재즈피아니스트와 소리꾼의 만남, 민요를 국악기와 서양악기로 재해석한 음악, 여러가지 실패한 공연과 성공한 공연들까지.. 특히 새타령을 편곡해서 국악기와 서양 오케스트라를 이용해 연주한 음악은 굉장히 매력있었고 아름다웠다. ECM에서 나온 노래 같았어. 음원으로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아, 밴드로 흑인음악을 깔아놓고 판소리를 한 것도 ㅋㅋㅋ  사실 소울음악도 한 샤우팅 하거든 ㅎㅎ 약간 Funky한 소울음악을 깔아두고 소리를 얹었는데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굉장히 신선했다. 그리고 그냥 신선함에서 그친 것은 아니고 확실히 매력있었다. 그리고 이런 화합은 짧은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하여 천천히 융합시켜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쪽의 음악을 다른 한쪽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가와 대가가 모여 수정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니까 꽤 괜찮은 음악이 탄생하더라고...

 

 확실히 민요의 멜로디는 아름답다. 특히 여러 재즈뮤지션들이 민요를 재해석해 부를 때 느끼는 부분이었다.(는 나윤선씨의 음악이 머리에 가장 깊게 들어와있다.) 고려시대에는 그 시대의 음악이 있었고, 조선에서도 그랬다. 현재에도 현재의 음악이 있다. 아니, 있어야 했다. 현대의 국악이 있고, 그것을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국악의 복원도 꾸준한 관심을 받을 수 있겠지.

 

 

 강연을 들은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머릿속에 정리되지 못한 것들을 두서없이 써봤다. 강연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인상깊은 말은 많은데 머릿속엔 뒤죽박죽.. 보통 이러면 글로 쓰면서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확실히 나는 그냥 이과생ㅋ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다섯줄요약

 

1. 컴플렉스 덩어리인 정부주도의 국악 정책은 오로지 '전통의 복원'.

2. 서양문화가 주류가 된 상황에서 전통은 모든 사람의 관심 밖. 세계도 마찬가지.

3. 흐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줄기만 잡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둘 필요가 있었음. 문화니까.

4. 국악이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흐름과 융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전통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5. 김치는 그냥 나만 좋아할래. 세계화는 치킨으로 하자.

 

 그러고보니 남궁연씨가 국악의 독특한 리듬을 복잡계로 분석을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시던데.. 나는 십여년전부터 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아직 연구된게 없었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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