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산실에서 지원하는 여러 창작극 중의 하나다. 전에 <하나코>도 그랬고, 이 작품도 그랬다. 미스테리 극이고, 시놉시스를 봤을 때 굉장히 매력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떠도는 땅>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미스터노 이다. 미스터 노는 아버지의 장례식 마치고 아버지의 땅을 팔아 빚을 갚으려한다. 하룻밤만 지나면 다 끝날 줄 알았던 미스터 노는 온갖 인물과 사건에 떠밀리기 시작한다. 미쎄스노와 김대리의 불륜, 회사 부도로 인한 수만 마리 닭의 떼죽음, 연쇄살인범의 알 수 없는 종적, 생활고에 시달려 첫사랑과의 기억을 값나가는 유물로 바꾸려는 영지,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노영감의 귀신 등 이 불길하고 모호한 기운은 온갖 공격에 무방비상태가 된 미스터 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연극은 확실히 미스테리하게 진행되었다.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풀어가거나 추리극과는 거리가 좀 있었고, 굉장히 이미지가 쎈 스릴러를 보는 듯 했다. 닭(정확히는 닭 잡는 모습), 비닐, 영안, 무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캐리어 등 기본적으로 굉장히 쎈 이미지를 주는 소품들부터 공포,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진동 저음, 미스테리한 느낌을 주는 에코 음향까지.. 연출자가 어떤 것을 하고 싶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세로길이, 그러니까 업스테이지부터 다운스테이지까지 거리를 가로길이보다 훨씬 더 길게 잡고, 무대 배치를 좌우 대칭이 되면서 가운데 소실점을 갖도록 설정했는데, 이로인해 무대가 굉장히 깊은 공간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대 배치가 연극 연출에 굉장히 비범하게 쓰였다고 느꼈다. 관객석까지 내려온 좌우대칭의 나무 소품은 관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무대 위로 올려놓고 관찰하게 하는 듯 했고, 깊게 느껴지는 무대배치는 상대적으로 아득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일자로 뻗어있는 메타세콰이어길에 자욱한 밤안개가 끼어있는 기분. 아득해서 잘 안보이니까 확실히 으스스한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부분부분의 강렬한 이미지에 비해 메시지는 상당부분 옅어졌다는 점.. 흐름을 갖는 '개연성'보다는 어떤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이 이미지와 메시지가 연결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 연극이 끝나고 남아있는 강렬한 이미지들에 비해서, 연출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좀 힘들어서 프로그램북을 구입했는데... 이건 뭐... 연출자 겸 작가는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을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마구 쑤셔넣은 것 같았다... 현대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넣고 싶다보니까 어느 하나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걸쳐있는 느낌이다.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표현했다...라는 과정이 프로그램북에 나와있지만 그것을 봐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그냥 자극적인 이미지들만 남아있을 뿐, 그 이미지들이 갖는 상징성은 좀 약하지 않았나?? 다시 연극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프로그램북은 음.... 예술영화 한 편 보고 매우 과하게, 비약적이고 과시적으로 해석해 놓은 블로거의 글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자기에 취해 희곡을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무대구성은 독특했고, 영화로 치면 좀 뻔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연극 무대로 옮겨놓고, 관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 것은 확실히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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