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는 유래 없을 정도의 힙합 붐이 일어나 있다. 엠넷에서 자칭 ‘힙합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국내 유일 본격 힙합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 아래 방영중인 <쇼 미 더 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래 없는 인기만큼이나 굉장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쇼 미 더 머니.jpg'라는 이름으로 다음의 사진이 유행처럼 돌았던 적이 있었다.


<정말 이런 느낌일까...>



 사실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이 그 문화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것이 그 나라에서만 유행하는 고유의 문화가 아니라 이미 대중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힙합의 주류는 여전히 흑인이지만, 더 이상 그것이 흑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 시작에는 바닐라 아이스가 있었고 에미넴은 편견을 깨버린 슈퍼스타다.

그리고 인종과 문화권을 넘나드는 음악적 도전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오늘 이야기할 흑인음악에 한정짓더라도 이미 1970년대부터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이라는 이름으로 홀 앤 오츠(Hall & Oates),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펑크(Funk) 디스코 밴드였던 에버리지 화이트 밴드(Average White Band)는 음악만 들어서는 절대 피부색을 짐작하지 못할 음악들을 들려줬다. 그리고 흑인음악을 하던 백인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데, 첫 앨범으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던 네오소울 뮤지션 레미 쉔드(Remy Shand), 그리고 최근에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던 로빈 시크(Robin Thicke) 등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평단과 대중들에게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은 뮤지션들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메이어 호손은, 최근 활동을 하고 있는 그 어떤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보다 더 널리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뮤지션이다.



<누가 봐도 백인>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은 1979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메이어 호손이라는 스테이지 네임은 앤드류 메이어 코헨(Andrw Mayer Cohen)이라는 본명과 그가 자라난 호손 로드(Hawthorne Road)에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사실 메이어 호손은 어릴 때부터 모든 음악인들의 동경이 될 만한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는데, 그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키워온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다. 현재도 디트로이트에서 베이스 주자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그가 아주 어릴 때 베이스를 가르쳐 주었고,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게다가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디트로이트를 기반으로 하는 ‘모타운(Motown)’의 음악들을 자양분 삼아 음악적 역량을 키워나갔는데, 그가 영향받은 뮤지션들을 봐도 모타운의 수장인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부터, 주축 프로듀서들인 레이몬트 도지어(Lamont Dozier), 에디/브라이언 홀랜드(Eddie Holland, Brian Holland) 등이 언급되고 있다.(물론 이외에도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를 비롯한 많은 70년대 소울 뮤지션들과 제이 딜라(J-Dilla)처럼 최근의 뮤지션들까지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덕분에, 현재 그는 모든 앨범의 작사, 작곡 뿐 아니라 편곡,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악기들을 직접 연주 하며 앨범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소울 ‘싱어’인 그가 보컬 트레이닝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고 어릴 때부터 늘 흥얼거렸던 것이 전부였다고 하니, 타고난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유년시절의 환경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Smokey Robinson - Cruisin'>


 메이어 호손은 2006년에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와 계약하면서 그의 둥지를 LA로 옮겼다. 계약할 당시에 메이어 호손은 힙합 DJ로 커리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힙합 DJ로서 그의 스테이지 네임은 헤어컷(Haircut)이었는데, DJ로 활동하던 시절에 다른 아티스트의 샘플 클리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모타운 스타일의 음악을 직접 녹음하여 사용하였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런 독특한 행보가 더 대단했던 것은 이렇게 만든 노래들의 보컬과 코러스는 물론 연주까지 모두 혼자서 해냈다는 점이었다. 스톤 스로우의 수장이었던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는 우연히 6~70년대 스타일의 올드 소울 음악을 듣고 처음 듣는 미스테리한 이 음원의 출처를 궁금해 했다. 그리고 올드 소울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려낸 이 음원이 4-50년을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던 구닥다리 음악이 아니라, 메이어 호손이 2000년대에 녹음한 따끈따끈한 노래인 것을 알고 그와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힙합음악을 하는 헤어컷을 두고 소울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메이어 호손’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한 계기도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였다. 정식으로 앨범 발매를 의도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2008년 11월에 발매된 첫 싱글 "Just Ain't Gonna Work Out"/"When I Said Goodbye"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Just Ain't Gonna Work Out"은 알 그린(Al Green)의 음악을 21세기에 재현하는 듯 한 이 올디한 소울 음악에 메이어 호손의 달콤한 팔세토 창법이 어우러진, 누가 들어도 7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소울 발라드 곡이다.



<메이어 호손 DJ Haircut Ver.>






탄력을 받은 메이어 호손은 2009년 4월에 두 번째 싱글 “Maybe So, Maybe No”/“I Wish It Would Rain”을 발매하고, 이어지는 8월에 데뷔 앨범 <Strange Arrangement>를 발매하였다. 템테이션즈(Temptations)의 음악을 쏙 빼닮은 “Your Easy Lovin' Ain't Pleasin' Nothin'”이나 스모키 로빈슨의 콰이엇 스톰(Quite Storm)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One Track Mind" 등, 클래식 소울의 향취를 가득 품은 네오 소울 앨범이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앨범은 아니었으나, 비평가와 흑인 음악 팬들에게 메이어 호손이라는 새로운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의 이름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Mayer Hawthorne - One Track Mind>



메이어 호손은 클래식한 소울을 주무기로 삼았지만, 그는 과거의 음악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해왔는데, 메이어 호손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던 많은 음악들은 2011년에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한 EP <Impressio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6곡으로 구성된 이 EP에는 아이삭 헤이즈(Isaac Hayes) - 혹은 Average White Band의 커버버젼 - 와 더 페스티벌스(The Fastivals) 같은 과거의 뮤지션부터 존 오브라이언(Jon Obrion)과 현대의 일렉트로 펑크 듀오 크로메오(Chromeo)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의 음악의 커버곡들로 이루어져있다.



<Mayer Hawthorne의 커버 앨범 <Impressions>>


2011년에는 그의 두 번째 앨범 <How Do You Do>가 발매 되었다. 데뷔 앨범에서 자신감과 탄력을 받은 듯, 그는 이 앨범에서 여전히 과거의 재현에 집중하면서도 좀 더 다채로운 시도들을 보여주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Get To Know You”는 이전 앨범에서도 보여준 바 있는 콰이엇 스톰류의 발라드 트랙이고, “Finally Falling”은 홀 앤 오츠의 팝 소울 스타일의 음악이다. 스눕독(Snoopdogg)이 예상치도 못하게 랩이 아니라 노래 피쳐링으로 참여한 “Can't Stop”은 힙합의 느낌도 슬몃 가지고 있고, 모타운의 프로듀서 트리오인 레이몬트 도지어, 에디/브라이언 홀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Hooked”는 그의 고향이 어딘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노래다. 앨범의 베스트 트랙인 “The Walk”는 60년대의 그루브와 멜로디, 코러스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에서 비약적인 상승이 있었고, 다른 네오소울 뮤지션들과 조금 다른 그의 음악적 포지션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었다. 또한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Best Boxed or Special Limited Edition Package”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한 편, 메이어 호손은 그의 백밴드 “The County”와 함께 녹음도 하고 공연도 같이 한다. 더 카운티는 고정멤버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와 함께 공연하고 녹음하는 멤버들을 모두 일컫는다. 메이어 호손과 그의 밴드와의 호흡은 2012년에 KCRW에서 녹음한 라이브 EP <Morn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Mayer Hawthorne - The Walk (KCRW Live)>


 2013년에는 그의 세 번째 앨범인 <Where Does This Door Go>가 발매 되었다.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늘 혼자서 해오던 앨범의 프로듀싱을 양보했다는 점이다. 이 앨범에서는 그가 기존에 보여주었던 음악적 색은 유지하면서, 전보다 더 다양한 프로듀서들을 앨범작업에 참여시켜 음악적 폭은 더욱 확장시켰다. 특히 현재 가장 핫한 뮤지션 중의 한 명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를 비롯하여 현재 R&B씬에서 굉장히 좋은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잭 스플래쉬(Jack Splash)와 워렌 ‘오크’ 펠더(Warren 'Oak' Felder) 등이 참여하여, 참여진 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앨범이었다. 그리고 기대치에 걸맞는 앨범을 뽑아냈다. 70년대말 유행하던 록-재즈 퓨전 스타일의 음악에 퍼렐답게 팝 적인 멜로디와 기타리프를 얹은 “Wine Glass Woman"이나 레게 느낌을 살짝 담은 ”Allie Jones"만 들어봐도 앨범의 변화는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당시 한창 괴물신인으로 떠오르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참여한 "Crime"이나 둔탁한 비트에 빈티지한 건반과 브라스로 맛을 낸 네오 소울곡 “The Only One"을 들어보면 호손의 여전한 힙합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Back Seat Lover" 같이 여전히 본인이 블루 아이드 소울의 적자임을 드러내는 노래도 있다. 확실히, <Where Does This Door Go>는 그가 레트로 소울에만 집착하지 않고 메이어 호손으로 발표하는 앨범이 더욱 확장된 음악들을 보여줄 수 있음을 알린 앨범이다.


<Mayer Hawthorne - Wine Glass Woman>

이듬해인 2014년에는 정말 뜬금없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14KT와 함께 제이디드 인코퍼레이티드(Jaded Incorporated)라는 신스팝(Synth-Pop), 포스트 펑크(Post Punk)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그룹을 만들고 데뷔 앨범인 <The Big Knock>을 발표했다. 인상적인 결과물이나 대중적인 성공을 얻은 것은 아니었으나, 존재 자체로도 인상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그 해 11월에는 힙합 프로듀서인 제이크 원과 함께 펑크(Funk) 듀오인 턱시도(Tuxedo)를 결성, 핏불(Pitbull)의 동명의 노래를 샘플링한 “Do It"을 발표한다. 디스코와 펑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감각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로 ”Get Lucky"를 이을만한 멋진 트랙이었다. 사실 제이크 원과 호손은 2006년부터 서로 믹스테입을 교환하며 70년대 펑크(Funk)와 디스코라는 음악적 공통분모를 발견했는데, 쉬크(Chic)나 샬라마(Shalamar), 잽(Zapp) 등은 당시 서로가 같이 듣고 즐기던 밴드였다. 대프트 펑크(Daft Punk)를 시작으로 70년대 펑크(Funk)와 디스코가 유행을 하는 시점이라, 이들이 본격적으로 앨범활동을 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음악적 공통분모를 모토로 삼아 2015년에 데뷔 앨범 <Tuxedo>가 발매된다. ‘복고’라는 측면에서는 호손의 지난 앨범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울에 치중하고 곁가지로 디스코나 펑크의 요소를 넣었던 지난 앨범과 달리, 이 앨범은 일렉트릭 펑크나 디스코 아티스트의 앨범처럼 만들어졌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Lost Lover”와 마지막 곡인 “Number One”은 갭 밴드(Gap Band) 스타일의 펑키한 일렉트로 사운드가 넘실거리고 있으며, 그 시절 그루브를 그대로 소환하는 “The Right Time”에다, 콰이엇 스톰인 “Two Wrongs”로 한 템포 쉬어가기도 한다. 좋아서 시작한 두 아티스트의 결과물은 본인들과 팬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멋진 앨범으로 탄생하였다.





<Tuxedo - <Tuxedo> 풀버젼>


 메이어 호손이자 DJ 헤어컷, 그리고 제이디드 인코퍼레이티드와 턱시도의 멤버. 수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저기에 발만 걸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다 잘 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늘 그래왔듯이, 메이어 호손은 그냥 즐거워서 이것저것 해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세 살짜리 호기심 넘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고 탄탄하게 기반이 잡혀있는 그의 음악적 토대와 앨범의 흐름을 조절하는 센스 덕분에, 내놓은 결과물마다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과 그가 사랑하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내한을 한다. DJ Set이라 그의 매끄러운 팔세토 음색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호손과 턱시도의 음악세계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즐거운 자리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드립을 자제하고 Gigguide에 기고한 글입니다.  링크 : http://www.gigguide.kr/archives/10270





길어서 요약하자면,


1. 어릴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음악가 집안의 엄친아

2. 힙합 프로듀서로 시작했는데, 샘플 클리어 비용을 아끼고자 모타운 스타일 음악을 만듦. 근데 퀄리티 쩔.

3. 스톤스로우 회장인 피넛 버터 울프가 듣고 오 쓋. 처음 들어보는 이 뿨킹 그레이트한 노래는 대체 뭐야! 

4. 계약.

5. '재미로' 메이어 호손이란 이름 만들고 네오소울 앨범 만듦. 역시 퀄리티 쩔.

6. 3집까지 소울 앨범 만들다가 다른게 하고 싶어서 제이디드 인코퍼레이티드라는 신스팝 그룹 만들고 앨범 발표.

7. 그 와중에 파티에서 디제잉은 꾸준하게 하고 다님.

8. Funk가 하고 싶어서 제이크 원이랑 턱시도 결성. 그리고 앨범 발표. 이 앨범도 쩔.

9. 다음주에 내한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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