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은 조금 느긋하게 도착했다. 이 날은 맥주를 포기하고 차를 끌고 갔다. 집에 지하철타고 늦게 들어가면 다음날 출근이 너무 힘들것 같아서.. 결론은 대실패.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뭐.. The XX의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한시간을 넘게 대기한 끝에 주차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여러분. 그것이 여러분을 위하는 길이고 지구를 위한 길입니다. ​둘째날은 딱 세개의 공연을 보면 됐었다. Sampha, Rhye, The XX. 

 그 시작은 Sampha였다. 음악은 좋았지만 사실 가창력이 좋을거란 기대는 안했다. 가창력은 예상대로,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기대보다 약간 이하. 그래도 공연 자체는 엄청나게 끝내줬다. 그의 음악이 피아노와 전자음을 베이스로 하는 음악들이었는데, 라이브에서도 다양한 소스들을 잘 활용했다. 가창 퍼포먼스는 그저그랬지만 방해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런 아쉬움을 덮어버릴만큼의 라이브 공연을 보았다. 음악도 센스있다고 느꼈지만, 공연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센스를 보여줬다. 음악가면서 예술인st. 지켜보는 나는 그저 황홀했다. 왜 Sampha를 원하는 뮤지션들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후반부에 Blood On Me를 부를땐 힘겨워보였는데, 그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화려하고 멋있었다. 이게 라이브지... 특히 드럼치던 흑형.. 간지쩔...

 ​Rhye의 공연은 또 누워서 하늘보면서 구경했다. 굳이 뛸 필요가 없는 공연이니까. 이 날은 구름이 좀 꼈는데, 해질녘 노을과 참 잘 어울렸다. 그 특유의 멜랑꼴리, 소피스틱한 느낌은 너무 맑은 것보다 이 정도가 딱 좋지. 프로듀서인 로빈 한니발 없이 마크 밀로쉬만 온 모양이던데, 영상으로 봤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라이브를 잘해서 놀랐다. 하긴 내가 그 라이브 영상을 본것도 벌써 4-5년 됐을테니까... 그 땐 진짜 별로였는데 ㅋㅋㅋㅋ 현악기와 브라스들을 비롯해 많은 악기를 동원한것 치고 라이브 퍼포먼스는 그저 그랬다. 분위기에 취해 즐겁게 봤지만 Rhye는 '스튜디오형'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

​그리고 하늘위의 달과 함께 The XX의 등장.

 찍은 사진이 왜 다 이모양이냐. 흥분했나. 한시간이 넘는, 유난히 긴 셋업시간이 끝난뒤 The XX가 등장했다. The XX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 급이었다. 공연 시작전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공연 내내 울려퍼지던 수많은 괴성(?)들 ㅋㅋ 나도 나름 1집때부터 팬이라면 팬이었었기 때문에 공연은 진짜 재밌었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포인트들을 찝어본다면, 1. 로미의 찰랑거리는(고데기 한 것 같은) 직모와 좌우로 흔들던 헤드뱅. 2. 로미의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발음과 나지막한 목소리.(여자였다면 올리버의 목소리였겠지)  3. 팬이 선물한 올리버의 모자(근데 하필 A Violent Noise를 부를때라니.) 4. 노래가 끝날 때마다 마주보고 연주를 마무리 하던 로미와 올리버. 5. 엔딩곡 Angels에서 제이미의 실수와 나지막하게 '제이미~'하고 부르던 로미의 목소리. 이 때 관객들 다 녹음. 대충 이 정도? 공연을 본 사람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알겠지. 공연 보기전에 복습하면서 느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The XX의 노래를 들어왔더라. 생각보다 더 많이 팬이었던 것 같다. 밤이라 특유의 시크한 음악과 조명도 잘 어울렸다. 사실 나머지 공연들은 다 해 떠있을때라 조명이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유난히 이 팀의 조명과 안개 같은 무대 장치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특히 Jamie xx의 솔로앨범 수록곡 Loud Places때의 무지갯빛 조명.) 한시간 반이 흘러가는게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또 온다면 또 보고 싶다고 생각함.

 

 워낙 욕을 많이 먹었던 Fake Virgin Seoul의 첫 페스티벌이었지만 공연진행이고 뭐 그런 것들을 떠나 라인업을 참 잘 구성했다고 생각했다. 단독 내한이라면 망설였을 팀들을 묶어서 페스티벌로 진행하니까 망설임 없이 티켓을 구매했던 것 같다. 페스티벌의 성패는 화려한 헤드라이너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허리라인업에 달려있다고 생각함. "이 팀 때문에 예매하고 싶은데 얘네랑 얘네도 나온대." 이 느낌이 잘 되는 페스티벌의 느낌. 황홀한 이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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