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소품이라고는 밥상하나가 끝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두 배우가 뿜어낸 열정과 열기만으로 극장 전체가 가득찼던 멋있는 작품이었다. 연극은 아들의 시선에서 진행되었고, 특별한 서사나 드라마 없이 전개되었다. 사실 '가족'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눈물샘 반쯤은 이미 차오르는 주제아닌가? 사실 그래서 가족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건 좀 사기야. 얘기가 구질구질하고 신파로 흘러가도 가족 이야기만은 참기가 힘들어. 게다가 기구한 가족사야 현실에서도 차고 넘치고 우리집도 평탄하지 않은데 남의 가족사까지 보면서 울고 싶진 않거든.

 그래도 연극은 비교적 차분한 톤을 유지했다. 중간까지 보통의 부자관계처럼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외면해왔던 부자가 서로 닮아있음을 알아가는 모습, '무(無)라'가 '(밥) 무라'가 되어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나에게는 특별했다. 10년전쯤 아버지와 백석과 유재하의 이야기를 하며 단 둘이 함께 먹던 냉면 한그릇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눌렀다. 절반도 채 차지 않은 관객석 곳곳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뜨듯미지근하게 유지된 톤 덕에 마지막에 이어졌던, 조금은 억지스럽고 조금은 신파스러웠던 아버지의 대사마저도 뜨겁게 와닿았다.

 

 무엇보다 김홍파, 서동갑, 두 배우의 열연은 아직도 가슴에 많이 남아있다. 어떤 극 보다도 평범한 대사속에 많은 마음들과 심경의 변화를 담고 있어야 했다. 절대로 먼저 뜨거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서글펐다. 그리고 그 정서를 조금씩 더 알게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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