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정말 정신없고 바빴는데, 그래도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영화를 꽤 많이 봤다. 인상깊었던 영화들만 좀 정리해 봄.



위플래쉬(2014) - 다미엔 차젤레. 플레쳐의 교육방식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J.K.시몬즈의 열연은 정말 소름끼쳤다. 음악영화임에도 끝나고 영화에 대해 남은 이미지가 튀는 피와 살점이었으니.. 플레쳐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도 스릴러의 매력적인 악역과 비슷했고, 전반적으로 다크한 분위기와 음향들은 누가봐도 스릴러였다. 영화의 이야기가 주는 찝찝함을 잠시 잊을 정도로 영화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주었다. 굉장한 영화. 생각해보니 이거 작년에 본거네...


미드나잇 인 파리(2011) - 우디앨런. 화려한 출연진. 배우도 그렇지만, 등장하는 예술가들도 그렇다. 어벤져스급 ㅋㅋㅋㅋ 재가공된 그들의 대화가 흥미로웠고, 파리는 예뻤으며, 마리옹 꼬디아르는 여기서도 매력적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이 블로그를 하기 시작할 무렵의 내 인생관이 생각났다. 지금을 그리워할 5년뒤를 생각하면서 죽도록 놀자. 5년 뒤에는 '그때가 좋았어.'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미스터 노바디(2009)- 자코 반 도마엘. 가지 않은 모든 길을 다 가본 사람은 그저 'Nobody'일 뿐. 평행우주 이론을 소재로 아주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어릴 때 아주 인상깊게 보았던 나비효과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나비효과가 긴장감있고 급박한 연출력에 초점을 두었다면, 미스터 노바디는 영화가 주는 메세지를 확실히 더 깊이 담아냈다고 느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사람들이 더 적게 간 곳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고.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보다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정말 뻔한 이야기를 철학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로 담아냈다.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영화인데, 귀찮은 사람은 패스.


레버넌트(2016)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좋아하는 감독이라 명동역에 걸린 광고판만 보고도 설렜었는데, 대자연을 마주하는 것 같은 거대함, 그리고 경외감 비슷한게 느껴졌다. 스토리는 뻔하고 질린다 싶을 정도로 처절한 영화인데, 그 처절함이 한계치를 넘어서있다. 조명 하나 없이 자연광으로만 촬영했다는 점만 봐도 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충분하다. 디카프리오도 이 정도면 인생연기를 한 것 같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자연(곰이나 말, 물, 생고기를 먹는 장면도 그렇고..)과 동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어느때보다도 배경과 이질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이 쯤 되면 그냥 오스카 쥐어줘... 


펀치 드렁크 러브(2002) - 폴 토마스 앤더슨. 아담 샌들러의 매력은 대충 이런거 ㅋㅋㅋㅋ 주인공은 사방에서 엄청 처맞고 펀치드렁크 증후군이 생긴 것 처럼 이상한데, 그 정신병적인 매력덕에 로맨틱 코미디를 뻔하지 않게 잘 틀어서 보여줬다. "난 지금 존나 쎄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지"는 가히 희대의 명대사 ㅋㅋ 음향이나 영상이 주는 정서는 뭐랄까.. 좀 몽환적인 느낌도 있는데,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독특한 느낌의 로맨틱 코미디.


시카리오(2015) - 드니 빌뇌브. 이것도 작년에 봤구나. 심지어 잡담란에도 썼었음. 어쨌거나 이것도 진짜 재밌게 본 영화.


검은 사제들(2015) - 장재현. 여고생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역시 그건 강동원 빨이었구나.. 혼자 불끄고 헤드폰 쓰고 보려고 아끼다 똥됐다. 뭐, 사실 영화는 기대감이 좀 커서 그렇지 아주 나쁘진 않았는데, 영화관에서 봤어도 그냥 돈 값은 했다고 생각했을지도..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오컬트 장르의 가능성을.. 그러니까 앞으로도 괜찮은 공포 영화가 계속해서 꾸준히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이어준 것 같았다. 거의 박소담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박소담이 열연하던 그 순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몰입감을 보여주었다. 뭐, 근데 딱 거기까지만. 박소담 나왔던 라스나 다시 봐야겠다.

+ 김윤석 아저씨는 비슷비슷한 이미지의 소모가 좀 심한 것 같다. 


내부자들(2015) - 우민호. 이것도 생각보다 많이 별로였는데... 어떻게 800만이 넘은거지. 이 영화보단 부당거래가 훨씬 더 낫지 않나?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는지는 알겠는데,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과시적이라고 느꼈다. 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커버하긴 했지만, 3시간이라는 긴 영화의 길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는 그저 그랬고, 클리셰 범벅.. 너무 쉽게 내버린 듯한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 한시간은 영화보면서 요리함 ㅋㅋㅋㅋㅋ


마션(2015) - 리들리 스콧. 이것도 지나치게 늦게 봤다. 어.. 음... 이것도 기대치가 너무 커서,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는데.... 그래도 재난영화를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냈다는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것도 이런 노장이 ㅋㅋㅋ


헤이트풀8(2016) - 쿠엔틴 타란티노. 마치 저수지의 개들을 보는 것 같은.. 선과 악의 구분이 필요없는 난장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비선형적으로 연출하고 한참 난장이 시작할 무렵 보여주는 플래쉬백은 사실 어떻게 보면 한 때 엄청 유행하던 한물간 연출방법...이긴 한데.. 그래도 같은 구성이라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영화적 재미는 천차만별인 듯. 타란티노 특유의 찰진 대사들과 쫄깃한 서스펜스는 이 영화에서 특히 더 돋보였던 것 같다.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난 더 날 것의 느낌이 나는 초기작 <저수지의 개들>이 더 좋고, 최근 작들을 놓고 봐도 장고나 바스터즈가 더 재밌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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