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8월에 싸이 뮤직노트와 소울라이즈드에 올렸던 글을 올려본다.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잔뜩 써있는 포스팅. 7년전이다 무려... 충격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소하지만 위트넘치는 이야기들, <커피와 담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기준을 꽤 애매모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주류니 비주류니, 상업적이니 그에 대한 대안이니 어쩌구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영화적 흥미를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물론 말도 안되는 잣대다.) 상업영화는 재밌고 독립영화는 따분하고. 100%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단 상업영화의 목적이 많은 사람들이 보게하는 거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제작해서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이 목표니까. 그에 반해 독립영화는 상업적인 결과와는 무관하게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연출 할 수 있다. 결국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는 돈, 그 뿐이다. 어느 쪽이 옳으니, 이게 좋은거니 나쁜거니 그런건 없다. 개인적으로도 둘 모두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는 편이다. 상업영화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고, 독립영화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드라마틱한 영화적 스토리와 장치는 아주 강렬한 충격, 혹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반면, 일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잔잔하지만 진하고 오래가는 여운을 담고 있다. 때로는 상업영화보다도 더 강렬하기도 하고. 




 오늘 얘기할 짐 자무쉬 감독의 이 영화 '커피와 담배'는 1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인데, 이중 일부 단편은 칸 영화제에서 단편부분 황금 종려상을 타기도 했고, 일부 단편에서는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으며, 완성된 옴니버스영화는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개봉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에서 커피와 담배라는 소재는 11개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꼭 그것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까페에 마주앉아 이야기 할 때, "여기 커피는 맛있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하루가 찝찝해."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일 뿐이다. 때로는 커피와 담배가 아예 대화의 주제가 아니기도 하고, 커피와 담배를 주제로 대화가 흘러가다가도 다른 주제로 또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영화에서는 꽤나 유명한 배우들과 뮤지션들이 다수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따로 언급되지 않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속에서 '본인'으로 출연한다는 것이다. 보다가 보면, 이게 마치 실제 성격이고 진짜 모습인거 같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과 사회, 인간관계들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비트는 와중에, 이런 '본인'역할의 배우들은 상당히 빛을 발한다. (영화에 출연한 화이트 스트라입스처럼 전문배우가 아닌 경우에도, 어설픈대로 나름의 영화적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자네 여기 왠일인가?'인데, 스티븐 라이트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 유명한 로베르토 베니니가 출연한다. 이 둘은 손을 덜덜 떨면서 커피를 마실정도로 완전한 카페인 중독자인데, 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무리 몰입하려고 해도 몰입이 잘 안된다.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엉뚱한 말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성질급한 말투와 스티븐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즐기다보면 이야기는 아마 산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저 스틸컷은 둘의 영화속의 말투와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엉뚱한 선문답들의 결과물은 뜬금없이 '치과'.

 좋아하는 배우 스티브 부세미가 출연한 두번째 에피소드 '쌍둥이'. 실제 쌍둥이를 배우로 섭외하여 촬영했는데, 이 둘 정말 너무나 다른데 또 너무나 똑같다. 게다가 스티브 부세미의 때려주고 싶을 만큼의 깐족 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쌍둥이 이론을 설명하는 열혈 부세미와, 냉정하게 받아주는 두 쌍둥이. 무려 86년에 The Lonely Island로 유명한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 Saturday Night Live에 방영되었다.

 이기팝과 탐 웨이츠는 모두 배우 겸 가수다. 이 에피소드는 정말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둘의 대화는 정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담배 피는 사람들을 의지 박약처럼 취급하다가 '담배를 끊었으니 할 수 있다'며 담배를 권하는 탐 웨이츠, 그리고 그 담배를 받아든 이기 팝. 한 모금씩 빨고 난 뒤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 그리고 '우린 지금도 담배를 끊은거에요.'라며 그냥 한번 해본 거라는 듯이 말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오해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화와 대인배같은 모습을 한 소인배들의 모습.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살아숨쉬는 캐릭터 들이다. 칸 영화제 단편부분 황금 종려상 수상작.

 1인 2역으로 등장한 케이트 블란쳇. 동일인물인지 모르고 보기 시작하다가 한참을 보다가 혹시 동일인물인가? 싶어서 찾아봤었던 에피소드. 너무나 잘나서 뭘해도 얄미울수 밖에 없는 대스타 케이트와 보잘것 없고 존재감 없는 평범한 쉘리는 서로 사촌지간. 친한듯, 너무나 오랜만이어서 반가운듯, 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은근한 신경전이 인상적이다. 정말, 서로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 작품으로 케이트 블란쳇은 오하이오 영화 비평가 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영화속에서도 정신 없는 우탱의 RZA, GZA, 어색한 연기가 더욱 귀여웠던 White Stripes, 그 외에도 배우 스티브 쿠건, 빌 머레이등 다양하고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마치 까페에서 조금 특이한 옆테이블의 친구들을 몰래 엿보는 것 같은, 옆집에서 들려오는 윗집 사람들 얘기를 몰래 듣는 것 같은 소소하고도 위트넘치는 이야기들을 잔뜩 확인할 수 있다.


진한 커피와 독한 담배가 어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노래들.
 이 영화에서 담배는 대부분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담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듯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비꼬는 듯이. 그런데 이상하게 이들이 피우는 담배는 왠지 몸에 해롭지 않을것 같다.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커피집 근처를 지날때 나는 은은한 커피향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매캐한 담배 연기와 섞여서 씁쓸할 것 같은 커피와 어울리는 음악들이 땡겼다.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지만 대리만족이라도 하려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이 영화에도 출연했고, 최근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헌정된 Tom Waits! 담배 연기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을 과연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느낄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담배로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목소리라는 것을. 그의 최고앨범인 85년작 <Rain Dogs>에 수록된 Time이나 Jockeyfull of Bourbon, 78년작인 <Blue Valentine>에 수록된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는 시적이고 독특한 가사도 예술이고 목소리도 정말 예술이다.


 늘 Tom Waits를 떠올릴 때마다 한명의 뮤지션이 더 떠오르는데, 그는 바로 Leonard Cohen. Tom Waits와 마찬가지로 저음의 허스키한 보이스, 그리고 진짜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가사. I'm Your Man의 캬바레 사운드와 나레이션같은 중저음의 보이스는 가사와 관계 없이 노래자체가 일단 담배같다. Take This Waltz 같은 노래도, 깃털 같은 왈츠 리듬에 얹혀진 두터운 목소리가 인상적이고, 우리나라에서 꽤나 인기가 많았던 Everybody Knows도 Leonard Cohen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노래다.



 이번엔 분위기를 달리해서 힙합씬에서 한명을 꼽자면 단연 Guru가 아닐까 싶다. 어둡지만 그루비한 재즈힙합을 주무기로 하는 구루의 음악은 듣는 순간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담배 연기 가득찬 술집이 떠오른다. Guru의 랩은 중저음에 높낮이의 변화도 별로 없고 차분하다. 대신 그가 하고 있는 음악에는 기가막히게 잘 녹아든다. 특히나 그의 솔로 1집 Jazzmatazz Vol. 1은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앨범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수록곡 Loungin'이나 No Time To Play, Trust Me를 비롯해 딱히 몇 곡을 꼽기 아까울 정도로 명곡들로 채워져있다. 셋중에 제일, 그것도 그 다음인 탐 웨이츠와 스무살 가까이 차이날 정도로 젊은 구루는 얼마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Rest In Peace Guru.

 위의 뮤지션과 노래들이 그들의 목소리와 음악 분위기 때문에 꼽은 곡들이라면, 음악을 듣고 담배생각이 났던 음악은 Franz FerdinandKatherine Kiss Me였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캐서린은 나에게 키스를 했다.' 비흡연자인 나에게 담배피는 여자와의 텁텁한 키스는 달갑지 않다. 그런데 담배를 피고난 뒤에 나는 니코틴 향이 가끔은 굉장히 매력적일 때가 있다. 충동적으로 키스하고 싶을 만큼. 이유는 모르겠으만 이따금씩 생각나기도 한다. 신나는 디스코락 앨범의 마지막 곡인, 텁텁하지만 달달한 이 어쿠스틱 노래는 신나는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담배 한 모금 하면서 그녀와 단둘이 즐기는 여운같아서 비흡연자인 날 꽤나 부럽게 만들었던 노래다. 한 곡만 더 꼽자면, 독일 뮤지션 Bassface Sascha의 <Different Faces>에 수록된 Like a Cigarette. 그야말로 폐를 한바퀴 훑고나서 구강을 통해 배출되는 한 모금의 담배연기 같은 노래다. 진하게 늘어지는 섹소폰 소리와 목소리. 짧은 치마에 다리를 꼬고 앉은 섹시한 여성흡연자 같은 노래다.


금연합시다. 가끔은 피우더라도.
 어릴 때부터 치가 떨리게 싫어했던 담배연기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아마 담배를 필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하지 말라는 것이라 그런지 가끔은 한 모금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담배가 참 잘 어울리는 영화속 주인공을 볼 때, 또 담배의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때. 하아.. 혹시 이 노래들이 누군가의 흡연욕구를 자극하여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혹시라도 그럴 땐, 이왕 피는거 탐 웨이츠처럼 '담배를 끊었으니까 난 한 대쯤 피울수 있어.'라고 당당하게 합리화하면서 그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다시 끊고.ㅎㅎ




 p.s.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 담배가 가장 잘 어울렸던 주인공은 코엔형제의 영화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의 주인공 빌리 밥 숀튼이었다. 약하고 무심하고 늘 무덤덤해보이는 그 주인공이 피는 담배가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p.s.2 얼마전에 다른 소울라 필진과 함께 저건 담배가 아니라 마약일꺼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Feel이 나올 수 없다며 함께 감탄했던 무려 20대의 탐웨이츠 라이브 영상을 첨부합니다. 초반에 셋팅하는 시간이 좀 있으니 스킵하고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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